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사) 한국의 분단 1945 - 1948 post # 4

전번 포스팅에서 우리는 일본군의 항복을 규정으로 하는 일반명령 제 1호의 일부에 미국이 38선 이남의 한국에 미국이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내는 책임이 있다는 제안을 1945년 8월 10일 갑작스럽게 결정했다는 것을 알아 보았다. 미국은 일본이 곧 항복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난달 막 체결한 포츠담 협약의 변경을 제안했다. 전쟁은 예상했던 것처럼 1년이나 그이상 계속되지 않을 것이어서, 이제 전후 정치적 구상에 관한 문제가 시급한 주제였다.

미국은 소련군이 한국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 서울에 친 모스크바 정부를 세우면, 일본에서의 공산주의 운동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실, 전후 한국에 대한 모스크바의 목표는 어떤 정부가 설립되던 소련에 “우호적”인 것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이 자체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 대신 한국에 우호적인 정부를 갖는 것이 중요했으며, 그렇게 해야만 부활한 일본, 혹은 미국과 일본 연합군이 한반도를 이용하여 소련 영토를 영토를 공격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왜 스탈린은 한반도 남부 지역에 군대를 배치하겠다는 미국의 갑작스런 제안에 동의했을까? 소련 지도자는 포츠담에서 합의했던 협정을 존중하라고 어렵지 않게 요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적군(소련군)은 이미 한반도 북부에 있었고, 미국은 한국에 상륙할 준비가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소련이 한반도 남쪽 끝까지 진출을 계속하는 것은 간단하고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다른 결정을 내렸다. 그는 8 월 14 일 일반명령 제 1호 초안을 받은 후, 같은 날 그 명령의 내용에 관계없는 두가지 수정조항을 제안했다. 첫 째는 쿠릴 열도 전체가 소비에트 지역에 포함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일본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홋카이도 북쪽, 쿠릴열도의 남쪽 끝 4개의 섬이 소련의 통제하게 놓인다고 얄타협정의 내용을 명확하게 한 것을 의미했다. 이 네 섬의 운명에 관한 문제는 소련과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종식시키는 평화조약에 도달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이 문제는 모스크바와 토쿄간 심각한 분쟁으로 남았다.

스탈린이 제안한 두번째 수정조항은 훨씬 더 과감했다. 그는 홋카이도 절반 북쪽을 소련군이 점령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미국인들이이 제안을 거부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일본이 1919 년부터 1921 년까지 소련 극동을 점령했었기 때문에, 일본 영토의 일부 지역에 러시아군이 점령하지 않으면 러시아 국민들이 매우 실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시된 겸손한 제안에 어떤 이의도 없는 것이 가장 바라는 바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스탈린은 조심스럽게 일본에 점령할 지역을 조심스럽게 최우선적으로 요구하면서, 한반도에서 미국이 점령지역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받아 들었다. 그는 적군(소련군)이 38도 선에서 정지하고 만일 그선을 넘었다면 그 선 북쪽으로 철수할 것을 지시했다. 왜 소련 지도자가 남한을 미국에 양보했는지 분명하게 밝혀주는 문서는 없다. 이 핵심적인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소련 지도자가 그 이후 3개월 동안 한반도 문제를 유보하면서 일본에 대한 목표를 어떻게 추구했는지 심도 깊게 검토하는 것이다.

다음 포스팅의 주제는 이 문제가 될 것이다.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한국전쟁사) 한국의 분단 1945 - 1948 post # 4’

Your browser is out-of-date!

Update your browser to view this website correctly. Update my browser n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