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라 쓰고, “벌쳐”라 읽는다 - 지옥에서 온 투자자, 폴 싱어 그리고 엘리엇 1부



2017년 5월 18일 동료로부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받지 말라는 문자를 받았을 때, 조나단 부시는 챔피언 서러브레드 경주마의 이름을 딴 호화 요트 젠야타 호의 선미에 서 있었다.

의료 클라우드 서비스 회사 아테나헬스(Athenahealth)의 공동 설립자이자 CEO였던 부시는 회사 요트팀과 함께 바하마에서 버뮤다까지 3일간의 항해를 막 마친 상황이었다. 부시는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조카이자, 조지 W. 부친의 사촌이며, 일과 생활 모두 이들과 서로 얽혀있었다.

그는 아테나의 직원들과 대학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다. (그는 반 농담은 “우리 버뮤다 그룹은 항해를 핑계로 한 술 마시는 팀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족, 직원들과 함께 케네벙크포드를 찾아 벌인 나이트 파티 소식과 아이들의 축구 경기 모습을 소셜 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그날 요트 젠야타 호는 버뮤다 항구에 정박해 있었고, 부시의 전화기가 울렸다. 그리고 그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에는 헤지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소속의 제시 콘이 있었다. 콘은 부시에게 엘리엇이 아테나헬스의 지분 9.2%를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최대 주주 중 하나라는 사실을 예의상 먼저 “경고” 해주는 의미에서 전화를 건 것이라고 말했다. 대주주가 회사 CEO와 대화하는 일은 드물지 않지만, 이번 전화는 부시에게 위협이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라는 이름이 익숙하진 않았지만, 불길한 느낌이 밀려들었다.

부시는 1999년에 환자의 의료 기록과 병원 및 건강관리 회사용 청구서를 디지털 전산화해주는 플랫폼 아테나헬스를 공동으로 설립했고, 연 매출 10억 달러가 넘는 회사로 키웠다. 이 회사의 영업 전략은 의사와 간호사가 서류 작업에 들이는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을 진료 같은 일에 쏟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테나는 1만 곳 이상의 건강관리 회사를 회원사로 거느리고 있었다.



콘은 부시에게 아테나헬스가 훌륭한 회사기 때문에, 자부심을 가질만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 문제라 함은 아테나의 최근 주가 하락이 주주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으며, 직원 채용에 영향을 미치게 될 거라고 말이었다. 콘은 아테나의 다른 투자자들과도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부시는 콘이 같은 방식으로 이전에도 익숙한 논란거리를 반복해 왔다는 인상을 받았다.

부시는 딸 중 하나를 데리고 유럽에 갈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기 때문에, 콘에게 여행을 취소하고, 서둘러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물었다. 코언은 “그러지 마세요, 제가 그러라고 부탁한 적은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부시는 콘이 뭔가 좀 기이한 사람처럼 생각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홍보팀에게 말해 당분간 물러서 있으라고 할게요.”라고 덧붙였다.

부시가 곧 콘의 나이가 37세이며, 폴 싱어의 후계자였음을 알아냈다. 폴 싱어가 누구인가?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설립자이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또 가혹한 투자자 중 하나가 아닌가? 73세로 흰 수염과 타원형 안경을 낀 폴 싱어는 엘리엇이 하는 모든 일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엘리엇은 수많은 투자에 관여하고 있지만, 싱어는 자기 펀드의 자원(약 350억 달러)를 이용해 약점이 있는 회사의 주식을 매수한 다음 그 회사의 약점을 찾아내 공격하는 소위 “행동주의” 투자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엘리엇의 공격 방식은 해당 회사에 사업을 변경하라고 압박하는 것인데, 주된 목적은 주가 부양이다.

엘리엇 경영진은 그런 “투자 활동” 대부분은 심각한 갈등 없이 진행되지만, 드라마처럼 진흙탕 싸움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꽤 있다고 말한다. 전형적인 엘리엇의 전술은 해당 회사의 CEO에 대한 가혹한 비난이 담긴 공개 서신을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CEO가 사퇴하거나, 회사 매각이 뒤따르곤 한다.

싱어의 작전이 실패했던 몇 안 되는 경우 중 하나가 삼성 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막지 못한 것이었다. 싱어의 반대 세력은 그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결사적이 되었고, 싱어는 그들이 정부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그 일 이후 한국 대통령은 탄핵되고 감옥에 들어갔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엘리엇이 분쟁을 일으킨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엘리엇의 주장에 따르면, 자기들은 삼성이 안고 있던 기존 문제들을 찾아내고, 그 시스템을 점검하는 역할을 한 것뿐이라고 한다.



