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중국 관계(박영실) 21 정전회담 수용과 중국의 주도권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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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 대한 정치적 주도권이 소련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것

한국전쟁의 군사적 주도권은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소련에서 중국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언급했다.

소련은 군사적인 주도권을 중공군에게 넘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도 정치적 주도권은 그대로 유지했다. 전쟁 당시 정치적 주도권이란 전쟁을 계속할 것인가 말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한국전쟁의 휴전은 미국과 소련의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소련은 자신들이 한국전쟁과 무관하다는 것을 애써 주장했으나 결국 미국의 요구에 의해 정전협상에 동의했다.

당시 소련은 정전에 반대했다. 미국을 괴롭힐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러웠던 쪽은 중국과 북한이었다.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지 않던 소련이 전쟁을 계속하자고 했으나 중국과 북한이 견디기 어려웠다.

전전회담 시작은 스탈린의 허락에 의해서 가능했다. 중국과 북한은 회담 진행과정도 소련이 주도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스탈린은 정전회담 진행에 대한 권한을 마오쩌둥에게 위임했다. 1951년 6월 30일 스탈린이 마오쩌둥에게 보낸 전문에서 정전회담은 북한과 중국이 주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박영실 169). 그리고 정전회담 서명은 북한군 총사령관 김일성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의 명의로 할 것을 지시하면서 총지휘권을 마오쩌둥에게 위임했다(심지화편, 조선전쟁, 아국당안관적해밀문건, 중책, 839쪽)

원문에서 표현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으나 총지휘권을 마오쩌둥에게 위임한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여기서 총지휘권이란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좁게 해석하더라도 스탈린이 말한 총지휘권이란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의 정치적 권한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군사적인 감독권에 이어 정치적인 권한까지 중국에 넘겨준 것이다. 이는 소련이 한국전쟁의 배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동안 소련은 한국전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행동을 계속했었다.

스탈린으로 부터 정전회담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한 마오쩌둥은 베이징에서 모든 것을 지휘했다.(박영실 170)

정전협상의 진행과정에서 중국과 북한의 입장차이가 발생했다.

북한은 정전회담이 북한의 위신을 떨어뜨리지 않고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국는 미국에게 양보를 해서라도 정전협정을 체결하려고 했다.

중국은 미국의 요구를 받아 들여 현재의 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김일성에게 통보했으며, 김일성은 중국의 이런 제안을 수용할 수 없었다.

김일성은 박헌영과 회담중 “내가 차라리 중국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 낫지, 이런 양보는 하기 싫다, 나는 차라리 다시 유격전쟁을 시작하겠으니, 당신들은 지하상태로 들어갈 준비를 해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조선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김싱럿은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정전에 대한 의견을 마오쩌둥에게 제시했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마오쩌둥이 했다.

한편 이때까지 소련은 여전히 한국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북한과 중국은 소련이 정전회담 과정에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중국은 1951년 9월 8일 스탈린에게 소련의 군사고문 83명을 조선의 중국인민지원군 부대에 파견하여 업무를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심지화 편, 조선전쟁, 아국당안관…, 하책 1019)

2019년 1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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