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사) 한국의 분단 1945 - 1948, post 38

웨더스비 교수 씀

트루만과 스탈린.jpeg

이번 포스트에서 웨더스비 교수는 미국의 한국정책이 매우 다양한 견해가 종합된 결과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글에서는 웨드마이어 중장이 한국문제에 대한 보고를 함에 있어서 중국과 소련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와함게 웨더스비 교수는 동유럽 문제에 대한 인식이 한국문제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는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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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트에서 우리는 트루만 대통령이 1947년 9월 웨드마이어 중장을 중국과 한국으로 보내 사실을 확인토록 한 이유를 확인했다. 우리는 모스크바가 전후 중국공산당을 지원한 것이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는 전에 우리가 논의했던 바와 같이 스탈린이 1945년 국민당 정부와 서명한 협정을 충실하게 유지함으로써 극동에서 획득한 영토를 유지하려고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웨드마이어는 그가 이용가능한 제한적인 정보만으로 인민해방군의 성공이 소련이 아시아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고자 하는 마스터 플랜을 수행하는 증거라고 결론을 맺었다. 그리하여 중국에서 보낸, 마샬 국무장관에 대한 그의 첫번째 리포트는 행정부에게 최악의 공포를 확인시켜 주었다.

웨드마이어는 한국에 대하여, “다른지역에서 민주화와 부흥 프로그램을 위협하는동일한 사악한 세력들이 한국에도 있다”고 보고했다. 그는 소련은 남한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지만 대신 침투와 소요를 이용하여 전체 한반도를 장악하려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한국과 관련하여 소련과 협조를 계속하는 것이 무용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그런 협력은 소련이 정치적 지배를 팽창시키는 것만 도와줄 수 있었기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있다. 그는 또한 만일 미국이 한국에서 빨리 철수한다면, 소련이 한반도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다. 이는 소련이 아시아 전체에서 지위를 높이고 일본에서 미국의 위치를 약화시킬 것이었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웨드마이어는 남한에서의 군대가 소련의 소요에 대처할 만큼 충분히 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남한에서 민주주의를 수립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인정했다. 미국의 점령기구는 경찰과 민족주의 청년운동에 의지하여 질서를 유지했으나 이들 집단은 그들의 잔혹함과 임의적인 구금으로 광범위한 증오를 받고 있었다. 잠재적인 유권자들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해, 극우주의자들이 선거가 그들에게 유리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드마이어는 만일 미국이 상당한 경제지원을 제공하고 미국이 지도하는 “한국의 경비대를 만들어 경찰력을 희석시킨다면, 한국이 아시아에서 중요한 “자유의 방벽”이 될 수 있다고 낙관적으로 주장했다. 한국에서 완충지역을 유지하고자 하는 소련의 희망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는 비현실적으로 이러한 미국의 방안들이 결과적으로 소련에게 “중립화된 한국”을 완충지역으로 받아 들이도록 강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웨드마이어의 결론은 유럽 상황에 대한 우려로 인해 행정부내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동유럽 과장 프랜시스 B. 스티븐스는 한국은 “동서간 영향력과 세력을 향한 투쟁과 아시아인들의 민족주의적 목표의 후원에 대한 미국의 보장을 세계에 보여주는 상징이다. 만일 우리가 한국이 원점으로 돌아가 소련의 세력에 떨어지게 되도록 한다면, 세계는 우리가 소련과의 게임에서 졌다고 느낄 것이며, 우리를 신뢰하는 사람들의 희망과 우리의 권위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극동에서, 미국의 지원에 대한 민족주의운동의 기대는 심각하게 흔들리게 될 것이며, 그 결과는 더 커질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스티븐스는 한국에서 공산주의의 완전한 승리는 반란과 간접적인 침략으로 확장하겠다는 스탈린의 전략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자신의 분석을 결론 맺었다. 스티븐스가 동유럽에서 소련의 팽창에 대한 우려에 의해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다음 포스트는 동유럽의 상황을 검토하고 이것이 어떻게 한국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행동을 만들어 갔는가를 살펴보겠다.

[참고자료]
이 포스트는 다름 자료를 참고로 했다.

William Stueck, The Wedemeyer Mission: American Politics and Foreign Policy During the Cold War (University of Georgia Press, 1984)

James I. Matray, The Reluctant Crusade: American Foreign Policy in Korea, 1941-1950 (University of Hawaii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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