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부자가 되고 유명인이 되기 전, 그리고 지금처럼 행복한 대가족을 꾸리기 전 찰리 멍거에 대한 것이다.
1953년 29살이던 멍거는 첫 번째 아내와 8년 동안의 결혼 생활을 끝냈다. 당시 이혼이란 커다란 사회적 낙인이었고, 멍거에게는 첫 번째 시련이었다.
이혼으로 집을 포함한 거의 모든 재산은 아내의 몫이 되었다. 멍거의 친구 한 명은 그가 이혼한 후 끔찍이 지독한 여건에 빠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용기를 끌어모았고, 이혼으로 잃어버린 돈을 복구하기 위해 일주일 내내 미친 듯이 일했다. 하지만 시련은 시작에 불과했고, 인생은 그를 더 시험하려 들었다.
1년 후, 멍거의 8살짜리 아들 테디가 백혈병(혈액 암) 진단을 받았다. 그는 의료계를 샅샅이 뒤졌지만, 일찌감치 치료가 불가능한 병임을 알아차렸다. 백혈병 병동에서 각각 병세가 다른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다른 부모들과 같이 나날이 쇠약해져 가는 아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당시에는 의료 보험이 없었기 때문에, 본인 부담으로 병원비를 전부 지불해야 했다.
친구들의 말로는, 그는 변호사 일을 하면서 다른 두 명의 자녀를 돌보는 동시에, 매일 테디를 병원에 데려가 검진을 받았다고 한다. 그에게 아들이 약해지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몇 달 동안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친구 릭 구에린에 따르면, 찰리는 아들이 병원 침대에서 서서히 세상을 떠나려 하자, 잠시 붙들고 있다가는 파사데나 거리로 걸어 나가서야 울었다고 한다.
테디 멍거는 백혈병 판정을 받고 1년 후, 마음이 찢어진 아버지를 남기고 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31살의 멍거는 이혼남에 파산한 상태로 어린 아들을 묻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술이나 마약에 빠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멍거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몇 년 후, 그는 떠나지 않았던 내면의 고통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부러움, 억울함, 복수심 그리고 자기 연민은 참으로 비참한 감정입니다.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되면 거의 편집증에 가까워집니다… 자기 연민에 빠질 때마다, 무엇 때문에 그런지 상관하지 않게 되고, 자식이 암으로 죽는 모습에서 자기 연민은 전혀 상황을 나아지게 하지 못합니다. 참으로 말도 안 되는 행동입니다.
인생에는 끔찍한 충격, 소름 끼치는 충격, 불공평한 충격이 아무런 상관없이 나타납니다. 거기서 회복하는 사람이 있고,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에픽테투스의 태도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인생에서의 모든 불운이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에서의 모든 불운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기 때문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끔찍한 충격을 건설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좋은 태도입니다.
멍거는 자기 아들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언급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 말의 힘이 더 기억에 남는다.
어쨌든 멍거에 대한 인생의 시험은 계속되었고, 52살이 되었을 때 백내장을 앓게 되었다. 수술이 실패하면, 한쪽 눈이 실명하고 암 같은 합병증이 발병할 수 있었다. 백내장에 걸린 눈의 통증이 너무 심한 나머지 일어설 수도 없었다. 그런 끝에 결국 그는 의사를 찾아 아픈 눈 전체를 들어냈다.
멍거처럼 읽기에 미친 사람에게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감옥에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가까운 사람에게 “점자를 배울 때가 된 것 같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추천할 만한 책인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의 “Man’s Search for Meaning(번역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다. 이 책은 프랭클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수용소에서 있었던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서 프랭클은 스스로 정신을 치료했던 방법을 설명한다. 삶의 목적을 찾아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고, 그 목적에 몰입하는 것이다.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생존’이다. 그는 공포를 목격하고 경험했지만, 그 경험의 세부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나치의 지배하에 있었던 기간에도 인간의 능력으로 어떻게 모든 역경을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프랭클이 쓴 것처럼, 수용소에 있는 동안 인간의 가장 밑바닥을 보았다. 동료 수용자가 수용소 경비로 승진해 다른 동료 수용자들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그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죽어가는 동료들을 때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가학적이 된 경비들이 이전 수용자 동료들을 마치 동물보다 못하다는 듯이 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또한 성자보다 더 나은 수용자의 모습도 보았다.
상황을 더 이상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가 되면,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지만, 단 한 가지 마지막 인간의 자유, 어떤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자유는 빼앗을 수 없습니다.
(투자를 포함한) 인생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승리와 재앙의 시나리오 모두에서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인생에서는 행복과 미소 또는 슬픔과 고통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상황이 계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지금의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인생은 진화하고 변화한다. 인생은 끊임없이 부침을 겪고, 우여곡절을 거치며,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이 말했듯이, “승리와 재앙의 연속”이다. 만족과 행복한 순간이 있는 것처럼, 고통을 느끼고 상처를 받으며, 때로는 손실을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정말 나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생이 전해주는 모든 슬픔, 패배, 비극을 겪어 마땅하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걸어 나가는 여정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를 인간이 되게 하는 일부일 뿐이다.
우리가 멍거와 버핏의 삶같이 동화 같은 이야기, 지금 현재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수없이 많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 그들이 항상 승승장구해 왔고, 부드러운 길을 걸어왔다고 가정해버리기 쉽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날의 위치에 오기까지, 우리가 알지 못한 오랜 기간 힘든 노력, 땀과 피, 때로는 비극을 겪었다.
멍거는 이혼과 파산, 아들의 죽음, 시각 상실을 겪은 후에도 끈기 있게 행동한 결과,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 사람이라면 이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을 마치기 전에, 2013년 데일리 저널 주주총회에서 투자에서 어떻게 하면 실패에 너무 오래 안주하지 않고 회복할 수 있느냐는 한 주주의 물음에 멍거는 다음처럼 답했다.
리디어드 키플링이 한 말을 알고 계시나요? 길에서 성공과 실패를 만나더라도 그 두 가지 모두를 똑같이 헛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물론 올바른 결정을 내렸더라도 실패를 겪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성공을 거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과거의 어리석음을 되새기고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어리석음에 이를 갈거나, 시달리거나 오래가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나쁜 결정을 내리고, 실패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인생에서 비극은 너무 소심해서 상황을 뒤집을 정도로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멍거의 삶에서 학습 기계가 되라는 것 이외에 배울 수 있는 교훈이 하나 있다면, (투자를 포함해) 어떤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반드시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경험한 모든 고통과 모든 실패는 더 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그런 다음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찾고, 어제 가졌던 것과 같은 희망으로 오늘을 맞이해야 한다.
자료 출처: Safal Niveshak, “A Story of Courage and Hope from the Life of Charlie Mu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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