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그 40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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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2월 13일, 한 달 이상 지속된 중국 공산당 전대 폐회식에서 덩샤오핑 중앙 군사 위원회 주석은 연설을 통해, 중국의 미래에 대한 실용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당시 중국은 문화 혁명의 혼란과 공포에서 벗어나고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덩샤오핑은 중국이 다른 선진국들의 사례를 통해 배우고, 노동자와 농민들이 경쟁을 통해 앞서나가도록 하고, 생활 수준이 더 나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격려하며, 지방과 기업들에게도 스스로 결정을 내리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생각하고, 새로운 방법을 탐구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용기가 있는 많은 길잡이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가난과 후진성에서 벗어날 수 없고, 선진국을 따라잡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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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후 베이징 징시 호텔에 모인 300여 명에 이르는 당원 대표자들은 덩샤오핑의 비전을 채택하기로 합의했고, 중국은 경제적 고립에서 벗어나 세계의 공장으로 거듭나는 여정을 시작했다.

이 획기적인 개혁개방 정책은 1978년 12월 18일 시작되었고, 정확히 40년 전 오늘이었다. 1974년 고 조지 H.W. 부시 대통령이 비공식 미국 대사로 베이징에 갔을 당시(미국과 중국의 정식 외교 관계는 4년 후에나 맺어진다), 그는 일기에 “중국과의 무역에서 우리는 10 대 1로 아주 유리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1985년, 미국의 대중국 무역 흑자는 600만 달러였다. 하지만 2017년이 되자 상황은 급반전해, 오히려 대중국 무역 적자가 3,750억 달러에 달하게 되었다.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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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광범위한 수출 규제를 철폐해 중국에 첨단 기술을 전수해 주는 등 빈곤했던 중국을 변모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제 중국은 세계 2위인 12조 달러 규모의 경제로 성장했고, 미국을 놀라게 할 만큼 기술을 갖춘 경쟁국이 되었다.

중국 내부에서도 현재 중국의 방향에 대한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이번 40주년은 ‘질서 정연한 권력 이양과 평생 통치의 제한’이라는 덩샤오핑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거꾸로 된 지 1년이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지난 3월, 중국은 주석과 부주석의 임기 제한을 폐지했다. 오랜 중국 관측통들 역시 올해 기념식에서 개혁의 아버지인 덩샤오핑보다 현 지도자인 시진핑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의 지배하에서, 덩샤오핑의 개혁이 끝나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오늘(18일) 기념식 연설이나, 내일(12월 19일) 시작되는 당 지도부의 경제 회담에서 향후 중국의 방향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나올 수도 있다. 중국은 이 자리에서 2019년 경제정책을 계획하는 한편, 미국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만한 방법을 찾으려고 고심할 것이다. 중국은 마감 시한인 3월 1일까지 미국에 납득할 만한 계획을 내놓지 않으면 추가 관세 조치를 당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 중요한 시점에서, 지난 40년 동안 중국이 걸어온 길을 다각도로 살펴보도록 하자.

급격한 빈곤 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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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한 지 불과 3년 후인 1981년에만 해도, 중국 인구 중 거의 90%가 세계은행이 정의하는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상황이 2013년이 되자, 2% 아래로 떨어졌다.

(중국의 빈곤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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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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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 일반 국민들은 전혀 가난하게 살고 있지 않을뿐더러, 실제로 많은 이들이 꽤 잘 살고 있다. 중국의 1인당 GDP는 1978년에서 2017년까지 거의 24배 증가했다.

(중국의 1인당 G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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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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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척도로 가장 자주 사용되는 지니 계수를 기준으로, 중국의 수치는 1980년대 초 0.3에서 2010년 거의 0.5로 증가했다. (완벽한 평등은 0, 완벽한 불평등은 1)

(중국의 소득 불평등, 지니 계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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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부문의 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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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중국 경제에서 농업 부문이 산업(예를 들어, 건설 및 제조)과 서비스(예를 들어, 보건 및 교육) 보다 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늘날, 농업 부문의 비중은 10% 미만으로 줄었다.

(중국의 GDP에서 각 경제 부문별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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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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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농업에서 벗어나, 무리 지어 도시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농촌 거주 비율을 보면, 1960년대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는 거의 변하지 않았으나, 1978년 이후 급격히 떨어졌다.

(중국 인구 중 농촌 거주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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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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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국경을 사이에 둔 제조업 중심지인 선전의 경우, 1979년에만 해도 인구가 50만이 되지 않았다. 1980년 중국 최초로 특별 경제 지역으로 지정되었고, 외국인 투자가 허용되었다. 2016년 기준으로, 미국과 호주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초고층 빌딩들이 들어섰고, 세계 최대 도시 중 하나로 올라섰다. 선전은 이제 중국 해안 도시의 부흥을 상징하고 있다.

(중국 선전의 G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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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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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과 중국 내 다른 제조업 허브 도시들의 성공은 덩샤오핑이 세계화를 수용한 결과물이었다. 1970년대 중국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던 비중은 미미했으나, 2000년대 중반이 되자 GDP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중국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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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아진 출산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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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은 경제 개혁 이외에 한 자녀 정책을 추진했다. 중국 인구가 10억 명에 육박하면서 출산율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2015년 두 자녀 정책으로 완화). 한 자녀 정책이 출산율은 현저히 줄이는데 기여했을지 모르지만, 그런 정책이 아니었더라도 가정이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자녀가 적어야 하기 때문에 출산율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국의 출산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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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2 배출량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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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의 심각한 환경 문제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시작된 급속한 성장의 부산물이다. 중국에서 1인당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1970년대 이후 7배 이상 증가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지도자들이 덩샤오핑만큼이나 급진적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중국의 CO2 배출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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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Quartz, “The charts that show how Deng Xiaoping unleashed China’s pent-up capitalist energy in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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