행동주의 투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를 비판하는 이들은 해당 기업이 단기적 이익을 높이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할 수 없이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신제품 투자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지지자들은 CEO를 압박해 비용 낭비를 줄이고, 보다 효율적인 경영에 나서게 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라고 본다. 언론에서는 싱어와 비슷한 투자들을 벌쳐, 늑대 그리고 하이에나에 비교하기도 한다.

블룸버그에서는 싱어를 “공격적이고, 집요하며, 지나칠 정도로 소송을 남발” 한다면서, “세계에서 가장 두려운 투자자”라고 불렀다. 싱어의 모험은 대게 성공으로 끝났고, 연평균 약 14%의 수익률이 말해주듯, 자신과 임직원을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엘리엇이 어떤 회사에 투자했다는 단순한 뉴스 만으로도 종종 주가를 상승시키며, 엘리엇에게 더 많은 부를 가져다 주곤 한다. 싱어는 상당 금액을 공화당에 정치 자금으로 기부했으며, 공화당의 최고 기부자 중 하나다. 이를 통해 그는 공화당과 이 당 대통령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정치권과 업계에서 싱어를 아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가 이기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부시는 온라인으로 엘리엇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을 때, 이 일을 직접 구글링하면, 곧 죽게 된다는 답이 나올 것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부시와 콘이 통화를 나눈 직후, 엘리엇의 아테나의 지분을 보유 중이라는 사실이 공개되었고, 부시의 전화기는 아주 큰 걱정이 담긴 친지들의 문자 메시지로 불이 났다.

지원을 약속한 사람도 있고, 조언을 해준 사람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그들과 접촉했던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라 말라고 부탁했다. 부시는 아테나의 오랜 투자자 중 한 명이 “그들은 당신의 머리를 요구할 것”이라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점차 부시의 관심은 아테나를 경영하는 데서 벗어나 그 헤지 펀드를 물리치거나 달래기 위한 방법을 찾는데 집중되었다. 그는 위기관리 회사, 투자 은행, 기업 법률 회사 및 경영 컨설턴트 등의 산업이 전체적으로 싱어 같은 투자자를 상대로 한 기업을 방어하기 위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는 사실에 놀랐다.

수백만 달러나 되는 수수료 때문에, 여러 전문가들이 찾아와 주가 상승을 유지하는 방법, 그리고 엘리엇에게 말해도 되는 것과 말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해 조언을 해 줄 것이다. 아테나가 결국 조각나거나, 매각되게 된다면, 그에 대해서도 조언할 것이다. 이 회사 중 일부는 행동주의 투자자들과 협력하고 있기도 하다. 부시의 생각으론 이 업계 생태계 전체가 경제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게 보였다.



부시는 엘리엇의 투자를 자기반성의 기회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 헤지 펀드의 전술은 폭력적으로 보였지만, 그는 어떤 문제를 처리하는 데 태만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장점을 굳게 믿었고, 이번 경우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식이 뚱뚱하다는 소리를 좋아할 부모는 없다. 하지만 그 말에 귀 기울일 필요는 있다.”

그는 1959년 조지아에서 벨기에 콩고로 이주한 선교사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 바버라 킹솔버의 소설 “포이즌우드 바이블(Poisonwood Bible)”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시골 마을에 정착한 선교사 가족은 처음에는 유행 이질로 고생하다가, 다시 육식 개미 떼가 나타나 보이는 것은 모조리 먹어 치우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마을 주민들은 강으로 달려간다. 자기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줄 배가 있기 때문이다.

부시는 이렇게 말한다.

“남겨진 아기, 풀어주는 이가 없어 묶여있는 개 모두가 깨끗이 사라졌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왔을 때, 더 이상 이질이 발병하지 않았다. 마을이 큰 손실을 입었긴 해도, 개미들이 모조리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시장에 대한 은유다. 때때로 위기로 발생해 시장을 백지상태로 만들어,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부시의 비유에서, 폴 싱어와 그의 헤지 펀드 엘리엇은 개미였다. 부시가 할 수 있는 일은 강을 건너 도망가는 것이었다.

(폴 싱어의 등장과 엘리엇의 성장 - 지옥에서 온 투자자, 폴 싱어 그리고 엘리엇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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