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과 모바일의 공세로 북미 최대 장난감 유통체인 토이저러스(Toys ‘R’Us)가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이 사건은 장난감을 만들어 파는 것이 얼마나 힘든 사업이며, 토머스 알바 에디슨이 장난감 사업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뼈아픈 실패를 겪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에디슨은 축음기, 전깃불, 영화 및 20세기의 다른 필수품을 만들었거나, 만드는데 기여한 것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만, 말하는 인형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에디슨은 1877년 축음기를 만들었고, 1877년 12월 24일 이를 특허 출원했습니다. 그리고 1878년 1월 24일 에디슨 스피킹 포노그래프 컴퍼니( Edison Speaking Phonograph Company)를 세웠으며, 1878년 2월 19일 특허권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축음기가 큰 인기를 끌었지만, 곧 인기가 시들해졌고, 에디슨 포노그래프 컴퍼니는 1887년 문을 닫았습니다. 이어 에디슨은 에디슨 포노그래프 토이 매뉴팩처링(Edison Phonograph Toy Manufacturing Co.)을 세우고, 몸속에 축음기를 설치해 입으로 짧은 동요가 흘러나오게 한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위키피디아에서 에디슨의 축음기 인형(Phonograph Doll)에 관한 글에 들어가면, 인형이 들려주는 동요를 들어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소름 끼치는 음질 때문에, 에디슨도 이 인형을 “작은 괴물”이라고 불렀던 것이 이해가 됩니다.
캘리포니아 멘로 파크에 건설된 공장에서 예약된 인형 수백 개를 생산했습니다. 인형은 키는 약 56cm였고, 한 곡의 동요가 담겨 있었습니다. 공장 직원들이 밀랍판 위에 동요를 새겨 인형에 넣었기 때문에, 동요를 다른 곡으로 바꾸기가 불가능했습니다. 예를 들어, “반짝반짝 작은 별”이 녹음되었다면, 평생 동안 이 한 곡만 들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동요를 재생할 때마다 매번 핸들을 돌려야 했고, 흘러나오는 소리도 끔찍했습니다. 아이들을 재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괴롭히려는 것이 더 맞는 소리였습니다.
금속과 나무로 만들어져 무게가 거의 2kg이나 나갔던 이 인형은 불과 몇 개월 만에 판매가 중단되었습니다. 가격도 비쌌을 뿐 아니라, 작동도 잘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속치마만 입힌 것은 10달러였고, 옷을 다 입힌 것은 20~25달러였습니다. 당시 일반 노동자의 몇 주일치 주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1890년 당시 축음기는 150달러에 판매되었지만, 1897년에 이르러 20달러로 떨어졌습니다. 밀납판은 내구성이 약했기 때문에, 축음기 바늘에 닿아 금방 못쓰게 되었습니다. 이 축음기 인형으로 누구를 때리면, 맞은 사람은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인형은 고장 나 소리가 나자 않았습니다.
1890년 약 2,500개의 인형이 상점에 출하되었지만, 실제 팔린 것은 약 500개 정도뿐이었으며, 그마저도 대부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반품되었습니다. 1890년 5월 결국 생산이 중단되었고, 나머지 인형은 축음기를 빼고 입술을 꿰맨 후 판매되었습니다. 축음기가 들어있는 채 남아 있는 오리지널 인형은 몇 개 안되기 때문에 아주 희귀품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몇 개라도 인형은 남았지만, 처음 주당 10달러에 60,000주가 발행된 에디슨 포노그래프 토이 매뉴팩처링 주식은 이후 급락을 거듭해 1895년까지 몇 센트에 거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에디슨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발명가라는 일과 기업가라는 일이 꼭 같은 것은 아니더라. “
<출처: Global Financial Data, “Edison and the Talking D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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