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는 북한군 6사단과 5사단 그리고 12 사단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3개 사단은 국공내전을 마치고 북한에 들어왔다.
소련이 기술한 한국전쟁에서 이들 중공군출신 사단들의 활동이 여기저기 나뉘어져 기술되고 있다.
7월 26일이후 인민군의 공격방향은 동쪽과 남동쪽이었다.
“인민군은 총사령부의 결정에 따라 7월 26일에 동쪽과 남동쪽 방향으로 계속 공격하였다.(p.65)”
여기에서는 우선 남동쪽에 관한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여기저기 산만하게 기술되어 있어 정리하기 어렵다.
북한군 총사령부의 결정에 따라 제1집단군은 8월4일부터 남동쪽으로 공격을 지향했으며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제1집단군은 8월 4일 자정까지 합천, 김천 동쪽 지역의 낙동강 우측 강변으로 진출하였고, 강을 건너기 위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제1집단군의 우측에서 공격하던 제6보병사단과 제603 모터찌클 연대는 진주를 점령하고 남강을 도하하여 함안을 점령하기 위해 전투를 실시하였다.(p.67)”
“미군 사령부는 남해안을 따라 부산으로 돌파하는 인민군의 위협을 심각하게 고려하여 마산-창녕-현풍 방어선으로 새로운 부대를 긴급히 이동시키기 시작하였다. 7월 31일부터 한반도의 남동쪽 항국들에서 상륙을 시작한 제2보병사단(제38보병연대 제외)과 미 제1해병사단이 창녕, 현풍 지역으로 배치되었다. 미 제25보병사단이 마산에 재배치되었고, 제29 및 제5독립보병연대들 또한 마산지역으로 집결하였다. 이지역에서의 미군 활동은 공군외에도 진해 지역으로부터 함포사격의 지원을 받았다(p.68)”
8월 13일 북한군 제6사단에 대한 기술은 다음과 같다.
“같은 날 적은 제6보병사단의 후방으로 진출하기 위해 사천지역에 해병대를 상륙시켰다. 진주지역으로의 상륙을 격멸하기 위해 제7보병사단의 주력이 투입되었고 상륙부대는 격멸되었다.(p.68)”
북한군 제7사단이 사천지역에 상륙한 해병대를 저지했다는 것은 제대로 파악하지못하고 있었다. 당시 해병대는 김성은 장군이 지휘했던 부대로 보인다.
7월 26일부터 8월 20일까지의 전투는 크게 세방향에서 이루어졌다. 첫번째 가운데 방향, 두번째 남동쪽, 세번째 동쪽이다.
여기에서 가운데 방향의 전투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인민군들의 노력이 집중되지 못했다. 인민군의 노력이 집중된 것은 남동쪽과 동쪽이라고 보아야 할 것같다. 이기간에 특히 노력이 집중된 지역은 동쪽지역이다. 다음에는 동쪽지역의 전투에 대한 기술을 정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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