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전사 11-1 제2차 전역직전 한-유엔군의 탐색작전과 중국군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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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전역으로 중공군의 타격을 당한 한-유엔군은 제1차 전역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중공군의 공세의 정도로 보다 심각한 제2차 공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충분하게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세적인 작전을 수행했다.

당시 한국전쟁에서 한-유엔군의 가장 큰 실책이 아니었나 한다. 상황이 바뀐 것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유엔군은 11월 6일부터 일부병력을 동원해 중국군에 대한 탐색공격을 실시함>

서부전선

국군 제7사단이 비호산으로 진격, 8사단이 덕천을 공격
얼마후 영 제27여단, 미제24사단과 미 기병 제1사단도 북으로 청천강을 건너 일부병력으로 박천 영변을 향해 진격

서쪽에서는 청천강 하루로부터 북으로 가산을 거쳐 동으로 장신동, 용산동, 사동을 통해 영변에 이르는 일선을 점령하여 총공세를 위한 공격개시선을 삼을 것을 기도
동부전선

미 해병 제1사단이 황초령으로 진격, 미 제7사단 일부는 풍산으로 북진, 국군 수도사단 일부는 명천을 점령
중국군이 조선에 증파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압록강 교량을 폭파하기 시작

맥아더는 공군에게 최대한의 역량으로 만주변경의 모든 국제 교량과 변경으로부터 남쪽의 전선에 이르는 구역의 모든 통신수단, 군사시설, 공장 및 도시와 촌락 파괴를 지시함
(미국공군대학, ‘한국전쟁중의 미국공군’)

유엔군은 매일 1천여차례에 달하는 비행기 출동 공중 작전을 진행

<유엔군의 탐색작전에 대한 중국군의 대응>

유엔군 지상부대가 탐색공격을 개시하자 중국군은 예정된 계획에 따라 일부 병력으로 저항하면서, 중국군 깊숙하게 유인하는 작전을 실시하고 주력부대도 따라서 후방으로 이동함

서부전선의 중국군 제1제대 각사단(115, 119, 117, 125)는 박천, 영변, 비호산, 덕천 일선에서 한-유엔군에게 저항하면서 적시적인 소규모 반격을 실시하여 적에게 살상을 강요

11월 9일 자발적으로 비호산 일대 진지에서 철수, 10일에는 박천에서 철수
동부전선에서 중국군은 7일 황초령에서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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