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글은 영국 작가 올리버 불로(Oliver Bullough)가 최근 가디언지에 기고한 “The real Goldfinger: the London banker who broke the world”입니다.
제목이 말해주듯, 브레튼 우즈 체제의 태동과 007 영화 ‘골드핑거’에 나오는 악당 골드핑거를 떠올리게 되면 한 런던 은행가, 그리고 브레튼 우드 체제를 무너뜨리게 만든 그의 작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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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튼 우즈 협정 당시의 모습>
매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 경제 포럼과 동시에, 옥스팜(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삶과 공정무역 거래, 의료와 교육을 돕는 단체)에서는 세계 최고 부자들이 얼마나 더 부자가 됐는지 발표한다. 2016년의 경우, 세계 최고 부자 상위 62인이 세계 인구 하위 50%만큼의 재산을 갖고 있었다. 올해 이 숫자는 42명으로 줄었다. 이들 42명이 세계 42억 인구만큼의 재산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때가 되면 이 소식이 정례적으로 언론 보도에 오르고 있고, 세계 불평등을 보여주는 이 수치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게 되었다.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고 있다는 소식은 그냥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마치 사계절이 순환하듯 말이다. 하지만 아주 우려되는 현상이다.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면서, 정치와 언론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더 커졌기 때문이다. 금권 정치가 과두체제가 되고 있고, 이 과두 체제가 다시 도둑체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몇 년 동안은 이와 반대 경향이 나타났다. 빈민층이 점점 더 부유해졌고, 사회는 점점 더 평등해졌다. 이런 변화가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평등이 사라져갔던 시대로 돌아가 봐야 한다. 여러 경제학자들이 뉴햄프셔의 리조트에 모여 인류의 미래를 꿈꿨던 시대 말이다.
이 글은 어떻게 그들의 꿈이 실패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런던의 한 은행가가 갖고 있던 생각이 어떻게 세상을 무너뜨렸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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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끝나고 몇 년 후, 국가들 간에 아주 많은 돈이 흘러 돌아다녔지만, 그 돈의 주인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통화 시장과 결제를 흔들고 싶었다. 부유층 대부분은 경제가 붕괴되었어도 더 부자가 되었다. 전후의 혼란은 독일과 다른 국가들에서 극단주의 정부가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고, 서로 경쟁이나 하듯 자국 통화를 평가 절하했으며, 근린 궁핍화 관세 정책을 펼쳤고, 결국 무역 전쟁이 일어났으며, 또 한 번의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원인이 되었다.
동맹국들은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렇게 1944년 뉴햄프셔의 브레튼 우즈 리조트에서 참석한 이들은 새로운 경제 구조를 만들어, 돈의 흐름이 통제되지 않았던 기존 상황에 영원히 종지부를 찍고자 상세한 협상에 나섰다. 그들은 한 국가가 무역을 무기로 삼아 이웃 국가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고, 평화와 번영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정적인 체제를 만들고 싶었다.
새로운 체제하에서는 모든 통화가 달러에 고정될 것이고, 달러는 다시 금에 고정될 것이다. 금 1온스는 35달러(현재 가치로 약 500달러/394파운드)에 해당될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 재무부는 외국 정부가 35달러를 되돌려 줄 경우에만, 금 1온스를 살 수 있게 약속했다. 미국은 모든 국가가 국제 무역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달러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그 달러 가치에 상응하는 금 보유고를 유지하겠노라고 약속했다.
<브레튼 우즈 협정을 기념하는 안내문>
투기꾼들이 이런 고정 환율제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국가 간 자금 흐름이 크게 제한되었다. 물론 국가 간 자금 흐름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통화나 국채를 통한 단기적 투기 목적이 아니라 장기 투자 형태로만 가능했다.
이 체제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유조선 한 척을 상상해보자. 먼저 이 유조선 내부가 큰 하나의 탱크로만 되어 있다고 하자. 유조선이 파도에 흔들리면, 그 안에 든 원유가 한꺼번에 앞뒤로 물결치게 될 테고, 그러면 유조선은 점점 더 크게 흔들리고, 결국 뒤집힐 수도 있다.
