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과 위험의 아이러니

#



폴 튜더 존스(Paul Tudor Jones)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트레이더 중 한 명입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일어나면서 궁금증이 하나 생겼습니다.

“1993년 섬뜩할 정도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난 17 동안 어떻게 또 왜 돈을 버는지 모르면서 그렇게 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겁니다. 그 충격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졌습니다.”

칭찬받아야 마땅할 놀라운 인정입니다. 자신을 인정하는 중요한 만큼이나, 그런 경우가 아주 드물기 때문입니다. 폴 튜더 존스가 성공한 이유는 위험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위험을 잘 이해할 수 있던 이유는 운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운의 뒷면에 바로 위험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운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위험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좋은 결정을 내렸는데도 나쁜 결과로 끝나는 것을 위험이라고 한다면, 나쁘거나 그저 그런 결정을 내렸는데도 좋은 결과를 끝나는 것을 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두 가지 상황이 일어나는 이유는 세상이란 너무 복잡해서, 100%의 행동이 100%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험과 운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사촌이며, 서로 같은 이유로 발생합니다. 세상에서 우리 각자는 70억 분의 1명에 불과하고, 때로는 자신의 행동 보다 우연한 다른 이들의 행동이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위험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은 자신의 통제 밖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경험을 올바르게 교훈삼으면, 전략을 조정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운을 경험하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쁜 교훈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행동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은 경우, (운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데도) 다 자기 실력 때문이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런 생각은 좋은 결정을 내리는데 끔찍한 영향을 미칩니다.

투자에서는 위험을 알아내고, 조절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운의 경우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투자 업계를 봐도, 위험 관리자는 있어도, 운을 관리하는 직책 같은 건 없습니다. 투자 회사는 연례 보고서에서 위험 요인을 밝혀야 합니다. 하지만 운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훌륭한 수익률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또한 위험 조정 수익률은 있어도, 운 조정 수익률이란 말은 없습니다.

투자에서 아이러니는 위험과 운은 동전의 양면인데도, 우리는 위험은 몹시 중요하게 다루면서도, 운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특히 투자에서 성공을 거두었을 때 운의 존재는 무시당하곤 합니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자존심 때문이지만, 성공 속에서 패턴을 찾아내, 이를 통해 다음에도 성공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의 이유를 대길 좋아하고, 흔히 그 이유는 “다 내 실력 때문이고, 다음에도 실력을 발휘할 것”이 됩니다.



우리는 운에 대한 몇 가지를 그의 사촌 위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좋은 투자자라면 위험을 계량해야 합니다. 운도 마찬가지로 접근해야 합니다. 벤처 캐피탈의 경우, 투자 중 절반 정도를 실패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또한 시장이 10년 마다 한 두 차례 씩 30%의 조정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의 실패한 프로젝트를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운도 마찬가지로 그 역할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공의 일부는 운 때문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하며, 또한 반복해서 운이 작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더불어 현실은 스트레스와 도전이 연속되어 있는 경쟁의 장임을 잘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지난 성공에서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폄훼하곤 합니다. 마찬가지로, 운이 작용했다는 것도 무시하곤 합니다. 마치, “자기 능력 때문에 성공했다고 하면서도 ‘주님 감사합니다.’를 읊조리는 셈”입니다.

성공한 사람에게 운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욕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쏟아 부은 노력을 깎아 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위험은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 전혀 상관하지 않으며, 운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험과 운 모두 느닷없이 나타나서는 사람들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양자의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위험이 나타나자마자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반면, 운은 미래에도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고, 일단 사라지고 나면, 오로지 추억만 남겨줍니다.

위험과 운 모두 관리하거나, 무시할 수 있겠지만, 어느 것도 없앨 수는 없습니다.



위험은 정의하기 어렵고, 사람들마다 위험에 대한 생각도 다릅니다. 운도 마찬가지입니다. 복권에 당첨된 노숙자는 운이 좋은 것입니다. 부자 집안에 태어난 것도 행운입니다.

이 두 운은 서로 다른 것이며, 부자 집안에 태어난 행운이 더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그게 운인지 알아채기 어려울 뿐더러, 그저 부를 즐기는데 익숙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을 왜곡시켜 생각하게 되고, 언제가 그런 왜곡된 생각이 자신을 먹어치우게 되며, 그렇게 되었을 때조차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위험을 경험하면 현실이 그럴뿐인데도 자신감이 줄어들고, 더 보수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운은 능력보다 크게 자신감만 높여 주며, 사람들이 과장된 반응을 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아니라 단지 운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데도, 자꾸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런 행동을 아주 자신 있게 합니다. 과도한 레버리지를 사용하게 되고, 실수에 대비한 플랜 B도 준비하지 않기 때문에, 운이 사라지고 났을 때의 대응 방식을 무뎌지게 됩니다.

운의 역할을 깎아내리는 말은 수없이 많습니다. “운이 아니었다. 언제나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등등 말입니다. 하지만 위험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지진은 위험이 아니다. 우리가 예측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운과 위험 모두 언제나 존재하며, 게임의 정상적인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모든 것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알아내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유일한 길임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출처: Collaborative Fund, “Ironies of Luck”>


This page is synchronized from the post: ‘운과 위험의 아이러니’

Your browser is out-of-date!

Update your browser to view this website correctly. Update my browser n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