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5 월 어느 따뜻한 밤, 이탈리아 리비에라의 룰렛 테이블에 내로라하는 도박꾼들이 몰려들었다.
그 중심에는 구겨진 슈트 차림의 38세 의대 교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이번 판에 100,000달러(2019년 가치로 715,000달러)를 걸었다. 딜러가 룰렛을 돌리고, 작은 흰 공을 던지자 주위는 고요에 휩싸였다. 과연 행운의 여신은 누구 편에 설 것인가?
하지만 리처드 자렉키(Richard Jarecki ) 박사는 이번 판을 행운에만 맡겨놓지 않았다. 그는 수천 시간을 들여 독창적인 승리 공식을 만들었고, 곧 지금 가치로 8백만 달러가 넘는 돈을 따게 된다.
나치 독일에서 뉴저지로
리처드 자렉키는 1931년 혼란의 도가니였던 독일 슈체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시 독일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나치당은 반유대주의 노선을 통해, 정부가 유태인 시민에게 잘못된 정책을 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지지를 얻고 있었다. 피부과 의사였던 아버지와 해운 사업을 물려받은 어머니는 점점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있었다. 자렉키의 가족은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자칫 억류될 위험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자렉키 가족이 독일을 떠난 직후인 1938년 거리를 행진하고 있는 히틀러)
뉴저지에 살던 젊은 자렉키는 루미, 스카트 및 브리지 같은 게임에서 위안을 찾았고, 친구들에게 돈을 따는 재미로 지냈다. 타고난 머리고 숫자와 통계를 잘했던 자렉키는 의대에 진학했다. 물론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자렉키는 1950년대 젊은 의사로서 세계 최고 의학 연구원 중 하나라는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바로 어둡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카지노에서 진정한 열정을 피우고 있었다.
전략
1960년 즈음, 자렉키는 룰렛에 미쳐있었다. 딜러가 무작위로 번호가 매겨지고, 여러 색깔로 나누어진 회전반 위에 작은 공을 던지면, 플레이어는 공이 착지할 곳에 베팅하는 게임이다.
많은 사람들이 룰렛을 순전히 운으로 하는 게임이라고 여겼지만, 자렉키는 그 운을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매일 밤 끝 무렵마다 카지노 측에서 카드와 주사위를 새것으로 바꿔 놓지만, 값이 비싼 룰렛 휠에는 손을 대지 않음은 물론, 대부분이 수십 년째 교체되지 않고 사용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른 기계류와 마찬가지로, 휠도 마모되기 마련이었다. 자렉키는 이가 빠진 곳, 움푹 팬 곳, 긁힌 자국, 울퉁불퉁한 곳 같은 작은 결함 때문에 공이 특정 번호에 무작위 한 확률보다 더 자주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60년대 자렉키가 플레이했던 룰렛)
자렉키는 몇 주 동안 수술실과 룰렛 테이블 사이를 오가면서, 수 천 번의 룰렛 게임 결과를 손으로 적었고, 통계적으로 비정상적인 데이터가 있는지 분석했다.
그는 1969년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이전 게임 결과를 바탕으로 대략적인 시스템을 얻을 때까지 실험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전 3게임에서 1, 2 및 3이 차례로 나왔다면, 다음 3게임에서 어떤 숫자가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지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런 자렉키의 접근 방식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편향된 휠” 전략의 “개척자”라고 불리는 조셉 재거(Joseph Jagger)가 1880년대 이 방식으로 엄청난 돈을 땄었다. 1947년 앨버트 힙스(Albert Hibbs)와 로이 월포드(Roy Walford) 역시 이 전략으로 요트를 구입해 캐리비안으로 항해에 나선 바 있다. 이어 1950년 헬무트 베를린 (Helmut Berlin)이 팀을 꾸려 이 전략으로 42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하지만 자렉키의 목적은 돈이 아니었다. 시스템을 완벽하게 만들고, 반복해서 휠을 “이기고” 싶었다. 사람이 기계를 뛰어넘을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그는 몇 달간의 데이터 수집한 후, 모아놓은 100달러를 들고 카지노에 쳐들어갔다. 그는 절대 도박을 하지 않았고, 자기 연구에 기반을 두면 확률은 자기 편이라고 믿었다.
몇 시간 만에, 그의 100달러는 5,000달러(현재 가치로 41,000달러)로 불어나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베팅 금액을 더 높여갔다.
확률을 이기다
1960년대 중반, 독일로 이주한 자렉키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전기영동 및 법의학 연구 제안을 받았다.
그는 최근 의학 분야에서 국제 협력에 관한 업적으로 권위 있는 평화상 (전 세계적으로 12명에게만 수여됨)을 수상한 바 있으며, 그 결과 일류 의사이자 과학자 대열에 올랐다.
하지만 자렉키는 다른 상을 노리고 있었다. 바로 가까운 카지노였다.
(유럽 카지노에서 자렉키)
유럽 카지노의 룰렛 휠은 미국 휠보다 승률이 더 높았다. 휠의 칸 수가 미국보다 하나 적은 37개였기 때문에, 플레이어 대비 카지노의 우위가 5.26%에서 2.7%로 낮았다. 그리고 자렉키가 발견한 것처럼, 곳곳에 흠이 많은 오래된 휠이었다.
그는 아내 캐럴과 함께 모나코 몬테 카를로에서 프랑스 디본레방 그리고 독일의 바덴바덴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역의 카지노 룰렛 휠 수십 개를 조사했다. 부부는 8명의 팀을 조직해 룰렛 게임 결과를 기록했고, 한 달 동안 20,000번의 게임 결과를 기록한 경우도 있었다.
이어 1964년 첫 번째 시도에 나섰다.
