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와 자주포 그리고 포병의 운용에 대한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
먼저 전차와 자주포의 경우다
“전쟁 제1단계에서 전차와 자주포는 보병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 거의 예외없이 운용되었는데, 그것은 전장상황에서 적절하였다. 그러나 전차를 운용하는데 결함이 있었다. 우선 전차를 운용하기 위한 포병의 지원능력이 없었고, 전차의 공격시 공병의 지원이 미흡하여 그 결과 적의 지뢰지대에서 전차가 피해를 입었다. 또한 전차병들의 행동이 결정적이지 못하였다.(83)”
한국전쟁후 한국에서는 북한의 전차운용이 문제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전차의 충격력을 이용해서 기동을 극대화하지 못하고 보병의 지원을 지원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련에서는 그와 달리 평가했다. 전차가 보병을 직접지원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한국적 지형에서 전차의 운용은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전차와 자주포가 보병을 지원토록 하는 운용개념은 옳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포병과 보병의 협조체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북한의 전차운용과 포병의 협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을 지적한 바는 없다. 아마도 소련이 이런 평가를 내린 것은 유사한 사례가 매우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차병의 행동이 결정적이지 못했다는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전차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론을 뒤받침할 수 있는 전례가 어떤 경우가 있었는지는 궁금하다.
두번째 포병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포병부대의 숫적인 제한으로 포병대의 창설은 어려웠다. 특히 보병연대들이 독립적인 방향에서 활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려움이 자주 발생했다.
그러므로 2개 포병대대로 구성된 연대포병군은 주로 주타격 방향에서 활동하는 보병대대에 편성되었다. 보조타격 방향에 전개한 연대는 일반적으로 1개 포병대대로 증강하였다.
적의 방어선 돌파시 포병의 공격준비 사격후에 보병 및 전차를 위한 포병지원사격이 이루어졌으며, 적의 방어종심 전투에서는 호송사격이 이루어졌다.
적의 방어성격과 포병 및 탄약의 보유 규모에 따라 포병공격준비 사격 시간은 20분-40분이었다. 보병 및 전차를 위한 포병지원사격은 종심 2.5km-3km 지역에 집중하여 실시하였다.
종심전투시 보병과 전차를 위한 호송사격은 연속집중사격으로 실시되었고 편제상 보병이 직접 운용하는 수하포병사격으로도 실시되었다.
공격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부대가 추격을 실시할 때 연대 및 사단 군단 지휘관들이 편제포병의 적시적인 진지변환에 관심을 항상 기울인 것은 아니었다. 이로 인하여 연대 또는 사단 군단이 종심에서 적의 저항에 부딪혀 적시에 포병사격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결함은 경험을 축적하고 공격을 전개하면서 점차 제거되었다.
미군이 전쟁에 개입하고 미 공군이 절대적인 제공권을 장악하면서 포병의 진지변환 여건과 기동 가능성이 더욱 제한되었고 포병은 큰 피해를 입었다.(83-84)”
소련은 포병의 운용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적시적인 진지변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들고 있다. 연대 사단 군단의 지휘관들이 포병진지변환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아 결정적인 순간에 포병화력을 운용하지 못했다는 것을 들고 있는 것이다.
세번째 공군의 경우와 해군의 경우는 전반적으로 큰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공군의 경우는 숫적인 열세를 만회하지 못했다. 해군의 경우 6월 25일 강릉지역에 해병대를 상륙시켰으나 그 이후에는 숫적열세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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