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즈화의 조선전쟁 18.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한국전쟁에 대한 논의경과와 그 의미

김일성 모택동 스탈린.jpg

마오쩌둥이 스탈린의 생일을 기념한 초청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회담을 실시했다. 여기에서 마오쩌둥과 스탈린이 한국전쟁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가 없었는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션즈화는 모스크바 회담기관에 연회참가와 경축활동을 제외하고도 스탈린과 마오쩌둥은 세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을 실시(1949년 12월 6일, 24일, 1950년 1월 22일)했고, 에치슨의 연설에 대한 작은 범위의 담화(1950년 1월 하순)도 진행했으나 ‘조선에서의 군사행동 개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12월 24일 회담에서 마오쩌뚱과 스탈린이 조선의 상황에 대해 토론하기는 했지만 조선에서의 군사행동을 취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결코 언급한 적이 없었다”(233)는 것이다.

한편 상기한 세차례의 정상회담 이외에도 스탈린은 두차례에 걸쳐 마오쩌둥을 자신의 개인 별장으로 초청해 밀담을 나누었다. 당시 모두 다른 배석자가 없었고 스탈린이 군사정보분야에 종사하던 자신의 친구를 통역으로 배석시켰다고 한다. 2월 154일 두번째 밀담에서 스탈린과 마오쩌둥은 조선 문제에 대해 토론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션즈화는 두번의 밀담에도 불구하고 스탈린과 마오쩌둥간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에 관한 논의가 없었다고 추론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추론의 근거는 분명하지 않다. 당시 스탈린은 중요한 회담에 대한 자료는 남기지 못하도록 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당시 스탈린과 마오쩌둥간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을리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독일문제가 아시아에서는 한반도가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다.

스탈린은 한국전쟁에 소련의 개입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문서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문서가 없다고 해서 스탈린과 마오쩌둥간에 한반도에서의 군사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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