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비틀즈가 내놓은 싱글 “헤이 주드(Hey Jude)”는 8백만 장 이상 팔려나가, 비틀즈 싱글 앨범 중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헤이 주드”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뒷면에 담긴 곡 “레볼루션(Revolution)”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존 레넌이 1968년 세계적 정치 격변기를 노래 한 곡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드물게 정치를 다룬 이 곡 “레볼루션”에 담긴 메시지는 급진 좌파 세력 내에서 격렬한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1987년 다시 등장한 이 곡은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획기적인 광고 중 하나에 삽입되게 됩니다.
레넌은 “레볼루션”을 인도에서 썼습니다. 당시 비틀즈는 마하리시와 함께 명상을 즐기고 있었지만, 인근의 베트남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고, 중국에서는 문화 혁명이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한편, 런던에서는 큰 폭동이 일어났고, 그해 5월 파리에서는 또 한차례 혁명이 일어날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런던으로 돌아온 비틀즈는 레논이 누워서 나지막이 부른 이 곡을 녹음했습니다. 노래 가사 중에는 “혁명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혁명이 아니라 파멸을 말하는 것이라면, 나는 빼줬으면 좋겠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머지 밴드 멤버들은 그런 느린 블루스 노래는 상업성이 없으니까, 좀 더 빠르고, 일렉 기타 소리가 들어간 록 버전도 녹음하자고 말했습니다. 레넌은 이 노래를 록으로 바꾸면 거기에 담긴 정치적 메시지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멤버들의 뜻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GLGzRXY5Bw
<비틀즈의 레볼루션 공연 모습>
그 해 말에 발표된 “더 화이트 앨범(The White Album)”에 첫 버전(“레볼루션 No. 1(Revolution No.1)”)이 담겼습니다. 그냥 “레볼루션”이라고만 이름 붙인 더 빠른 버전은 “헤이 주드”의 뒷면 차지가 되었습니다. “더 화이트 앨범”에는 세 째 버전의 “레볼루션 No. 9(Revolution No. 9)”도 담겼습니다. 전자 믹싱 초기 시절이긴 했어도, 소음, 잡음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가사가 짬뽕된 음악에 불과했습니다.
음악 매체들은 “헤이 주드”를 비틀즈 최고의 노래 중 하나라고 추켜세우면서도, 레넌의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이 곡은 애써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문학 및 정치 잡지인 람파츠를 비롯한 급진적 지하 언론들은 “레볼루션은 반-혁명을 선전하는 노래”라고 비난했습니다.
뉴 레프트 리뷰에서는 “옹졸한 부르주아의 울부짖음”이라고 평한 반면, 빌리지 보이스는 “뮤지션이든, 다른 누구든 적정선을 지키리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들이 반대를 위해 일부러 그러지는 말라고 요구할 수는 있다.”라고 썼습니다.
버클리 바브의 경우, “레볼루션”은 민주 ‘사망’ 당이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채택한 강령처럼 들린다고 비웃었고, 블랙 드워프는 이 노래를 BBC 드라마 “데일 부인의 일기” 만큼도 혁명적이지 않다고 일축했습니다.
이어 1987년 소규모 광고 대행사 “웨이든 + 케네디(Wieden + Kennedy)가 나이키 광고에 이 곡을 쓰기로 했습니다. 나이키 최초의 TV 광고였습니다. 이전 웨이든 + 케네디는 혼다 스쿠터 광고에 마일스 데이비스와 루 리드의 노래를 사용해 업계의 관심을 받았고, 주목받는 광고 대행사로 거듭났습니다.
또한 그들은 오노 요코의 지원을 얻어냈습니다. 그녀는 레넌이 신격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레넌의 곡이 이상한 집단에서 벌이는 의식의 일부가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면서, 그 대신 레넌의 곡이 오랜 옛날의 유물로 남기보다, “신세대”가 생활 속에서 즐기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레볼루션”은 광고에 쓰이게 되었습니다. 라이선스 비용은 7백만 내지 1천만 달러였다고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7udftg9eDU
<레볼루션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1987년 나이키 광고>
위 영상이 그렇게 나온 광고였습니다. 이 광고로 나이키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년 만에 나이키의 매출은 2배로 뛰었고, 자유와 초월이라는 광고의 주제가 나이키의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가 되었고, 이후 새롭게 나타난 브랜드 문화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1991년이 되자, 나이키는 세계 운동화 시장의 29%를 차지했으며, 매출은 30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하지만 이 광고는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타임지는 이런 기사를 냈습니다.
그를 죽인 건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다. 하지만 이 광고는 두 명의 광고 제작자, 한 운동화 회사 그리고 영혼의 동지가 그를 졸지에 광고음악 작곡가로 만들어 버렸다.
시카고 트리뷴은 이 광고를 “록 이상주의가 냉정한 탐욕과 만났을 때”라고 묘사했고, 뉴 리퍼블릭은 “이 노래에는 나이키가 무너지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라고 썼습니다.
‘옹졸한 부르주아의 울부짖음’이었던 “레볼루션”은 한 운동화 회사에 의해 왜곡되고 훼손된 성스러운 텍스트로 변형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건은 애플 레코드가 상업 광고를 중단시키기 위해 제기한 1천5백만 달러짜리 소송이었습니다. 애플은 이 광고가 비틀즈의 “인격과 선의”를 허가 없이 사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소송은 애플, EMI 및 캐피톨 측이 이후 비틀즈 버전의 노래를 다시는 상업용 광고에 사용하지 않겠다는데 동의하면서, 재판 없이 합의로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실제 나이키의 “레볼루션”은 일회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광고로 생겨난 비판적인 관심이 나이키에 장기간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이키에 대해 “가부장적 문화”와 노동 착취 등에 방점을 찍은 부정적 언론 보도가 쌓여갔습니다. “레볼루션” 광고는 나이키를 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준 동시에, 비판적 관심이 쏠리게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운동화를 신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데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30년 후, 프로 선수용으로 제작된 운동화를 사람들이 일생에서 신고 다니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되었고, 사회가 과거 기이한 광고의 유산 속에 살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실제, 레넌이 리시케시에서 명상 중에 만든 노래가 광고에 사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이들이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광고 속에서 문화와 정치의 충돌이 종종 가장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출처: Quartz, “How a Beatles song written in India made Nike a billion-dollar b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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