그는 어느 휠이 편향되어 있는지 확인한 후, 스위스 은행에서 2만 5천 파운드를 빌려 6개월 동안 자기 전략으로 룰렛 게임을 했다. 이 기간 동안 최종적으로 625,000파운드(현재 가치로 약 6,700,000 달러)를 벌었다.
자렉키의 승리 소식은 캔자스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의 “비밀”을 원했지만, 그는 자신이 계속 룰렛 게임을 하려면, 방법을 밝히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60년대 세계 언론을 장식한 자렉키)
따라서 그는 언론 인터뷰에 “지어낸 이야기”를 퍼뜨렸다. 매일 룰렛 게임 결과를 기록한 다음, 정보를 아틀라스 슈퍼컴퓨터에 입력해 예상 숫자를 알아낸다는 것이었다.
당시, 도박 역사가 러셀 반하트( Russell Barnhart)는 “휠을 이기다”에서 “컴퓨터가 생명체처럼 우주 공간에서 지켜보고 있다… 카지노 매니저를 포함해 신화와 현실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라고 썼다.
자렉키는 이런 거짓말 뒤에 숨어서 편향된 테이블을 계속 조사했고, 다음번 큰 흐름에 대비했다.
카지노의 악몽
현금이 넘쳐나던 자렉키는 지중해 기슭에 있는 궁전 같은 이탈리아 카지노 산 레모 근처에 고급 아파트를 구입했다.
그는 꾸준한 관찰을 통해 정상적인 경우보다 훨씬 더 자주 33번에 공이 멈추는 테이블을 발견했다. “휠과 공의 일정한 마찰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1968년 어느 봄날 밤 그는 흰색 롤스로이스를 몰고 그 카지노를 찾았고, 3일 동안 4만 8천 달러(현재 가치로 36만 달러)를 따는데 성공했다.
8 개월 후 다시 돌아온 그는 주말에만 192,000달러(현재 가치로 1,400,000달러)를 따냈고, 하룻밤 만에 룰렛 테이블 두 곳의 판 돈을 전부 긁어모았다. 카지노 측에서는 “게임을 너무 잘한다.”라는 이유로 15일 동안 자렉키의 카지노 출입을 금지시킬 수밖에 없었다.
(자렉키가 엄청난 돈을 땄던 산 레모 카지노)
자렉키는 출입 금지가 해제된 날 밤 다시 카지노를 찾았고, 또다시 10만 달러(현재 가치로 717,000달러)를 벌었다. 금액이 너무 많았던 관계로 카지노에서는 약속어음을 발행해야 했다.
자렉키가 카지노에 나타나는 날이면, 구름 같은 군중이 게임을 보기 위해 테이블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를 따라 같은 곳에 소액씩 베팅했다.
카지노 측에서는 자렉키를 이기기 위해, 매일 밤 그가 즐겨 찾는 룰렛 휠을 다른 곳으로 재배치했다. 하지만 자렉키는 모든 휠이 어디에 흠이 있는지 모조리 알고 있었고, 새로운 흠을 계속해서 찾아냈다.
카지노 소유주 세뇨르 라데라는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의 모든 카지노에게 그는 엄청난 위협이었다. 그가 어떻게 그리 게임을 잘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가 우리 카지노를 찾지 않았으면 정말로 행복했을 것이다.”라고 심정을 밝혔다.
자렉키는 “카지노 측에서 지고 싶지 않다면, 카지노 대신 야채 가게를 하면 된다.”라고 반문했다.
결국, 산 레모 카지노는 엄청난 비용에도 불구하고 24개 룰렛 휠 전부를 교체했다. 그들이 경험한 최고의 플레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자렉키가 지배했던 수십 년 동안 카지노들은 막대한 돈을 들여 룰렛 테이블의 결함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했고, 흠이 생긴 휠은 꾸준히 교체해야 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휠은 디지털 방식으로 돌아가며, 카지노 측의 확률이 높게 프로그래밍된 알고리즘으로 운영된다.
룰렛에서 무덤까지
자렉키는 1964년에서 1969년까지 편향된 룰렛 테이블을 통해 총 1,250,000달러(현재 가치로 8,000,000달러)를 벌어들였다고 한다.
이탈리아 신문 일 지오르노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룰렛 플레이어”라고 칭하면서, “도박꾼의 모습이 아닌” 고고한 학자 같았다고 섰다. 그가 캠퍼스에 등장하는 날이면, 대학 내 모든 학생들의 영웅이 되었다.
(리처드 자렉키 가족)
1973년 자렉키 가족은 다시 미국 뉴저지로 돌아왔고, 상품 브로커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억만장자 형제의 도움으로 자산을 10배나 불렸다. 또한 그의 게임 재능은 아들에게까지 이어졌고, 9살에 역사상 최연소 체스 마스터가 되게 만들었다.
때때로 카지노 측에서 사업을 같이 해보자고 전화를 걸어오곤 했지만, 아내 캐럴에 따르면 “카지노에게 돈을 벌어주는 것보다, 카지노에서 돈을 버는 편이 더 좋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1990년대 초반, 자렉키는 애틀랜틱시티에 질렸고, 새로운 도박 중심지로 부상 중이던 (그리고 규제도 느슨했던) 마닐라로 자리를 옮겼다. 2018년 87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그의 마지막 베팅은 네온 불빛과 슬롯머신으로 둘러싸인 분주한 도박장 한구석에 자리 잡은 룰렛 테이블에서였다. 휠이 돌고 돌았다. 예전에 수없이 반복되었던 것처럼, 작은 공은 그가 찍은 번호에 멈춰 섰다.
자료 출처: The Hustle, “The professor who beat roul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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