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니가 패션계에 처음 등장해 망측하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킨 지 70년이 지났다.
바티칸은 비키니를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호주 및 벨기에에서 비키니가 금지되었다.
여성이 배꼽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논란이 되었다. 전적으로 프랑스인들 덕분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사회적 관습의 변화, 여성의 독립성을 고취 그리고 여가 계층의 부상이 곧 더 노출이 심한 수영복을 입게 만들었다.
1951년 6월 8일 파리 몰리토 야외 수영장에서 찍은 파레오 모자와 투피스 비키니를 입은 수영복 모델 3인의 모습이다.
“비키니(bikini)”라는 말이 1946년 7월 1일 최초로 원자폭탄 실험이 있었고, 이후 22차례의 핵폭탄 실험이 진행되었던 태평양의 비키니 환초에서 루이 리어드가 따온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비키니가 데뷔하기 3주 전 또 한 명의 프랑스인 자크 헤임이 세계에서 가장 작은 수영복라면서 투피스 “아톰(Atome)”을 발표했다. 하지만 아톰은 곧 비키니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핵폭탄을 연상시키는 이름이 이상하긴 했지만, 1940년대 아름다운 여성을 “bombshell”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46년 7월 5일 미셸린 베르나디니가 파리의 몰리토 수영장에서 단 30인치의 천으로 만든 “작은” 비키니를 입고 찍은 사진이다. 손에 성냥갑을 들고 있는데, 그 안에 자기가 입은 수영복이 다 들어간다는 의미다.
뉴욕의 패션 기술 연구소의 박물관 책임자 발레리 스틸은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에서는 1930년대부터 투피스 수영복을 입었다. 하지만 노출이 점점 심해지면서, 배꼽을 노출하는 비키니가 등장하자 엄청난 논란이 생겼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꽤 오랫동안 금기시되었다. 투피스로 가슴을 어느 정도 노출하는 것은 괜찮았지만, 배꼽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마릴린 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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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드의 비키니 모델 베르나디니는 스트리퍼였지만, 전문 모델들은 너무 망측하게 생각했다.
비키니가 나오고 1년이 지난 후에도, 1947년 스물한 살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입은 것처럼, 많은 이들이 여전히 배꼽이 드러나지 않는 보다 보수적인 투피스 스타일을 선호했다.
수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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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을 드러낼 수 없었다. 말 그대로였다. 헤이스 코드로 알려진 할리우드 영화 검열 기준에서는 화면에 배꼽이 나오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잡지도 마찬가지로 배꼽 노출이 금지되었고, 일부는 모자이크로 처리하기도 했다. 초기의 많은 투피스 수영복의 하의가 배꼽을 가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상부가 길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리어드는 당시 비키니는 진짜 비키니가 아니었다면서, “결혼반지를 손가락 안쪽 끝까지 끼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냐”라고 말했다.
브리짓 바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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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미스 월드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처음으로 비키니 의상을 선보였으며, 스웨덴의 키키 하칸손이 세계 최고 미녀로 뽑혔다. 교황 비오 12세는 비키니를 죄악이라고 칭했다. 종종 종교적 신념에 따른 도덕적 비난은 폭넓게 수용되는데 장애물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후 비키니는 전 세계 미인 대회에서 금지되었다. 1977년이 되어서야 미스 아메리카 대회에서 투피스 수영복을 허용하게 되었다.
브리짓 바르도는 1952년 프랑스 영화 “마리나(Manina, the Girl in the Bikini)”에 열일곱 살의 나이로 출연했다. 비키니가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 중 하나였다. 이 젊은 여배우는 1953년 비키니를 입고 제6회 칸느 국제 영화제에 데뷔했다. 1956년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And God Created Woman)”에서 다시 비키니를 입고 등장했다.
바르도가 비키니를 입은 모습이 유럽에 비키니를 유행시키는 계기가 되었지만, 미국에서의 유행은 그보다 더뎠다. 더디게 느렸습니다. 또한 신인 배우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이끌어내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이 영화는 외국영화였기 때문에 미국의 몸통 노출 금지 조치를 피해 1958년 상영될 수 있었다.
본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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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줄라 안드레스는 1963년 제임스 본드 영화 “닥터 노(Dr. No)”에서 허니 라이더 역할로 출연했다. 흰색 비키니에 허리에 칼을 차고 바다에서 나오는 모습이었다.
분명 영화속 비키지 장면 중 최고 중 하나였다. 안드레스는 이 장면이 확실히 모든 시간 최고의 비키니 영화 순간 중 하나입니다. 여배우는 그 장면이 자기 영화 인생에서 최고였다고 한다.
그녀가 입었던 비키니는 2011년 경매에서 61,500달러에 낙찰되었다.
할리 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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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줄라 안드레스의 비키니 영상이 2002년 또 한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 “007 어나더데이(Die Another Day)”에서 재연되었다. 이번에는 할리 베리가 오렌지색 비키니를 입고 바다에서 나오는 모습이었다.
플레이보이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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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플레이보이지가 처음으로 비키니를 선보였습니다.
“해변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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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를 보면, 디즈니 소속 아네티 푸니셀로는 배꼽이 노출되지 않은 꽤 보수적인 핑크색 비키니를 입고 있지만, 1950년대와 60년대 초반 인기를 끌던 프랭키 아발론이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한 이십 대 영화 “해변 파티(Beach Party)”는 흥행에 성공했다.
보도에 따르면, 푸니셀로는 디즈니와 비키니를 입지 않는 조건으로 타 영화사의 영화 출연에 합의했지만, 이 1963년 영화에 대해 디즈니는 못마땅했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청순한 십 대의 문화와 해변 파티 영화의 시대를 열었다. 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푸니셀로로 인해 미국 여성들도 비키니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점점 인기를 끌게 되었다는 점이다. 비키니는 곧 주류가 되었다.
60년대 초반의 팝 문화 사운드트랙에는 브라이언 히랜드의 노래 “아주 작고 노란 물방울무늬 수영복(Itsy Bitsy Teenie Weenie Yellow Polka Dot Bikini)” 같은 노래가 들어있었다.
스포츠 일러스트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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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 처음으로 비키니를 입은 모델 바베트 마치의 사진을 선보여 논란을 일으켰다.
라퀠 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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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 즈음의 성 혁명으로 비키니가 받아들여졌다.
1966년 영화 “공룡 100만 년(One Million Years BC)”는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누더기 사슴가죽 비키니를 입고 출연한 라퀠 웰치를 최고 인기 스타로 올려놓았다.
레아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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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에피소드 VI: 제다이의 귀환(Star Wars Episode VI: Return of the Jedi)”에서, 레아 공주를 연기한 캐리 피셔는 악당 자바 더 헛에게 붙잡혀 금과 금속으로 된 비키니를 입고 등장했다. 영화사에 기억될만한 순간이었다. 피셔를 일약 섹스 심벌로 도약시킨 것은 물론, 매년 할로윈 축제 의상으로 인기를 끌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녀 삼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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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녀 삼총사 2(Charlie’s Angels: Full Throttle)”에서 마흔 살이 된 데미 무어가 검은색 비키니 몸매를 선보이면서 영화 관객과 일반 대중의 주목을 끌었다다.
이제 비키니는 망측한 옷차림에서 아주 흔한 여름철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출처: CNBC, “The history of the bik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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