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은 최후의 공세를 벌이기로 했다. 당시 인민군이 부여받은 임무는 다음과 같다
“제1집단군 예하 5개사단의 병력으로 대구, 부산의 주요 병참선을 차단하는 임무와 함께 삼랑진 방향의 우측을 이용하여 공격하고 제2집단군과 협동작전을 펼쳐 대구지역에 있는 적을 포위격멸하고 1개 보병사단으로 부곡리에서 왜관까지의 적을 고착시키는 것이었다.(75)
제1집단군은 창령에서 밀양 우측의 삼랑진아래 방향으로 주력을 지양했다는 이야기다.
제2집단군의 임무는 다음과 같다.
“제2집단군은 4개 사단을 이용하여 영천, 양산방향으로 공격하고 제1집단군과 협동작전을 펼쳐 대구, 울산, 부산의 병참선을 차단하는 임무와 함께 대구 지역의 적을 포귀 격멸하고 일무 병력으로 해안의 좌측을 확보하는것이었다.(75)
제2집단군의 주력이 지향하는 방향은 영천과 양산을 잇은 축선이란 뜻이다. 여기서 영천전투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2집단군의 진출을 차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일전에 살펴보았던 6사단 7연대 1대대의 화산전투는 적의 진출을 차단한 결정적인 전투의 하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7월에서 8월의 북한군 공격방향이 대구에서 부산방향을 지향하는 중앙축선, 동해안 축선, 순천 마산 축선의 세방향이었다면, 8월말이후 공격축선은 함안에서 삼랑진 우측, 영천에서 양산축선 이렇게 두축선으로 이루어졌다.
이전의 포스트에서 8월 공세의 중앙축선에 대한 정리를 제대로 못했다. 우리에게는 왜관과 다부동 전투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8월공세에서 왜관과 다부동지역 공세는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 않았다. 다음 포스트에서 추가 정리를 하고자 한다.
여하튼 위의 두가지를 종합해 보면 북한군은 7월에서 8월의 공세에서는 포항에서 울산을 지향하는 축선과 순천에서 마산을 잇는 축선 양쪽에서 공격을 실시했고 8월과 9월 공세에서는 영천과 양산을 잇은 축선 그리고 창녕과 삼랑진아래를 지향하는 축선에 주력을 투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후의 공격을 위해 인민군은 8월 20일부터 31일까지 다음과 같이 재배치했다.
“제1집단군은 5개사단(6,7,9,4,2 사단)과 제16전차여단으로 구성된 타격부대릉 함안, 부곡리의 40km에 전개하였고 제10보병사단은 부곡리에서 왜관까지 60km 정면의 타격부대 좌측방을 방호하였다.(76)”
“제2집단군은 대규모 재배치를 실시하지 않았으며 7개 사단(3, 15, 1, 8, 12, 5)이 한국군 5개사단과 2개 독립연대에 대치하여 100km 정면에 전개되었다.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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