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중연합사령부 구성이후 중공군의 제3차 전역이 시작되었다. 조중연합사 구성이후 북한과 중국군사이에는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제일 먼저 문제가 된 것은 철도관리에 관한 문제였다. 보급선이 길어지면서 중국은 철도병들을 북한에 파견하여 철도보수를 담당하게 했다.
펑더화이는 1950년 11월경 가오강과 회담에서 철로 수송에0 관한 관리업무를 개선하고 중국과 북한의 수송업무를 협조하면서 철로연합지휘부 구상을 했다.
1950년 12월말 중국 측 사령관 류쥐잉 정치위원 위광셩 부사령관 예린으로 구성된 동북군구철도운수사령부가 설립되었다.
북한은 조선철도군사관리국을 임시로 설립하여 중국과 공동으로 철로관리를 담당했다.
북중간에는 철도운영에 대해 서로 이견이 많았다. 군수물자를 먼저 운송할 것인지 민용 및 경제건설을 위한 물자를 수송할 것인지(션즈화, 마오쩌둥 스탈린과 조선전쟁, 402-404)
1951년 중국측 대표 장밍위엔에 의하면 중요한 쟁점은 연합운수사령부의 지휘권이었다.
중국은 대부분의 철도차량을 본국에서 들여왔으며 북한의 철도와 기관차가 대부분 훼손되어 있었다. 철도를 수리하는 기계와 북한의 철도를 담당하는 인력 역시 중국이 공급을 책임지고 있었다.
북한이 철도운송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한 지휘에 실질적인 협조를 제공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북한주재 소련 군사고문이 북한의 지휘권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철도운수의 관리권은 국가의 주권과 연결된 문제라는 이유였다.(박영실 117, 중국의 당대중국사연구 지 2000, 제6기 34쪽에서 인용)
소련이 왜 북한의 주권을 주장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분명하지 않다.
이후 이문제는 스탈린에 의해 결정되었다. 스탈린은 중국 편을 들었다. “부대의 구성과 전쟁물자의 전선으로의 수송계획은 정확해야 한다. 따라서 북한의 철도는 반드시 중국사령부에서 관리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션즈화, 마오쩌둥 스탈린, 406)
한편 여기에서 스탈린은 북한내부에서 북한철도의 관리에 대한 의견이 다른 것을 시사하는 언급을 한다
“김일성은 이 의견을 지지했지만, 북한의 다른 사람들이 반대했다”는 것이다.
결국 스탈린은 “북한의 이익을 위해서도 북한과 중국의 더욱 밀접한 국가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다”고 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철도문제로 북한과 중국간에 이견이 발생한 것은 북한주재 소련군사고문의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북한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는데 그것은 소련군사고문의 입장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1951년 5월 4일 북한과 중국은 베이징에서 “조선철로의 전시 철로관리제도에 관한 협의”를 체결하고 관리체제, 조직기구, 수송력부분등에 대한 규정을 만들었다.
중국군이 북한에 들어오면서 곧바로 북중간의 주도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북중간의 관계로 이해할 것인지 아니면 북한을 두고 중국과 소련이 경쟁을 벌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더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박영실이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의 압력을 적정수준에서 차단시키면서 자신의 입자를 강화했다고 평가했다(박영실 119, 김일성 선집, 평양 조선노동당 출판사, 1953, 207-20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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