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과 비효율적 숲 이론

워런 버핏옹은 드라이한 유머감각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유명하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 서한이 재미있게 읽히는 이유 중 하나는 버핏옹과 찰리 멍거옹이 나름대로 지난 1년간의 투자 성과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버크셔의 경영진이 어떻게 투자 결정을 내렸는지 주주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이야기꾼 이솝의 지혜를 일깨워준 2000년 주주 서한 역시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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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중요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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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적 이득을 얻으려고 사는 모든 자산을 평가하는 공식은 기원전 600년경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 제시한 이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가 기원전 600년이었는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이솝이며, 다소 불완전하지만 지금까지 전해지는 그의 투자 통찰은 “손안에 새 한 마리가 숲속의 새 두 마리보다 낫다.”입니다. 이 원칙을 지키려면 세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숲속에 실제로 새가 있는지 어떻게 확신하는가? 새가 언제 몇 마리나 나타날 것인가? 무위험 이자율(미국 장기 국채 금리)은 얼마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으면, 숲의 최대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지금 손안에 있는 새 몇 마리와 바꿀 것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문자 그대로 새로만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돈으로 생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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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1) 이 자산이 저평가되어 있는 게 확실한가? 2) 그렇다면 얼마나 저평가되어 있는가? 3) 이 투자의 할인율은 얼마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럴 수 있다면, 해당 자산의 상대적 가치를 결정할 수 있다. 버핏옹의 말로 하면, “정확한 숫자만 대입하면 세계의 모든 투자 대안에 매력도 순위를 매길 수 있다.”

​정확한 숫자를 경계하라.

​하지만 이러한 질문 중 일부에 대해서는 때로 답을 내놓기 쉽지 않다.

이솝의 제안과 세 번째 변수인 금리는 단순하지만 나머지 두 변수의 숫자를 차기는 어렵습니다. 정확한 숫자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 어리석은 방법입니다. 가능한 범위를 사용하는 방법이 더 낫습니다.

대개는 그 범위가 넓어서 유용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장치 나타날 새를 매우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시장가격이 가치보다 놀라울 정도로 낮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비효율적 숲 이론이라고 부릅시다.) 물론 투자자는 사업의 경제성을 전반적으로 이해해야 하며, 독자적으로 사고해서 근거가 확실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투자자는 탁월한 능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눈부신 통찰력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반대 극단으로 추정치가 그다지 넓지 않은데도 가장 탁월한 투자자들조차 새에 대해 도무지 확신하지 못하는 때도 있습니다. 신규 사업이나 빠르게 변하는 산업에서 이런 불확실성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하는 것은 모두 투기로 간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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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버핏주의다. 해당 자산의 내재가치를 얼마로 생각하는지 정확한 숫자를 붙이려고 하지 말고, 그 대신 가능성 범위를 사용하라는 말이다. 그래야만 상당한 여유를 가지고 안전마진을 정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자산이 마주하게 될 모든 문제들을 염두에 둘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후 시장가격보다 가치가 얼마나 더 큰지 추정해 낼 수 있다면, 승리를 거머쥘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정적인 것은 이런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천재일 필요까지는 없고, 단지 기업에 대한 약간의 상식만 있으면 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버핏옹과 멍거옹이 과거부터 빠르게 변하는 부문을 멀리해 왔는지 보여준다. 이솝의 세 가지 질문에 가능한 범위로 답을 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알 수 없는 변수들이 많을수록, 해당 자산에 대한 정직한 평가가 불가능해진다. 이런 경우에도 투자를 단행한다면, 사실상 투자를 한 것이 아니라, 투기를 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전마진에서 벗어나게 된다.

​버핏옹은 1990년대 말 닷컴 거품을 예로 투기적 수익에 대해 말한다.

투자와 투기는 절대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지만 시장 참여자 대부분이 승리를 만끽하는 시절에는 구분하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거액의 불로소득처럼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도 없습니다. 불로소득에 도취한 다음에는 합리적인 사람들조차 무도회의 신데렐라처럼 행태가 바뀝니다. 무도회에 너무 늦게까지 머무르면, 즉 미래에 창출할 현금보다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기업을 대상으로 계속 투기를 벌이다 보면, 결국 마차와 말이 호박과 쥐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화려한 무도회의 마지막 1분까지 즐기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이 들뜬 투자자들은 모두 자정 몇 초 전에 떠나려고 합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무도회장에 걸린 시계에는 바늘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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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시장의 유행을 따라가면서 겪게 되는 인지적 오류를 완벽하고 예리하게 설명한 말이다. 모든 투자자가 시장에서 음악이 멈추고 주가가 하락하기 직전에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다는 것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거품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빠져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운 덕분이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 행운이 불운으로 변할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마차와 말이 호박과 쥐로 변하게 되면, 오늘의 백만장자도 내일 알거지가 될 수 있다.

부의 이전과 부도덕한 세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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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은 이런 비이성적인 흥분을 활용하는 이들에 대해 말한다.

이런 초현실적 상황에는 ‘가치 창출’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따라다녔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신생기업들이 막대한 양의 가치를 창출한 것도 사실이고, 앞으로도 훨씬 더 많이 창출할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한동안 기업의 주가가 아무리 높아도 기업이 존속기간에 적자만 기록한다면 가치는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파괴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현상은 가치 창출이 아니라 가치 이전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증권업계는 새도 없는 숲을 파렴치하게 팔아넘기면서 수십억 달러를 대중의 주머니에서 자신의 주머니로 이전했습니다. 실제로 거품 시장 덕분에 거품 기업들이 창출되었는데, 이들은 투자자에게 돈을 벌어주는 기업이 아니라 투자자를 속여서 돈을 버는 기업이었습니다. 이런 기업의 주요 목적은 대개 사업이익이 아니라 IPO였습니다. 이런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옛날 유행했던 행운의 편지였으며, 수수료에 굶주린 투자은행들이 앞다퉈 집배원 역할을 도맡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거품은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거품이 터지면 신출내기 투자자들은 아주 오래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째, 월스트리트는 팔리는 것이라면 투자자에게 무엇이든 판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투기는 가장 쉬워 보일 때 가장 위험하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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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낙관적인 애널리스트의 추정치와 목표 주가에 주의해야만 한다. 강세장 사이클이 후반부로 갈수록, 의도적으로 주가를 기업 가치보다 훨씬 높게 띄우는 악질적인 세력이 많아진다. TV에 나와 사탕발림으로 떠드는 소위 전문가들의 말에 혹해서 넘어가서는 안되며, 그런 말에 이익을 보게 될 이들이 누구일지 항상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버핏옹은 신생기업들의 성공 여부 판단에 대한 버크셔의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서한을 마무리한다. 초기 단계의 신생기업들 중 어느 곳이 성공할지 알아낼 능력이 없음을 솔직히 밝히고 있다. 스승이었던 벤저민 그레이엄처럼 자기 능력 범위를 알고 인정한다는 것은 모든 투자자들이 본 받아야 할 자질이다. 고위험 고수익이라는 승산 없는 곳보다 합리적인 가격의 우량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더 쉽다.

버크셔는 입증되지 않은 수많은 기업 중에서 몇몇 승자를 골라내려고 시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정도로 똑똑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대신 2,600년 전에 이솝이 제시한 낡은 방정식을 우리가 어느 정도 확신하는 기회에 적용해, 숲속에 새가 몇 마리나 있으며, 언제 나타날 것인지 가늠해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기업의 현금 유출입 시점이나 그 규모를 절대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보수적으로 추정하며, 뜻밖의 실적으로 주주들이 피해 보는 일이 없을 만한 산업에 집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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