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 녹취록 13, 38선으로 진격, 지촌전투와 김용배 대대장 그리고 북진

제2연대 대대장 중에서 석순천 소령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원래 보급관만 하다가 대대장이 되었다. 그는 군수일만 했지 때문에 지도도 잘 볼 줄 몰랐고 전투도 잘 하지 못했다. 이사람에게 북한강 넘어 있는 말고개를 점령하라는 명령이 내려갔다. 그는 말고개에서 약 7 km 정도 떨어진 곳을 점령하고 말고개를 점령했다고 보고를 했다.

밤 12시에 말고개에 있는 2연대를 추월하여 지촌리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대대장은 먼저 병사들 밥을 해서 먹일 준비를 하라고 하고 중대장 4명 정보장교와 작전장교 등 대대본부 요원 30여명과 함께 말고개로 향했다. 석순천 소령과 협조회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말고개 약 2km 전쯤이었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이대용은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련제 기관총 2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약 2미터 정도 앞에 있었는데 장전이 되어 있었다. 방아쇠를 잡고 있는 인민군 모자가 보였다. 방아쇠만 당기면 이대용의 복부에 그대로 맞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순간 뭐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자신도 모르게 공중으로 뛰어 하늘을 걷듯이 기관총을 피해 넘어간 것이었다. 땅바닥에 떨어지자 마자 권총을 뽑아 들고 인민군에게 겨누려고 하는 순간, 이대용 바로 뒤에 따라 오던 김용배 대대장이 인민군에게 “손들어”라고 소리질렀다. 그러자 여기저기 있던 인민군 10여명이 손을 들고 일어났다. 그제야 김용배 대대장은 권총을 빼 들었다. 이대용은 그런 김용배를 보면서 그의 순발력과 용기 그리고 지혜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포로로 잡은 인민군을 심문해 보니 1개여단이 지촌리를 방어하기 위해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이대용은 중대와 함께 북한군에게 공격해갔다. 3중대가 우측에서 공격했고 이대용의 1중대는 좌측에서 공격했다. 3중대장이 지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 앞쪽까지 점령했다고 보고했다. 이대용은 그렇게 알고 진출을 했는데 갑자기 앞에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침 안개도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이대용은 김용배 대대장에게 “말고개로 후퇴해서 다시 재정비해서 공격합시다”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김용배는 권총을 쏘면서 앞으로 나갔다. 그러면서 “이대위, 빨리 공격해서 앞으로 나가”라고 지시했다. 안개를 이용해서 지촌리 동네 뒤의 개울을 건너서 여단 본부를 공격하라는 것이었다. 안개를 이용해서 기습하면 100배 이상의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대용은 “그게 될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으나 죽어도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1개 여단이 배치되어 있는 지촌리 마을 앞을 걸어서 뒤로 돌아갔다.

이동하는 중간에 정찰을 하러 나온 북한군 소위를 만났다. 바로 앞에서 그를 권총으로 사살했다. 그리고 계속 올라갔다. 마침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이것 저것 생각할 것 없이 격투사격을 하면서 적 진지로 돌격했다. 소총을 허리춤에 대고 계속 사격을 하면서 앞으로 나가도록 했다. 북한군 여단장 호를 발견했다. 그곳에서 포로를 몇명잡았다. 여단장은 이미 도망을 가고 없었다. 주변을 뒤져 보니 고등어 통조림 15개정도를 찾았다.
여단장 호에 앉아 있으니 북한군 연락병들이 보고를 하러 들어왔다. 그들도 모두 포로로 잡았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스스로 포로가 되기 위해 들어오는 격이었다.

그렇게 앉아 있는데 김용배 대대장이 들어와서 야간에 화천으로 공격하라고 지시를 했다. 밤에 이동을 해서 공격을 하는데 그날은 안개가 하나도 없었다. 새벽에 북한군 여단, 사단 사령부의 군관들이 여기저기로 도망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화천을 점령했다.

그 이후 김화에서 복개로 진출했다. 추격전이었기 때문에 치열한 전투는 아니었다. 검블랑과 백등령을 지나 세포로 들어갔다. 그리고 회양을 지나 원산으로 들어갔다. 이미 원산은 동해안에서 올라온 국군이 점령한 상태였다.
원산에서 다시 평양으로 진격했다. 마전령과 이호비령을 넘어 양덕에서 전투를 하고 성천을 점령했다. 10월 19일 성천에서 평양으로 거꾸로 들어갔다. 그러나 황해도에서 올라온 1사단이 평양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순천으로 진출했다. 그날이 10월 20일이었다. 순천의 적십자 병원에서 북한군들이 간호원 12명을 납치하려고 하는 순간에 이들을 구출했다. 다시 개천을 지나 청천강을 지나서 원참에 도착했다. 거기서 김일성 차를 노획했다. 세단이 22대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무초대사의 차도 있었다고 한다.

다시 희천으로 들어갔다. 적이 아무리 많아도 무섭지 않았다.

녹취록 1, 2, 3, 4, 5, 6, 7, 8, 9, 10,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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