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기술한 한국전쟁)10, 서울(6.28-7.2) 인민군 6사단 김포방면 상황

북한군 6사단의 초기 작전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당시 초기에는 성공적으로 한국군 1사단을 격파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진출이 어려웠다. 원래는 6사단이 영등포 지역으로 진출하는 것으로 계획을 하고 있었으나 진출이 늦었다. 소련이 기술한 한국전쟁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인민군은 미 공군의 강력한 폭격에도 불구하고 6월 28일에도 공격을 계속하였다. 제6보병사단의 연대들은 6월 28일 동틀 무렵 서마동, 석탄리 방어선에서 적을 공격하여 김포지역으로 적을 격퇴하였으며 10시간의 전투 끝에 도시를 점령하였다.적은 제6보병사단의 전진을 지연시키기 위해 김포지역으로 수도보병사단 예하 제18연대를 이동시켰다(p.49)”

전쟁초기부터 6사단은 미 공군의 강력한 폭격으로 진출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이와 함께 인민군 제6사단은 김포지역에서 10시간의 전투를 했다고 하는데 여기가 개화산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도시란 김포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수도보병사단 예하 제18연대가 김포지역 전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좀 더 찾아 보아야 할 것 같다. 김포지역 초기전투에서 수도사단 제18연대가 투입되었다는 기록은 별로 본적이 없는 것같다.

“6월 29일 하루 동안 제6보병사단은 포병과 공군의 지원을 받아 수차례 이어진 적의 역습을 격퇴하면서 김포비행장을 점령하기 위해 격전을 벌였다. 6월 30일 아침부터 사단은 적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였고 적의 완강한 저항을 극복하면서 서울-인천 간 도로를 차단하고 6-8km를 전진하였다. 7월 1일-2일 간 사단의 연대들이 적 공군의 강력한 지원하에 적의 역습을 격퇴하면서 점령한 방어선에서 결전을 감행하였다.(p.49)”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김포비행장 방어를 위해 싸웠던 한국군은 김포사령부로 정보학교인 남산학교 장병들이 주축을 이루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전투에서 포병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압도적인 인민군 6사단의 보병화력으로 고전했다는 기록은 있다.

7월 1-2일 제6사단이 치루었다는 전투와 관련하여 어떤 한국군 부대가 수행했는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결국 김포지역의 선전이 매우 초기 전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소련의 기록이 입증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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