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간 군사분야이행합의 내용에 대해 과거 육군의 3성 장군 출신이었던 신 모 장군이 청와대에 공개토론을 하자며 청원을 올린 글을 보았다. 내용인 즉, 이번 남북합의서는 재래식 군사력이 우월한 남한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재래식 군사력은 떨어지기 때문에 핵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즉 북한이 우리에게 비교우위에 있는 핵은 그대로 두고 재래식 군사력이 우수한 우리만 양보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 문제제기를 보고 한참을 생각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 군사력이 북한보다 떨어진다며 국방예산이 부족하다고 하던 때가 어제같은데 언제 우리의 재래식 군사력이 북한을 추월했는지 잘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이제까지 군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닌가 ? 과거 프랑스의 클레망소 대통령이 전쟁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군인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군에 관련된 것은 무조건 군대에 맡겨 놓아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리라 생각한다.
아마도 클레망소가 한 이야기는 국방이나 군사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고, 전문가적 견지에서 부여된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마련해서 수행하는 것이 군인들의 역할일 것이다. 물론 정치적 견지에서 정책을 입안하는데는 군사전문가들의 견해가 당연히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군사전문가들의 견해가 정책의 방향을 좌우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패배한 가장 큰 이유는 베트남전에 관한 정책적 방향을 군인들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아마도 웨스트모어렌드 장군일 것이다. 그는 월남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상군을 늘려서 미국이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지게 만들었다.
우리나라 사회는 군의 특수성을 매우 크게 인정한다. 군의 운영과 정책은 군인들이 거의 독점한다. 군에 관한 정보가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개입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 국민들은 신 모 예비역 중장이 참 한심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군과 국방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는 일반국민들이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틀린 이야기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이다.
생각나는데로 남북간 군사분야이행합의와 관련하여 일부에서 반대를 하는 몇가지 문제의 의미와 내용을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비무장지대에 있는 GP 철수에 관한 이야기다.
에이브람스 주한미군사령관 내정자는 GP 철수를 마치 유엔사령관의 권한인 것 처럼 이야기 했다. 주한 미군사령관은 연합사령관이자 유엔군사령관이라는 직책도 겸임한다. 이야기가 나온김에 연합사령관과 유엔사령관을 한사람이 겸임한다는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연합사령관은 전쟁에 대비하는 역할을 하고 유엔군 사령관은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사람이 동시에 전쟁에 대비하면서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 한국에서 일어나는 군사와 관련한 많은 문제들은 전혀 역할이 다른 유엔군과 연합군 사령관이 동일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연합사와 유엔사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룰기회가 있을 것이다.
GP 철수와 운영에 관한 문제는 한국군의 평시작전권의 영역이다. 지피는 일반전초다. 즉 적이 공격해올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주력이 어떤 방향을 지향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일반전초의 임무다. 따라서 GP는 전투를 참가하는 것 보다 적의 공격을 경고하고 철수를 해서 생존을 보장한다. 무모하게 죽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이라면 GP는 적이 알 수 없는 위치에 설치를 한다. 상대방이 알 수 없는 곳에서 적의 동태를 확인해야 피해를 입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무장지대내의 GP는 상기한 일반적 군사적 측면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띠고 있다. 북한이 그동안 계속해서 무장공비를 침투시켰기 때문에 무장 공비의 침투를 파악하기 용이한 지역에 GP를 설치했다. 그리고 무장공비나 남파간첩의 침투를 방지하기 위해 비무장지대내의 작전을 수행했다. 이런 작전은 평시작전권에 해당한다. 지금 전방에서 비무장 지대를 지키는 155 마일의 철책선 방어도 지금껏 무장공비나 남파간첩의 침투를 방지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북한이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남한에 직접 공비나 간첩을 침투지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군은 아직 무장공비나 남파간첨의 침투를 방지하기 위한 작전에 주안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군은 상당수의 장병들을 북한의 포병사정거리 내에 두고 있다. 만일 전쟁이 발생하면 우리는 초전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는 것이 명약관화한 상황이다.
각설하고 우리군은 연합사로부터 1994년 평시작전권을 인수받았다. 노태우 전태통령이 그 당시 전작권을 환수하겠다고 했고 그 일환으로 평시작전권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평시작전권이라는 것은 그 실체가 모호하다. 이미 그 이전부터 비무장지대에서 북한의 무장공비나 남파간첩에 대한 작전은 한국군이 단독으로 수행했다. 한국 합참의장은 대간첩본부장이라는 직책을 지니고 있었다. 실제 대간첩본부장은 지금 말하는 평시작전권의 범주에 드는 지휘를 수행해왔다.
당연히 합참의 작전본부는 주로 GP와 GOP에 관한 작전을 수행해왔다. GP를 얼마나 어떤 방향에 운영하는가 하는 것은 순전히 합참 작전본부의 영역이었다. 신 모 예비역 중장도 합참 작전본부장 출신이니 그런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에이브라함즈 연합사령관 겸 유엔사령관 내정자가 일부지역의 GP 철수와 관련한 내용을 유엔사의 영역인양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국합참은 응당 GP 운영에 관한 것은 평시작전권 행사에 관한 내용이므로 유엔사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앞에서도 밝힌바 있지만 지금 운영중인 GP는 정규전에 대비한 역할과 상당히 다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적이 남침을 할 것인가 아닌가를 첨단 정보수단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무장공비나 남파간첩의 침투를 방지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GP는 작전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부담이 크다. 지금 우리가 보유한 첨단장비를 제대로 운용하면 장병들의 생명을 걸지 않고도 충분한 경계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지금 군이 해야 할 것은 GP 철수가 부당하다고 불평불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GP 철수로 발생할 수 있는 경계작전의 공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느냐를 고민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와 군사의 역할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은 군사적 의미보다는 다분히 냉전적 질서속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 확대하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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