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7,12,19일 제9병단 3개군은 사령원 겸 정치위원 송시륜의 지휘하에 집안, 임강으로부터 북한에 투입되어 동부전서에서 작전임무를 담당
(제9병단 27군은 1950년 11월 4일 안동에서 북한으로 투입되어, 영국 제27여단의 공격을 맞을 준비를 함, 차련관에 이른 후 다시 명령에 따라 7일 안동을 거쳐 동부전선으로이동 11월 12일 임강을 통해 조선에 투입됨)
중국군은 강화되어 9개군 30개사단 38만명 규모로 상대방 전선배치 지상작전부대의 1.72 배였다. 동-서 두개의 전선에서 중국군 병력은 모두 우세했음
한-유엔군 후방에서 유격전을 수행하기 위해 제42군 2개대대와 조선인민군 1개 연대로 유격지대를 편성, 11월 중순 맹산, 양덕, 성천 지역으로 침투시킴
후근분대 1개를 증가시켜 후방지원과 수송능력을 강화하고, 기존의 3개 분대를 보강함
철도병 제1사단을 북한에 투입, 철로보수 역량을 강화
각군 공병대대로 희천, 행천동에서 영원, 덕천에 이르는 도로를 보수, 식량, 탄약등 물자 수송능력 향상
외교적인 노력도 경주
남한문제의 평화적인 해결과 한반도에서 일체의 외국군대 철수에 관한 일관된 주장을 전개
(결국 외국군 군대의 철수에 관한 중국의 주장은 1956년 철수의 계기가 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임)
오수권을 대표 UN 대표단을 파견 미국이 중국 영토인 대만을 침략한 문제를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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