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강철의 역사 (2) - 철과 석탄

“강철의 역사 (1) - 강철이 탄생하기까지의 여정” 에서 계속

성검과 사무라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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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에 따르면, 성검 엑스칼리버는 당당하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 뜻은 “강철을 자른다”는 의미다. 하지만 당시에는 강철이 없었다. 아더왕 시대부터 중세 시대까지, 유럽은 철과 강철 생산에 뒤져 있었다.



<드 보훈 가문이 소장 중인 중세 시대 검>

로마 제국이 몰락하면서(공식적으로 476년), 유럽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인도는 여전히 훌륭한 강철을 만들고 있었지만, 유럽까지 공급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도로도 부실했고, 도중에 상인들이 습격 당하거나, 전염병과 질병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어 스페인의 카탈로니아에서 인도와 비슷한 노인 “카탈로니아 노”가 개발됐고, 여기서 생산된 단철로 말굽, 마차 바취, 경첩 및 철제 갑옷이 제작되었다.

기사들은 특별한 검을 만들었다. 검을 비틀어 벼린 결과, 검날에 해링본 편조 문양이 나타났다. 바이킹은 이 문양을 용의 비늘이라고 생각했고, 아더왕의 엑스칼리버와 엘시드의 티조나 같은 검은 신화가 되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검은 지구 반대편에서 태어났다. 일본인들은 새로운 단조 기술을 알아냈다. 검날을 두드려, 가볍고 치명적일 정도로 날카로운 검을 만들었다. 이 검은 최고의 선물 중 하나가 되었으며, 가문의 가보로 대대손손 대물림이 되었다. ‘카타나’라고 불리는 이 단조법은 복잡하고 의식에 가까운 단계를 거쳤다.

일본 장인들은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목욕으로 몸을 정갈히 했다. 몸이 깨끗하지 못하면, 악령이 검에 스며든다고 생각했다.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단철 덩어리를 숯불에 달군다. 2) 달궈진 단철을 두드려 편다. 3) 반으로 접는다. 4) 물에 식힌다. 이 과정을 약 20차례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날에 아크 모양이 생겼다. 그리고 두르려 펴고, 다시 접는 과정을 통해, 숯에서 나온 탄소와 접촉하고, 그에 따라 단철이 강철로 변했다.



<14세기 가마쿠라="" 막부시대="" 일본="" 최고="" 도공으로="" 여겨지는="" 마사무네가="" 만든="" 일본도.="">

최종적으로 날을 숯돌에 갈아 완성하면, 소용돌이 치는 옹이와 잔물결이 있는 나뭇결과 비슷한 패턴이 날에 나타났다. 유럽에서 만든 검에 나타난 용의 비늘보다 더 미세했다. 그리고 “비사(飛砂)”, “초승달(初─)” 등의 이름을 붙였다. 현재 남아있는 다섯 종을 “천하오검(天下五剣)”이라 부르며,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철과 석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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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고로(blast furnace)는 모래 시계처럼 생겼다.

독일 라인강 계곡의 금속공은 3미터 크기로 다량의 철광석과 숯을 넣을 수 있고, 하부에 2곳의 송풍구가 있는 고로를 개발했다. 노를 가열하면, 철이 더 많은 탄소를 흡수할 수 있고, 이를 주형에 부어 쉽게 주철로 만들 수 있었다.



<중세 고로의 원리>

이 방식은 중국이 1700년 전부터 사용한 제련 방법이었지만, 노의 크기가 훨씬 더 컸다. 또한 송풍구 아래에 공간을 두고 용융된 철이 바닥에 모이도록 만들었다. 이 공간의 모양이 새끼 돼지가 젖을 먹는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에, 여기서 만들어진 철을 선철(pig iron)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런 혁신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유럽은 전쟁에 휩싸여 있었다. 13세기 대포가, 14세기 소총이 발명되자, 새로운 금속에 대한 갈망이 더해졌다. 선철은 주형에 부어 대포와 소총을 바로 만들 수 있었고, 유럽은 예전처럼 무기를 대량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철의 혁명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유럽이 전 세계에 세력을 펼쳐 나가면서, 더 많은 배와 제련용 숯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양의 목재가 소비됐다. “Steel: From Mine to Mill, the Metal That Made America”에 따르면, 영국 고로 하나를 돌리는데 연간 240에이커(약 30만 평) 면적의 나무가 필요했다고 한다.

영국은 해결책을 아직 개발되지 않은 신세계의 자원으로 택했고, 대서양을 가로 질러 미국 식민지에서 철을 제련해 가져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자국내 제철 산업이 파괴되었다.

제철용 연료에 대한 영국의 고민은 한 주철 냄비 제조업체에서 해결책이 나왔다. 아브라함 다비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맥아 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1700년대 보리밭을 갈아 엎던 당시 발견한 불에 타는 돌덩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석탄이었다.

다른 이들도 석탄을 태워 철을 제련하려고 했었지만, 석탄을 먼저 구운 다음 이를 다시 제련에 사용한 것은 다비가 처음이었다. 구운 석탄은 숯보다 훨씬 더 오래 열을 유지했고, 제련공들은 선철을 더 묽게 녹일 수 있었다. 묽어진 선철은 주형에 부어넣기가 훨씬 더 수월했다. 오늘날 다비의 대형 고노는 콜브룩데일 철 박물관에 남아있다.

이렇게 영국이 석탄을 제련용 연료로 사용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강철을 만들내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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