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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팩터 투자(factor investing)는 정착된 분야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가치, 모멘텀, 퀄리티 또는 저변동성 같은 팩터를 활용하는 많은 전략에서 실패의 쓴맛을 보고 있다. - 패트릭 오쇼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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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에서 우위를 지니고 있는가?
다른 이들과 차별화되는 우위인가?
지속 가능한 우위인가?
수천 년 동안에 걸쳐, 액티브 투자의 역사는 이 ‘우위’를 추구해 온 과정이라고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우위 확보를 위한 경쟁은 퀀트 투자, 특히 팩터(factor)와 관련된 퀀트 투자 사이에서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퀀트 투자 회사들은 대체로 미래에 뛰어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색다른 팩터 또는 “시그널(signal)”을 찾는데 대부분의 노력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팩터들은 가치, 모멘텀, 퀄리티 및 기타 몇 가지를 기반으로 한다.
투자에서 이런 팩터를 찾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시장은 이런 기본적인 팩터를 활용하는 투자 전략들로 넘쳐나고 있다. 이렇게 포화된 시장에서 어떻게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퀀트들 간에 새롭고 차별화된 팩터/시그널을 찾으려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경쟁은 계속된 끊임없는 과정이다. 어떤 시그널/팩터든 영원한 건 없다는 사실을 모든 퀀트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팩터들이 상품화되어 있는 시대에 독특한 미지의 팩터/시그널을 찾기 위한 경쟁이 퀀트 업계에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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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반 네덜란드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속속 등장하면서, 투자자들에게 강력한 무기를 가져다주었다. 1608년 망원경이 도입되자, 트레이더들은 네덜란드 항구로 상품을 싣고 들어오는 상선을 전보다 빠르게 알아보고, 실린 화물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물속에 더 많이 가라앉아 있을수록, 배에 실린 상품이 더 많다는 의미이며, 이미 시장에 팔았던 것보다 가격이 하락할 것임을 미리 알 수 있게 된다.
트레이더가 이런 정보를 미리 아는 것이 바로 중요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다른 투자자들이 새로 들어온 상품의 양을 알기 전에 미리 거래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었다.
(1624년경 망원경을 보고 있는 네덜란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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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네덜란드 투자자들은 새로운 기술(망원경)을 활용해 상품의 미래 수익률(가격)을 가늠할 수 있는 유용한 시그널을 찾아내고 있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퀀트와 비슷했다. 상관관계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트레이더들은 일반적으로 배가 물속에 더 많이 가라앉아 있을수록, 조만간 상품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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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일본의 도지마 미곡 거래소에서 수미야 요미지(Sumiya Yomiji)는 시그널이 언제나 미래 수익률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가혹한 현실을 알아챘다.
일본 정부가 도지마의 선물 거래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후, 요미지는 ‘발 빠른 하인’을 시켜 매일 거래소에서 쌀 가격을 가져오게 시켰다. 이 하인이 쌀 가격을 가져오면, 다음 하인에게 거래소로 달려가 그 가격에 따라 사거나 팔라고 시켰다. 이 방법은 1706년 문서에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오사카의 미곡 거래소가 문을 열고 1분이 지나면, 붉은 모자와 붉은 장갑을 낀 (첫 번째) 하인이 쏜살같이 쿠라가리 거리로 달려 나왔다. 그가 왼손을 1도 정도 들면, 쌀 가격이 은 1부 올랐다는 뜻이었다. 반대로 오른손을 1도 정도 들면, 쌀 가격이 은 1부 내렸다는 뜻이었다. 그의 역할은 요미지에게 쌀 가격의 등락을 알리는 것이었다. 요미지는 자기 쌀가게 2층에서 망원경으로 약 1.6km 떨어진 그의 신호를 받았고, 이 가격을 바탕으로 살지 아니면 팔지를 결정했다.
요미지가 이 전략을 투자에 처음 사용했을 때는 정말로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따라서 “요미지가 돈을 벌지 못한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 그가 이상하게 계속 돈을 벌자, 다른 상인들은 그를 “예측의 요미지”라고 불렀다.
