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전 글 “[경제 역사] 18세기 산업 혁명의 원동력이 증기 기관뿐이었을까요?”에서는 범선을 이용한 화물 운송이 산업 혁명의 한 축을 이뤘다는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이번 글은 영국 산업 혁명의 진정한 원동력은 여러 식민지에서 벌인 전쟁이었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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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영국이 농업 경제에서 산업 경제로 전환할 수 있던 원동력은 각각 증기 기관과 면화 공장으로 상징되는 기술 혁신과 기계화였다는 것인 일반 통념입니다.
하지만 스탠퍼드 대학의 프리야 사티아 영국 역사학 교수가 최근 펴낸 책 “Empire of Guns”에서는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산업 혁명에 불을 지핀 것은 바로 전쟁이었으며, 특히 인도를 비롯한 여러 식민지에서 전쟁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사티아 교수는 세계 무기 거래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1753년에 태어난 사무엘 골턴 2세의 이야기에 우연히 접했습니다. 퀘이커 교도였던 그의 가족은 버밍엄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이 회사는 영국에서 가장 큰 총 제조 회사이자, 동인도 회사의 핵심 공급 업체가 됩니다. 1795년 퀘이커 교단에서 총기 사업을 비판하자, 골턴 2세는 총기는 전쟁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문명화의 도구이며, 실제 영국도 군사 산업 사회 아니냐고 주장했습니다.
사티아 교수에게는 놀랄만한 자료였습니다. 18세기 영국이 신흥 산업 경제였다기보다는 실제로 군사 경제 모습을 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영국의 ‘자유로운 천재들’이 국가의 경제 변화를 이끌었다는 기존의 생각이 틀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티아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얘기해 왔던 18세기 산업화의 탄생은 언제나 평화로운 일들뿐이었습니다. 천재적인 기업가들, 뭐든 고쳐 쓰는 문화, 영국 만의 독특한 문화적 특징 등이 그런 얘기였습니다. 당시 영국이 항상 전쟁 중이었다는 사실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사티아 교수는 지난 200년 동안 이런 생각이 바탕이 되어 경제 발전에 대한 세상의 인식이 형성되어 온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잘못된 생각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영국은 전쟁 산업과 경제 발전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고 있었고, 이런 인식으로 여러 식민지, 특히 인도의 무기 생산을 억누르려고 했고, 상대적으로 저개발 상태에 머물게 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인도 회사 소속 군대는 티푸 술탄 등 인도 통치세력의 무기 제조 시설을 점령해 빼앗은 동시에, 원주민들에게는 영국산 총기를 팔았습니다.
사티아 교수는 쿼츠와의 인터뷰에서, 그로 인한 유산이 오늘날의 인도 정부에 어떻게 살아남아 있는지 설명합니다.
영국에 점령당하기 전까지 인도의 총기 산업은 어땠습니까?
당시 인도에서는 모굴 제국 이후 직접 총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17세기 당시 인접 제국들, 오스만 제국, 사파비드 왕조 및 포르투갈 사이에 많은 교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류를 통해, 인도는 총기 제작 방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러서 유럽인들이 인도라는 경쟁 시장에 들어왔고, 그들의 총기 및 기술을 들여온 것입니다.
인도의 총기 제작 기술은 영국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나요?
영국군이 인도 대륙에 들어오면서, 총기와 인도 상품을 맞바꾸곤 했습니다. 하지만 동인도 회사 군대가 영국의 주된 세력이 되면서, 영국군이 인도에 판 무기를 다시 사들였고, 이 무기로 인도 대륙을 점령했습니다. 따라서 영국산 무기가 인도에 점점 더 많이 보급되었고, 인도의 총기 업자들이 영국 기술을 어느 정도 복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구식 영국 총기를 구입해, 재조립하거나 수리할 수 있는 밀수 조직까지 있었습니다.
