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역사 (1) - 강철이 탄생하기까지의 여정
강철의 역사 (2) - 철과 석탄
강철의 역사 (3) - 베세머 전로의 탄생
아메리칸 스틸
#
대서양의 반대편 미국에는 엄청난 철광석이 아직 미개발인 채로 황무지 속에 묻혀 있었다. 1850년 미국의 철 생산량은 영국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하지만 남북 전쟁이 끝나고, 기업가들 베세머 제련 방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철강 산업이 일어났고, 이후 1849년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 보다 훨씬 더 많은 부를 가져다 준 산업이 되었다.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 강을 건너는 다리 그리고 서부를 관통하는 철로에 강철이 필요했다.
앤드류 카네기는 이 모든 것에 관심이 있었다.
카네기만큼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열두살 때 스코틀랜드 이민자로 미국에 도착한 카네기는 피츠버그 빈민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10대를 전신국 사환으로 일하면서 비상을 준비했다. 그러던 어느날, 열심히 일하는 이 십대 소년을 좋게 본 펜실베니아 철도회사 간부가 그를 개인 비서로 삼았습니다.
<앤드류 카네기>
이윽고 이 “스코틀랜드계 미국인”은 사업에 대한 통찰력을 아낌없이 발휘했고, 스스로의 힘으로 철도 산업을 일궈냈고, 동시에 다른 여러 곳에도 투자했다. 교량 건설 회사, 철로 공장, 열차 공장 및 제철소의 지분을 획득했다. 1865년 남부 연합이 항복했을 때, 서른살의 카네기는 교량 건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제철소를 가지고 있던 덕분에, 원하는 만큼 주철을 대량으로 생산했다.
하지만 카네기는 주철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더 튼튼한 다리가 필요하기도 했다. 시드니 토마스가 베세머 전로의 라이닝을 석회로 개량하기 10여년 전, 카네기는 미국에 베세머 전로를 들여왔고, 인을 함유하지 않은 철을 공급 받아 강철을 생산했다. 펜실베이니아 주 홈스테드에 제철소를 세우고, ‘마천루’라고 불리게 되는 새로운 형태의 건물을 짓는데 필요한 합금을 생산했다. 1889년 카네기가 보유하던 모든 기업은 카네기 스틸(Carnegie Steel Company)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됐다.
당시 카네기는 영국 철강 생산량의 절반에 이르는 양을 혼자서 생산하고 있었다. 이후 미국 전역에서 철강 업체들이 속속 생겨났고, 그 주위에 새로운 마을과 도시가 생겨났다. 그 중 고대 철을 만들었던 민족의 이름을 딴 “칼리베스”라는 철광 마을이 코네티컷에 생겨나기도 했다.
이렇게 미국이 갑자기 철강 산업의 선두 주자로 떠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피츠버그와 머낭거힐러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던 카네기의 홈스테드 제철소가 흔들리기 직전에 있었다.
생산 비용을 낮추기 위해, 임금도 낮았다. 1890년 당시 주간 84시간 노동의 댓가가 10달러도 안 되었다. 무더운 제철소에서 뼈빠지는 노동을 시킨 것이었다. 또한 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피츠버그의 경우, 대기 오염도 심각했다. 당시 월간 애틀랜틱지의 한 기자는 이 철강 도시를 “지붕없는 지옥”이라고 쓰기도 했다.
<당시 피츠버그 제철소의 모습>
1892년 7월, 카네기 스틸과 홈스테드 제철소의 노조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카네기 스틸의 회장 헨리 클레이 프릭은 고압적인 자세로 임금 삭감으로 위협했다. 노동자들은 프릭 회장의 인형을 교수대에 올렸고, 충돌을 우려한 프릭 회장은 제철소 둘레를 철조망 울타리로 포위하는 것으로 맞섰다. 노동자들은 파업 찬반 투표에 들어갔고, 사측은 해고를 대응했다. 노동자달은 철조망 울타리로 둘러쳐진 제철소를 “프릭 요새”라고 불렀다.
약 3,000명의 파업 노동자들이 홈스테드를 장악했고, 지방 정부는 법 집행을 강행했다. 프릭 회장은 제철소를 지키기 위해, 300명의 구사대를 조직했고, 1892년 7월 6일 아침, 마침내 양측이 부딪쳤다. 구사대는 강둑에 올라 돌을 던지고, 보트를 타고 강변에서 총을 쏘아댔다. 파업 노동자들은 무기로 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사용했다. 오래된 대포를 찾아내 다이나마이트를 쏘았고, 열차에 불을 붙여 보트 쪽으로 돌진시키기도 했다.
8,500명의 주 방위군이 마을에 들어와 계엄령을 발표하자 사태가 진정되었다. 이 충돌로 10명이 사망했다. 추후 프릭 회장은 파업 소식을 들은 한 무정부주의자로부터 총과칼로 공격을 당했지만, 죽지는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회사를 떠났고, 카네기는 1897 년 찰리 M. 슈왑이라는 엔지니어를 고용해 새로운 대표로 앉혔다. 1901년, 슈왑은 카네기의 이 제철소를 4억 8천만 달러에 인수했다. 슈왑은 이 새 회사를 다른 제철소들과 합병해 US 스틸을 세웠다.
<펜실베이니아 주 방위군의 진입>
미국의 철강 산업은 20세기까지 계속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873년 미국은 22만톤의 강철을 생산했다. 1900년이 되자, 생산량은 1,140만 톤으로 성장했고, 이는 영국과 독일의 철강 산업을 합친 것보다 큰 규모였다. 새로 생긴 US 스틸이 세계 최대 철강 회사로 떠올랐고, 미국 철강 생산량 중 3분의 2를 담당하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생산속도 였지만. 강철 생산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
(계속…..)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연재] 강철의 역사 (4) - 철강왕 카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