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세장의 심리학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때 안전한 곳으로 피하고 싶은 욕망은 원초적인 본능이다. 거리에서도 그러하고, 자연에서도 그러하며, 지옥으로 변한 주식시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누구에게나 한계점이 있고, 괴로움이 극심해질 때가 되면 그 한계점이 어딘지 알게 된다. 약세장의 심리도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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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에게 고통을 참을 수 있는 한계점은 저마다 다 다르지만, 내 한계점이 40% 손실이라고 가정하고 생각해 보자. 또한 이 한계점에 이르러서 주식을 팔았고, 이후 주가가 더 하락했다고 해보자.

주가가 고점 대비 40% 하락했을 때 매도했더니, 주가가 45%까지 더 하락했다면, 내가 판 가격보다 8% 더 낮아진 것이 된다. 다시 주가가 고점 대비 50%까지 하락했다면, 내가 도망친 가격보다 25% 더 낮아진 것이 된다.

팔기 전까지 느꼈던 것만큼이나, 이제는 그만큼 기분이 더 좋아졌을 것이다. 선견지명이 있어서 시장이 더 악화되기 전에 빠져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가족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했기 때문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는 타당한 생각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시스템 2보다 시스템 1을 보다 더 우선시할 때 나쁜 일이 발생한다.

자 이제 현금을 보유 중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주가가 더 내려갈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그렇다면 얼마나 더 낮아지면 좋을까? 그리고 수동적으로 마냥 기다리기 보다, 주가가 더 하락하라고 적극적으로 응원해야 할까? 약세장에서 매도는 단기적으로 위안을 줄지 모르지만, 과연 주가가 더 하락하라고 응원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바라건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주가가 반등하면, 좌절해야 할까? 주가가 계속 더 높이 올라가면 화를 내야 할까? 주가가 내가 팔았던 가격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만일 시장이 더 반등해 내가 팔았던 가격을 넘어서면 화를 내야 할까? 시장이 조작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 이때라도 다시 시장에 들어가야 할까?

만일 그저께 주가가 10% 하락했을 때 팔았고, 어제 4% 반등했다면, 오늘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바로 절대 ‘내부’나 ‘외부’라는 관점에서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되어서 비중을 줄여야 한다면, 그래도 된다. 하지만 영화 스타워즈에서 오비완이 말했듯이, 오직 시스만이 극단적인 흑백논리로 따진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의 접근 방식은 어떨까. 주식 100% 포트폴리오에 2주마다 정기적으로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주가가 하락하거나 상승하거나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고 포트폴리오의 가치가 높아지든 낮아지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게 건드리지 않고 25년 동안 해나가는 것이다. 지금이 바닥인지 아닌지 아는 사람은 없지만, 단기적인 고통에 더 심해질수록, 장기적인 수익률은 더 매력적이란 사실은 역사가 잘 보여준다.

다음 주에도 우리 모두가 위험을 보게 될 것이다. 젊은 투자자는 미래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기억하게 될 것이고, 그럴 때마다 내가 당시 시장에서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 꼭 기억해야 한다.

바라건대, 투자자들은 지금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위험을 더 잘 이해했으면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투자자들이 경험했던 상승 행진은 지난 몇 주 동안 벌어진 하락 행진으로 상쇄되고 있다. 지금 기분 좋은 투자자는 없겠지만, 반드시 극복될 것이고,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자료 출처: The Irrelevant Investor, “The Psychology of Bear Mark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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