브레튼 우즈 협정에서는 이 유조선의 탱크를 국가 수 만큼으로 나누고, 여기에 각각 원유를 담은 다음, 각 국가에 나눠준 것과 같다. 이 경우에도 탱크 안에 든 원유는 배가 흔들릴 때마다 같이 흔들리겠지만, 절대 유조선을 전복시킬 만큼의 모멘텀은 발생할 수 없게 된다.
이상한 점은, 이 체제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한 인물을 떠올린다. 바로 제임스 본드가 나오는 책에 나오는 “골드핑거”다. 줄거리가 약간 다른 같은 제목의 영화도 나왔지만, 책과 영화에 나오는 두 골드핑거의 목적은 모두 금 보유고를 조작해 서방 세계의 금융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영화 속 영란은행 임원 커널 스미더스는 007에서 “금과 금으로 뒷받침되는 통화는 우리 국제 신용의 토대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영화 “골드핑거(1964년)”에서 제임스 본드(숀 코네리 분)와 오드잡(해럴드 사카타 분)의 격투 장면>
커널은 계속해서, 문제는 영국에서는 금괴 하나를 1,000파운드에 살수 있는데, 인도에서는 금 보석류에 대한 수요가 높아, 영국보다 금 값이 70%나 더 비싼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영국에서 금을 밀수해 인도에서 팔면 수익성이 아주 높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악당 “오릭 골드핑거”의 계획은 영국 전역에서 무수한 전당포를 만들어, 현금이 필요한 일반 영국 주민들에게 금 보석과 장신구를 사들이는 것이었다. 이것들을 모아 녹여 롤스로이스 차체로 만든 다음, 이 차를 스위스로 몰고 가 그곳에서 다시 금괴로 재처리해 비행기로 인도에 보내면 끝이었다.
골드핑거의 계획은 영국의 통화와 경제를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그 돈이 공산주의자나 기타 테러리스트의 자금으로 흘러들어갈 우려가 있었다. 스미더스는 007에게, 골드핑거의 계획을 막기 위해 수백 명의 영란은행 임직원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골드핑거가 더 영리하다고 말한다. 그는 본드에게 바하마의 한 은행의 금고에 5백만 파운드 상당의 금괴를 갖고 있다는 영국 최고 부자로 행세하라고 요청한다.
골드핑거를 잡아와 조사하고, 금을 도로 가져왔으면 좋겠네. “통화 위기와 금리 인상” 사태 얘기를 알고 있을 테지. 어쨌든 영국은 그 금이 필요하네.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현대 기준으로 보면, 세금을 좀 안 낸 것 말고는 골드핑거의 계획이 잘못된 건 없다. 그는 적당한 가격에 금을 사서, 다른 시장에서 적당한 가격에 파는 것이다. 자기 돈으로 금을 사서 파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는 상거래라는 바퀴에 기름을 바른 것이고, 가장 필요한 곳에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것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브레튼 우즈 협정은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커널 스미더스는 그 금이 골드핑거의 소유일 뿐만 아니라, 대영제국의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체제에서는 돈이란 소유자의 것만이 아니었다. 돈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가치를 부여한 국가도 그 돈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이들의 이익을 위해 돈을 가진 이들의 권리가 제한됐다. 2차 세계 대전과 전쟁 중 경기 침체의 공포가 반복되지 않게 하려는 브레튼 우즈 협정 당사국들은 국제 무역에서 돈을 가진 자 보다 사회의 권리가 우선하도록 결정했다.
<커널 스미더스와 제임스 본드>
1980년대에 태어나 그 이후의 경험밖에 없는 이들에게는 그 모든 상황이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의 체재는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돈은 중국, 브라질, 러시아 등 어디서나 투자 기회를 찾아 끊임없이 흘러 다니고 있다. 한 국가의 통화가 고평가되면, 그 약점을 잡아낸 투자자들이 병든 고래 주변의 상어처럼 약탈을 자행한다.
