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즈화의 조선전쟁 30, 한국전쟁 당시 소련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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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한국전쟁에 참가하면서 경제상황이 더욱 어려워졌다. 스탈린과 조우언라이의 회담기록을 살펴보면 중국의 전체 예산 중 군비가 차지하는 비용은 1950년 44%, 51년에는 52%에 달했다.(스탈린과 조우언라이의 회담기록 1952년 9월 3일, АПРФ, ф.45, оп.1, д.329, л.75-87.) 한편 중국의 공식자료는 조우언라이가 말한 수치보다 조금 작다. 50년에 38.19%, 51년에는 45.64% 였다(329, 주 35, 중국인민공화국경제당안관자료선편(종합권) p.872. 892)

전쟁기간중 미국과 서방의 경제봉쇄는 중국의 경제를 더욱 곤란하게 만들었다.
1950년 말부터 1951년 7월까지 수입원자재와 기계재료 가격의 상승폭이 일반적으로 배 이상, 심지어 4배까지 뛰었다.
수출품은 크게 감소해서, 1950년 중국의 토산품 수출은 겨우 4억달러였고, 51년의 계획은 2.3억 달러로 축소했다.
중국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와의 무역총액은 역사상 가장 많았던 시기와 비교하면 90%이상이 감소했다

조우언라이는 로쉰과 대화에서 중국의 경제적 어려움을 첫째 엄청난 재정압박, 둘째, 기술관료의 부족이라고 했다(329. 주 37 조우언라이와 로쉰의 대화, 1951년 7월 24일, АВПРФ, ф.0100, оп.44, п.32, д.322, л.48-49.)

소련은 두가지 문제에 대한 지원을 했다.

1950년 중국은 소련에 15,044억 루블(2,838억 달러)의 물자제공을 요청했는데 그 중에는 야금, 광산, 기중기, 운수, 에너지 동력 등의 설비 및 압연제, 금속선반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소련은 부장회의를 통해 1,357억 달러의 물자제공을 비준했고, 동시에 소련은 중국으로부터 1,508억 달러에 해당한 물자를 구입했다.

1949년 2,630억 달러였던 중소무역액은 1950년 9배나 증가한 24,190 억 달러가 되었다

가장 많이 수입한 제품은 기계와 공구였으며, 그 다음이 석유제품과 철강재였다. 이들 물자는 중국의 제조업을 발전시키는데 필수적인 물자였고, 동시에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판매를 하지 않았다.

소련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비교적 우호적인 조건을 제시했는데, 중국이 수입한 제품은 모두 자본주의 국가의 시장가격보다 낮은 가격이었다. 규소강판의 경우, 홍콩시장의 절반이었으며 계약가격이 고정되어 있어 국제시장의 가격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소련정부는 중국의 생산능력 회복을 돕기위해서 자신들이 수입할 필요가 없는 물자들도 중국으로부터 수입했다.

중국이 급히 필요로 하는 물자들에 대해서도 중소 간 무역계약에 구애받지 않고 가능한 공급했다. 따라서 중국의 소련에 대한 대대적인 무역은 이 시기에 중국 대외무역의 방향을 확정했다.(330. 주 38, 39 참조)

(한국전쟁시기의 중소간 경제관계에 대한 국내자료는 많지 않은 듯 하다)

중국이 부족하다고 했던 기술자들과 관련하여 소련은 중국에 수많은 경제전문가, 기술자등을 파견했고 중국인들의 소련 유학요청도 받아 들였다.

한국전쟁 초기에 중국은 중국에 근무하고 있던 126명이 소련전문가들이 1년 더 근무기간 연장해줄 것을 요청했고, 동시에 중국의 경제분야 공무원(133명의 간부와 33명의 통역)이 소련에서 3월부터 반년까지 현지시찰과 학습을 진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요청했고 소련은 이를 모두 받아 들였다.

1952년 3월 중국에는 소련 고문 및 교사가 332명, 각종 기술 전문가 471명이 체류하고 있었음. 이들이 귀국하자 조우언라이는 몰로토프에게 편지를 보내 1952년-53년에 239명의 전문가를 중국에 파견해달라고 요청

션즈화는 소련의 중국에 대한 경제지원을 들어 스탈린이 중국을 보는 시각이 변화했다고 평가했다. 웨스타드도 스탈린이 자신이 생존한 마지막 기간동안 경제와 기술분야의 협력을 통해 중소단계를 새로운 단계로 격상시키려고 했다고 평가했다는 것이다.(Westad, “The Sino-Soviet Alliance and the United States”)

그러나 소련이 중국에 적극적으로 경제지원을 한 것은 중국이 수행하고 있는 한국전쟁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지 중소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나의 현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가능하다. 그러나 션즈화는 다른 한쪽의 해석 가능성을 고의적으로 차단하는 경향이 있다. 반론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논리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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