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황>
덕천, 영원 맹산 등 피아 필히 쟁취해야할 유리한 지역의 확보를 공고히하고, 전역적 승리를 발전시키기 위해 역량을 집중, 먼저 미제9군단 2개사단을 섬멸하고, 강력한 일부병력으로 순천으로 진격하여 적군의 퇴로를 차단할 것을 결심
이후 유엔군이 후퇴하기 시작하면 모든 전선에서 맹추격과 측방공격을 실시하여 부분적으로 섬멸키로 함
한편 팽덕회는 동부전선에서 중국군이 공격하면 서부전선의 유엔군이 청천강으로 후퇴할 가능성이 크며 안주, 원산간의 협소한 지대에 방어선을 구축하여 중국군의 남침을 저지할 것으로 보고 27일 저녁부터 제9병단도 반격을 가하도록 함
27일 오전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달함
42군
원래 계획에 따라 북창리, 가창리의 적을 섬멸, 그 후 주력부대는 순천, 숙천 방향으로 진격해 적의 퇴로를 차단
별도의 1개사단은 성천으로 공격전진, 그 지역에서 도주하는 적을 섬멸, 혹은 후방에서 활동중인 인민군부대와 합류하여 평양, 서울 사이로 맹렬히 진격
제38군
주력으로 원리, 군우리 방향으로 공격, 일부부대는 군우리 남쪽의 삼소리를 향해 전진, 군우리 개천에서 남으로 도주하는 적을 우회해서 차단
제40군
강력한 일부부대로 구장의 적 퇴로를 차단하며, 만약 적이 남쪽으로 도주하면 군 주역은 즉각 추격하여 포위시도
제39군은
정면의 적을 섬멸한 수 원리를 향해 공격 제38, 40군이 구장 지역의 적을 섬멸하는데 협조
제66군
고성동, 용산동으로 근접 마주치는 적을 견제, 적의 일부를 섬멸후, 영변, 군우리 방향으로 공격
제50군
주력은 대녕강 서안의 작전 섬멸후, 박천 남쪽으로 공격해 들어감
(27일 이전과 이후의 작전상황이 달라졌다. 항미원조전사에는 27일 작전변경에 있어서 모택동과 군사위원회의 지시나 조언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일단 작전이 시작된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모택동이 개입하지 않았고 지원군 사령관이 직접 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어디까지 개입하며 어디서는 개입하지 않느가에 대한 기준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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