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해회사 주식은 최초의 ETF였다

주식 투자자라면 1720년 최초의 주식 시장 버블이었던 영국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 버블에 대해 한 번쯤 들어는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남해회사가 시장 역사상 최초의 상장지수펀드(ETF)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몇 달 만에 남해회사의 주가가 100에서 1000으로 상승한 다음, 다시 100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주가가 다시 100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남해회사의 주가가 급등과 급락을 보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남해회사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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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회사는 1711년 영국의 국채 발행을 통합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설립한 영국 주식 회사였습니다. 이 회사는 영국과 남미의 무역 독점권을 갖고 있었고, 그로 인한 잠재적인 수익이 주가 급등의 원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수익이 잠재력만 있었을 뿐, 실제로 손에 들어온 것은 없었음이 밝혀지자,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습니다.

남해회사는 지금의 관점으로 볼 때, 출자전환(debt-equity swap) 형태의 회사였습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참여한 영국은 자금 조달을 위해 상당한 국채를 발행했습니다. 그 규모는 5천만 파운드(GDP의 100%)가 넘었습니다. 프랑스가 국채를 줄이기 위해 존 로를 통해 왕실은행(Banque Royale)을 세우는 모습을 영국 정부도 따라 했습니다.

남해회사의 주식은 영국 국채로 담보되었고, 5%의 이자를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영국 국채와는 달리, 남해 회사는 무역 독점권을 통한 이익이 있었기 때문에 배당금이 늘어날 잠재력이 있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부채를 줄일 수 있어 좋았고, 남해회사 주식을 보유한 이들은 국채 이자와 더불어 주가 상승으로 인한 자본 이익을 노릴 수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윈-윈인 상황이었습니다. 


(남해회사 주식 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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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황이 너무 좋아 믿기기 않을 경우에는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1720년에도 증권 거래 위원회 같은 규제 기관이 존재했다면, 남해회사와 관련된 이들은 모두 체포되었을 것입니다. 규정이란 규정은 모조리 어기고 있었으니까. 무역을 통한 엄청난 이익이 가능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의원들은 뇌물을 받고 약간의 계약금 또는 계약금 없이도 주식을 살 수 있게 해주었고, 이들은 주식을 액면가인 100파운드에 구입해서 더 높은 가격에 되팔 수 있었습니다.

정부 관료들은 돈 없이도 시장 가격에 남해회사 주식을 사들였다. 이후 주가가 상승하면 차익을 남기고 팔아 갚으면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말 그대로 돈 안 놓고 돈 먹기였습니다. 조지 1세 정부 또한 이득을 보았습니다. 남해회사의 주가 상승으로 인해 주식 시장에 버블이 만들어졌고, 이를 노린 다른 많은 회사들을 시장에 끌어들였습니다.

당시 상장된 거의 모든 회사들의 쓸모없는 것들이었고, 이로 인해 1720년 6월 버블 제한법(Bubble Act)이 통과되었습니다. 이 법에 의해, 의회 법이나 왕립 헌장에 의해서만 주식 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가되지 않은 주식 회사 설립 금지 조치는 1825년에 이르러서야 폐지되었습니다. 버블 제한법으로 잠재적 경쟁자가 줄어들게 되자 6월 초 남해회사의 주가는 890파운드에 이르렀습니다. 


(남해회가 버블 당시의 주가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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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Global Financial Data)


남해회사의 주가는 8월 초 마침내 1,000파운드를 기록했고, 매수하려는 이들보다 매도하려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유동성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신용으로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들이 첫 번째 분할 불입금을 납부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9월 말이 되자, 주가는 150파운드까지 떨어졌습니다. 노예 무역과 북극 포경(남해회사의 모순)을 시도했지만, 이익을 내지는 대신 손실만 잔뜩 기록했고, 오늘날에도 손실을 내는 대기업들이 그렇듯이, 북극 포경에 대한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했고, 정부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지만 실패했습니다.

1732년 이후, 남해회사의 노예 무역과 북극 포경이 중단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청산이 실시되었던 1855년까지, 남해회사는 단순하게 영국 국채를 관리했습니다. 1700년대 나머지 기간 동안 런던 증권 거래소에서 남해회사 주식은 잉글랜드 은행 주식과 동인도 회사 주식 다음으로 거래가 많은 주식이었습니다. 무역 독점권으로 인한 수익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국채 이자 지급으로 꾸준히 들어오는 수입 덕분이었습니다.

ETF가 미국 주식 시장의 중심이 되기 250년 전에 벌써 남해회사는 사실상 영국 국채 ETF 역할을 했습니다. 1855년이 되자, 남해회사는 그 목적을 상실했고 문을 닫았습니다. 아래 차트는 1711년 설립부터 1855년 청산 때까지 남해회사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남해회사는 언제나 버블의 상징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하지만 21세기 ETF 열풍의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남해회사 존립 기간 전체 동안 주가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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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Global Financial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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