영국 산업 혁명에 총기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총기만이 산업 혁명을 주도했다고는 볼 수 없죠. 총기를 예로 든 것은 일반적으로 전쟁이 영국의 산업 혁명을 이끌었다는 더 넓은 주장을 살펴보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종류의 전쟁 물자가 있었습니다. 전쟁은 유럽뿐만 아니라 해양, 북미, 카리브해 및 인도에서도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전쟁 물자를 여러 곳으로 운송하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총기가 필요한 만큼, 온갖 종류의 선박용 물품도 필요했습니다. 문구와 잉크, 제복 수선을 위한 단추와 버클, 침구와 의약품, 심지어 병사들에게 임금 지불을 위한 동전도 필요했습니다.
18세기 동안 영국이 대량 구매한 물품 모두가 자국 산업화의 중요한 동력이었습니다.
많은 영국민들도 군대의 물품 구입이 산업화를 이끌었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도에 주재하던 영국 관리들의 서신 중 일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중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잘 보니, 인도에는 풍부한 금속 가공 전통 기술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사용할 총기류를 영국에서 들여올 필요가 있을까요?. 현지에서 더 싸게 만드는 것이 더 좋을지 모릅니다.”
그런 다음 이 영국 관리는 무엇이 떠올랐는지 이렇게 말합니다. “잠깐. 정말 이렇게 해야 할까요? 아주 위험한 일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첫째, 여기 인도에서 영국제 총기를 팔아 생기는 이익이 없어질 것이고, 둘째, 인도의 금속 가공 기술과 산업 전통을 부활시키고 강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영국에는 별로 좋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가 얘기해 왔던 18세기 산업화의 탄생은 언제나 평화로운 일들뿐이었습니다. 천재적인 기업가들, 뭐든 고쳐 쓰는 문화, 영국 만의 독특한 문화적 특징 등이 그런 얘기였습니다. 당시 영국이 항상 전쟁 중이었다는 사실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최근 이온에 올라온 글을 보면, 영국이 인도의 무기 산업을 망치려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일종의 (인도의 무기 산업을) 질식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인도 세력들이 스스로 총기를 만들게 하는 것보다 영국제 총기를 갖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동인도 회사가 점령한 곳마다 단계적으로 무기 제조 산업을 지워나가거나, 회사 안으로 받아들여 무기 생산의 일부를 담당하게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왜 우리가 인도 왕족들에게 영국제 총기를 제공하려고 했겠느냐? 그들이 우리에게 그 총구를 겨누면 어쩌려고 그랬겠느냐?라고 말합니다. 영국의 시각에서는 인도가 인도제 총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나은 조치입니다. 왜냐하면 인도 입장에서 영국의 총기를 사주면, 그 돈으로 인도 물품을 조금이라도 사주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영국에도 어느 정도 이득이 됩니다. 영국이 총기를 팔지 않았다면, 인도는 프랑스나 네덜란드에서 구입했을 것입니다. 이 또한 영국에 불리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영국의 최선의 타협은 비록 적이었지만 인도에 영국제 총기를 판매하는 것이었습니다.
식민 통치의 결과로 인도는 영국보다 훨씬 뒤처졌습니다. 역사적 측면에서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인도가 뒤처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국이 인도 경제를 자국 경제에 종속되게 만든 것이 문제입니다. 18세기 당시 인도가 상대적으로 덜 산업화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도가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으면서 산업 역량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느냐보다는, 이후 인도가 자국의 산업 역량을 어떻게 재건했느냐가 문제라고 봅니다.
물론 18세기 상황이 인도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서는 인도가 독립한지 7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영국을 따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말하기도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식민주의의 유산이 얼마나 강력한 지를 과소평가한 것입니다. 현재의 인도 정부가 여전히 얼마나 식민지 이후 정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식민지 숙취 상태에 빠져 있는지 과소평가한 것입니다. 현재 정부의 구조, 의제, 목표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들을 영국이 건설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가 빠른 속도로 산업화를 이루길 원한다면, 전쟁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18세기 이야기의 교훈은 경제 변화를 이끄는데 정부의 역할이 정말로 강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출처: Quartz, “Wars, not just genius, fuelled Britain’s industrial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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