세계적인 위기 상황이 벌어지면, 돈은 금이나 미국 국채같이 안전 자산으로 돌아온다. 반대로 경기 호황기에는 좋은 수익을 위해 모든 국가에서 끊임없이 주가를 상승시킨다. 이런 유동 자본의 물결은 가장 강력한 국가를 제외하고 어느 국가든 쓸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유로, 루블 또는 파운드에 대한 끊임없는 투기적 공격은 브레튼 우즈 체제하에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체제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기간 동안 서방 국가 대부분의 경제 성장은 거의 중단되지 않았고, 사회는 평등해졌으며, 정부는 공중 보건과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개선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거저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이를 위해 세금을 더 거둬야 했고, 부유층들은 국세청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돈을 빼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유조선이 여러 격실로 분리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은 노래 “텍스맨(Taxman)”에서 정부가 1실링만 남겨두고 나머지 19실링을 거둬간다고 비아냥 대기도 했다. 당시 해리슨에게 적용된 한계 세율이 95%였던 상황을 빗댄 것이었다.
<택스맨을 부르는 조지 해리슨>
이 체재를 싫어했던 건 비틀즈만이 아니었다. 롤링 스톤즈도 영국 국세청을 피해 프랑스에서 “Exile on Main St.”를 녹음했다. 또한 베어링 은행 가문의 후손 롤랜드 베어링도 그랬고, 1961년부터 1966년까지 영란은행 총재였던 크로머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963년 정부에 보낸 메모에서 “환율 통제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윤리적으로도 잘못된 생각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베어링이 규제를 혐오한 한 가지 이유는 그로 인해 런던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포츠카를 시속 30킬로로 운전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은행들은 꽁꽁 묶여 있었다. 꼼짝 달싹할 수 없었다.”라고 유감을 표했다. 당시, 은행원들은 출근 시간 한참 후에나 자리에 앉았고, 몇 시간이나 점심을 먹었고, 퇴근 시간도 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할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유리와 강철 마천루를 자랑하는 런던의 모습을 보면, 한때는 거의 사망 직전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은 상상하기 어렵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런던은 국제 사회에 거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의 런던을 기록한 책도 별로 없긴 했어도, 뭔가 아주 중요한 일이 잉태되고 있었다. 비틀즈나 메리 퀀트(디자이너) 또는 데이비드 호크니(화가) 보다 훨씬 더 세상을 바꿀만한 무언가, 브레튼 우즈 체제를 뒤흔들 만한 무언가였다.
<1951년 런던="" 은행가들의="" 식사="" 모습="">
이안 플레밍이 1959년 골드핑거를 발표할 무렵 유조선의 일부 구획에서는 이미 누수가 발생하고 있었다. 문제는 달러를 공평한 국제 통화로 사용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믿지 않은 국가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불신을 부당하다고 할 수 없는 게, 미국이 때로는 공정한 심판 역할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2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국 정부는 공산주의 유고슬라비아의 금 보유고를 격리시켰다. 이를 불안하게 여진 동구권 국가들은 이후 습관적으로 뉴욕보다는 유럽 은행에 보유 달러를 예치하곤 했다.
마찬가지로, 영국과 프랑스가 1956년 수에즈 운하의 통제권을 되찾으려 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미국은 양국의 달러 보유고를 동결시키면서 모험을 자초했다. 분명 공정한 중재자의 행동은 아니었다. 당시 영국은 이어진 경제 위기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1957년 금리를 인상하고, 파운드의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무역에 파운드를 빌려주지 못하도록 은행을 통제했다. 이것이 바로 골드핑거에서 스미더스가 본드에게 말한 “통화 위기와 금리 인상” 사태였다.
이전처럼 파운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런던의 은행들은 대신 달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달러의 출처는 다름 아닌 소련이었다. 당시 소련은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런던과 파리에 달러를 보관해 두고 있었다. 서로에게 수지맞는 사업이었다. 미국에서는 은행의 달러 대출에 금리 상한이 있었지만, 런던에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이 소련 발 달러를 “유로달러(eurodollars)”라고 불렀고, 이를 통해 1950년 말 런던은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충분치는 않았다. 대규모 채권 발행은 여전히 뉴욕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며, 런던의 은행들에게는 짜증 나는 일이었다. 어쨌든 돈을 빌리는 쪽은 대부분 유럽 기업들이었지만, 두둑한 수수료를 떼 가는 쪽은 미국 은행들이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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