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6일부터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체조, 구보, 목욕등의 특혜를 받았다. 그러나 4월 6일부터는 그것도 끝나고 말았다. 4월 7일부터는 오후에 물탱크에 가서 목욕만 하는 제한된 특혜로 바뀌었다가 한달후인 5월 7일에는 그것 마저도 중단되고 말았다.
5월 11일에는 외무부 장관에게 지금까지 자신의 상황을 작성해서 보고했다. 아내에게는 안부와 그동안 자신의 경과 그리고 장인에게 효성을 다하라는 내용을 적어 보냈다.
5월 19일, 이대용은 B동 제2층 제3호 감방으로 이감되었다. 역시 독방이었다. 이전에 여자수감자들이 사용하던 감방이었다. 자살자가 생겼다고 아우성치던 곳도 여기고, 이대용이 의무실에 갔을 때 노래를 불러준 곳도 여기고,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새어나온 곳도 여기였다. 한동안 사용을 하지 않아서인지 먼지가 쌓여 있었고, 바퀴벌레가 우글우글했다. 청소를 하고 벌레를 잡았다. 정리가 끝나자 우두커니 앉아서 아끼던 담배를 꺼내 피웠다.
1977년 5월 21일 간수가 와서 다시 짐을 싸라고 했다. 또 이감이었다. 어떤 낯선 건물의 2층 복도가 끝나는 곳 제12호라고 쓰인 감방에 수용되었다. 역시 독방이었다. 이제까지 있었던 감방중에서 가장 나쁜 곳이었다. 방에는 바퀴벌레보다 큰 갈색의 벌레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변소구멍에 계속 기어나왔다. 직감적으로 장기수감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수가 물을 길어서 방안을 대청소하라고 했다. 물탱크는 제12호 감방 바로 옆에 있었다. 변소에 물을 부었으나 물이 내려가지 않았다. 간수에게 이야기 했더니 팬티 한장만 걸친 경비원을 불러 청소를 시켰다. 그사이에 건넌방에 있는 수감자를 불러 방의 거미줄을 걷어내라고 했다. 병색이 완연한 그 수감자는 일을 하다가 말고 이대용이 가지고 있던 세수비누를 달라고 했다. 이대용은 불쌍한 마음에 동정심이 일었으나 비누를 줄 수 없었다. 작년 여름에 비누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났다.
이감이 되어서 앞으로 차입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가 불확실했고 이회장과의 비밀연락망도 끊어졌다. 지난 3월 15일에 약 20kg 정도의 차입을 받은 다음에 2개월 이상을 차입 받지 못했다. 식품은 깨소금이 조금 남아 있었고 완전히 고갈상태였다.
다시 굶주림과 단절의 고독과 병마와 싸워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차에, 식수를 받기 위해 문이 열려 있는 사이에 누가 성냥 한갑을 주었다. 이대용은 낯선사람이라 받으려하지 않았는데 다급한 표정으로 성냥갑을 받으라고 했다. 나중에 감방문에 닫힌 다음에 보니 성냥개피 밑에 이순흥 회장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이회장은 이대용에 대한 차입 금지 조치가 아직 해제되지 않고 있지만 내달 6월에는 가능할 것같다고 하면서 그때까지 비밀 연락망을 통해 필요한 식품을 보내줄테니 필요한 것을 적어 보내라고 적어놓았다. 연락원이 오후에 회신을 받으러 갈테니 시에스타 시간에 편지를 써놓았다 주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빨리 다시 비밀연락망을 구성한 이순흥 회장의 수완에 감탄하면서 외무부 장관에게 보내는 보고서와 필요한 물품을 적은 목록을 보냈다.
그다음날 오후에 생선자반, 미제 유과를 받았고, 그후 고추장, 콩자반, 짜방, 설탕, 비스켙, 찐쌀, 과자등을 전해받을 수 있었다. 이대용이 자신이 D동에 수감되어 있다는 것을 안것은 한참이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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