(도지마 미곡 거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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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많은 팩터와 시그널처럼, 요미지가 사용한 전략의 효용성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졌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의 퀀트 모델들 또한 이러한 시그널의 효용성 감소 또는 “알파 붕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에 따라 포트폴리오 내 팩터 비중 조절에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모멘텀은 6~12개월 동안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요미지에게는 유감인 일이지만, 그의 시그널이 실패한 것은 예기치 않은 사건 때문이었다.
어느 날, 하인이 요미지에게 가격 신호를 보내기 위해 거래소에서 달려 나오는 순간 옛 친구와 부딪쳤다. 둘은 자세한 얘기를 나누기 위해 술집으로 향했다. 그러곤 사케를 7~8잔 마셨다.
사케를 마시며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요미지에게 쌀 가격 정보를 알려주는데 4시간이나 지체하게 되었다.
>7~8잔의 사케를 마신 하인은 기억이 오락가락하게 되었다. 왼손인지 오른손인지 어느 쪽을 올려야 할지 가물가물했다. 그는 결국 왼손을 6도 정도 올렸고, 요미지는 쌀 30,000섬을 샀다. 쌀 가격이 은 6부 상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쌀 가격이 은 7~8부 하락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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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요미지는 이 거래로 손해를 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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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시각 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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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신호를 찾기 위한 목적으로, 암스테르담에서 처음 망원경(모델)이 사용된 지 200 년이 지난 후, 1830년대 필라델피아에서도 비슷한 시스템이 인기를 얻게 되었다.
“시각 전신(Optical Telegraph)”이라는 조정 가능한 판 여럿이 부착된 큰 막대기였다. 막대에 달린 판들은 그 각도에 따라 개별 문자와 숫자를 의미했다.
‘세마포르 전신(semaphore telegraphs)’이라고도 불렸던, 이 구조물은 일반적으로 망원경으로 쉽게 볼 수 있도록 언덕 위에 설치되었다.
망원경을 오늘날의 퀀트 모델과 같다고 보면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델’이 2세기에 걸쳐 계속 효과적이었고, 차이점이라면 신호들이 ‘유행에 민감’하다는 것이었다.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투자자들 또한 자기 모델에 사용할 새로운 시그널과 팩터를 찾는데 고충을 겪었다.
(시각 전신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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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 해안에는 뉴욕과 필라델피아를 연결하는 일련의 전신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 시스템을 통해 10~30분 정도면 두 도시 간에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다. 1830년대 이 시스템을 사용한 투자자들은 큰 정보 우위를 갖게 되었다. 시장 데이터를 종전보다 빠르게 받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34년 프랑스에 설치된 비슷한 시각 전신 시스템은 시그널이 조작되면서 그 우위를 잃게 되었다.
세계 최초의 사이버 공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건에서, 두 명의 은행가가 전신 운영자를 돈으로 매수했다. 채권 시장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아무것도 모르던 보르도의 투자자들에게 전달토록 한 것이다.
그러자 한때 강력했던 시그널이 믿을 수 없는 정보원으로 바뀌었고, 더 이상 투자자에게 우위를 가져다주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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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각 전신을 오늘날의 퀀트 모델에 비유해 보면 여러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퀀트들은 새로운 투자 시그널 또는 팩터를 끊임없이 찾아내, 경쟁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 실제, 이러한 시그널/팩터를 찾아내려는 시도 그 자체로 우위이다.
망원경 같은 퀀트 모델은 그 시그널과 팩터가 미래 성과를 얼마나 독특하고, 특유하게 예측해 주느냐에 따라 효용성이 달라진다.
기본적인 팩터(가치, 퀄리티, 모멘텀, 저변동성)로만 만들어진 투자 상품이 범람하는 시장에서, 퀀트들은 새로운 시그널 또는 기존 팩터들 범람하면서, 제품으로 넘쳐흐르면서 퀀트는 새로운 신호 또는 기존 팩터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
한 가지 모델과 동일한 시그널/팩터에만 의존하면 치명적인 결과가 나올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그널은 점점 그 우위를 잃게 된다. 사케를 너무 많은 마셔서도 안되겠지만, 무엇이든 준비해 두어야 한다.
자료 출처: Jamie Catherwood, “The Quant Fron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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