(소련이 기술한 한국전쟁)4 제1절 인민군

인민군의 당시 사단과 군단에 대한 소련의 평가가 있어서 흥미롭다

우선 포병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포병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p.6

전쟁개시 전에 대부분의 사단 군단 보병부대들은 기본적으로 편제인원과 무기가 보충되어 있었으나 포병의 보충 수준이 미흡하여 45mm, 76mm 평사포와 122mm 곡사포의 보충률을 50-60%수준이었고, 120mm 박격포는 45-55%, 82mm 박격포는 60-70%였다.

p.7

보병사단의 편제포병은 보충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경험있는 장교들도 부족하였다. 그리고 대다수 장교는 포병병과가 아니었다. 포병대대와 포병중대 지휘관들의 전투지휘능력은 양호한 편이었지만 포병대대와 포병중대에는 통신수단이 거의 없었다. 포병대대와 포병연대의 전투준비는 미흡하였다 .

보병사단의 편제포병은 보충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경험있는 장교들도 부족하였다. 그리고 대다수 장교는 포병병과가 아니었다.

p.7

특히 제5, 제6, 제10, 제12, 제13, 제15 보병사단은 무기, 수송 및 통신 장비를 제대로 지원받지 못했다.

통신장비 확보도 좋지 않았다. 1950년 3월 초에 총참모부와 최고 사령부간 통신을 지원하기 위해 독립통신연대가 창설되었으나 통신장비의 부족과 운용인력의 능력부족으로 부여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전선으로부터 120km-200km 떨어진 총참모부를 위한 상설 유선 통신이 필요하였다. 통신연대에서는 1개 전신중대만 있었고, 그 중대는 상설통신선로를 설치 및 유지하고, 유사시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전시에 이러한 연대들을 전개할 수 있는 통신기지조차 없었다. 통신연대의 무선대대에는 RAF형 야전 차량탑재 단파무전기 3대, RSB형 무선 송신기 4대, RBM형 송수신겸용 무전기 10대 밖에 없었기 때문에 무선장비로 사용할 수 있는 무선수신기와 통신장비도 없었다. 이동통신 중대가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무선 수신기와 통신장비도 없었다. 이동통신 중대가 효과적으로 운용되지 못하였을것이다. 중대가 보유한 모터찌클은 산악지형과 고온에서 고장이 잦았다. 결국 생도 60명이 속한 통신연대의 교육중대는 연대자체에서도 수적으로 부족한 초급 전문 지휘관의 교육을 지원할 수 없었다.

P.8

지휘통제기구로서 사단, 군단 및 연대의 참모들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 참모장교의 충분한 교육과 참모업무에 대한 경험부족때문이라고 판단하였다.

후방부대들이 겨우 전개를 시작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필요한 물품을 전쟁개시전까지 부대로 꾸준히 공급하지 못하였다.

소련의 평가에 따르면 북한은 남침당시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포병의 준비가 미흡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국군은. 상대적으로 포병이 우수했다. 화포의 성능에서는 인민군이 우수했지만, 인적자원에서는 국군이 우수했다. 국군의 포병을 구성한 사람들은 상당수가 서북청년단 출신이었다. 교육을 많이 받았던 사람들이나 북한 인민군에 대한 적대감이 높은 사람들이 많이 지원했다.




Posted from my blog with SteemPress : http://warandpeace.dothome.co.kr/2019/08/25/soviet-view-koreanwar-3/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 관련하여 참조할만한 자료들

특정 매체’만’을 접하지 말고 다양하게 접하는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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