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사 연구) 한국전쟁 초기 북한군 편성에 관한 국방부와 육군본부 기록의 차이에 관한 소고

한국전쟁에서의 작전과 전투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는 각각의 편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한국군의 입장에서는 북한군의 편성과 장비가 어떠했는가를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중에서 편성에 대한 이해는 기초중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 초기 작전과 전투의 진행과정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의외로 한국군의 작전과 전투에 관한 연구에서 상대방인 북한군의 편성 즉 군사용어로는 전투서열이라고 하는 부분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존의 자료를 살펴본 결과, 대부분의 한국전 당시 작전과 전투에 대한 기록은 북한군의 의도와 한국군의 대응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규명하기 보다는 한국군이 무엇을 어떻게 했다는 데 치중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군에서 전사연구를 오래한 전문가들에게 필자가 가지고 있던 의문점을 물어 보았다. 그들의 답은 아직까지도 한국군의 전사기록은 작전과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규명하고 거기에 대한 교훈을 도출하기에 앞서 참전자들이 보상을 받기 위한 근거자료로서의 의미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하여 상대방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에 대한 기록보다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서 공을 세웠다하는 것을 방증하기 위한 자료로서 전사가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당연히 한국전쟁의 작전과 전투에 관한 기록은 상대방과 나의 의지의 싸움이라는 전사 본래의 의미에 부합되도록 다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한국전쟁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이다.

각설하고 앞에서 북한군의 전투서열 변화를 통해서 그들의 작전의도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우선 38선과 수원선이후 북한군의 전투서열 변화를 살펴보았다. 그동안 통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과 달리 북한군은 수원이후 주공을 서부 전선의 제1군단이 아니라 중동부 및 동부지역을 담당하고 있던 제2군단으로 전환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한편 그 과정에서 잘 알지 못했던 북한군의 사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북한군 제7, 8, 9 사단들이다.
한국 국방부의 군사편찬연구소에서 편찬한 공간사 기록에 의하면 북한군 제 7, 8, 9사단에 관한 기록들이 없었다. 그들 사단들이 어떻게 편성되었는지를 공간사에 기록을 통해서는 알 수가없었다.

그러던 중 육군본부 정보참모부가 단기 4292년 즉 서기 1959년 경 펴낸 “괴뢰군 연혁”이라는 자료를 찾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공간사 기록보다 수십년 일찍 펴낸 육군본부의 괴뢰군 연혁이 초기 북한군 전투서열을 훨씬 정확하게 기술해 놓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제시한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전투서열을 다음과 같다.

북한군 전쟁직전 전투서열.png

여기서 주목할 것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는 제13사단과 제15사단을 제1군단 예비로 기술했다는 것이다.그리고 전차사단은 제195 전차여단 1개부대만 기록해 놓았다는 것이다. 군사편찬연구소가 제시한 전투서열표는 북한군 여단급이상 부대를 망라한 것이다.

그러나 1959년에 편찬된 육군본부 정보본부의 전투서열을 국방부의 전투서열보다 훨씬 더 자세한 것 같다.
우선 육군본부의 “괴뢰군 연혁”은 전쟁당시 이미 북한군이 제7,8 2 개 보병사단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제 16및 제17 전차사단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괴뢰군 연혁”은 제105 전차여단을 사단으로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사단과 여단의 규모에 대해서는 일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전투서열 1.jpg

전투서열 2.jpg

상기 페이지에서 제12 사단은 제13사단의 오타이다.

그러나 이미 당시 제16, 17 전차여단은 편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괴뢰군 연혁”은 제16전차여단이 제105 전차여단과 함께 38선을 넘어 서울로 진출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기도 한다.

전쟁직전 배치도.jpg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괴뢰군 연혁”에서 표시된 부대의 위치를 보건데 제13, 15사단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기록처럼 제1군단의 예비라고 하기는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다. 괴뢰군 연혁에 따르면 북한군 제13, 15사단은 각각 신의주와 회령에 주둔하고 있었다. 전선에서 작전을 수행중인 제1군단의 예비라고 하기에는 너무 먼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황해도 일원에 있었던 7사단이나 8사단을 제1군단의 예비로 활용하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일단 육군본부의 “괴뢰군 연혁”은 7,8, 10, 13, 15 5개 보병사단과 제17전차여단을 북한군의 예비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군단의 예비에 관해서는 기록을 하지 않고 있다.

이것만 가지고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6.25 전쟁 공간사 기록과 육군본부 정보참모부의 “괴뢰군 연혁”중 어떤 것이 더 사실에 부합하는지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당시 “괴뢰군 연혁”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기록과 증언을 참고하여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에 기록의 신빙성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추가적인 연구와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점점 더 재미있는 내용이 많아지는 것 같다. 혹시 관심있는 분들 중에서 이부분과 관련하여 포스팅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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