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가 제로(0) 이하로 폭락한 잊을 수 없는 붕괴 이후 한 달이 지난 지금 에너지 시장에 또 다른 마이너스(-) 가격의 망령이 드리워지고 있다.
산유국들의 감산 조치 이후 유가는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6,000억 달러 규모의 세계 천연가스 시장은 여전히 엄청난 공급 과잉을 겪고 있다. 트레이더와 애널리스들은 아직 최악의 상황은 아니지만, 수요가 감소하고 저장 용량이 최대치에 가까워지면서 세계 일부 지역에서 천연가스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이상적인 조건이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세계 에너지 산업이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연료 수요 감소에서 회복하려면 상당히 오랜 기간이 필요하며, 텍사스의 셰일 유전 지대에서 호주의 커티스 아일랜드에 이르기까지 천연가스 생산 업체들이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원유 시장과는 달리, 과잉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 대응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 여파가 더 깊고 길어질 수 있다.
스웨덴 전력회사 바텐폴 AB의 천연가스 책임자 가이 스미스는 “천연가스 시장은 수요는 낮고 재고는 높은 미지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 유럽에서 단기적으로 마이너스(-) 가격이 형성될 수 있는 실질적인 위험이 있지만, 단기적으로만 가능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전기와 열을 생산하고, 화학물질과 비료의 원료인 천연가스는 따듯한 겨울 날씨로 인해 공급 과잉이 심해졌고, 이후 이미 끔찍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주요 구매자들이 납품을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재고량이 최대치로 근접하는 상황에서도 주요 생산 업체들은 아직 감산 조치를 계획하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유가가 잠시 배럴당 거의 -40달러까지 급락한 것과 마찬가지로, 공급 과잉을 흡수할 저장 설비 부족이 핵심 요인이다. 트레이더와 애널리스트들은 유럽이 마이너스(-) 가격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가장 큰 시장이라고 지적하는데, 그렇게 되면 미국에서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파급 효과를 줄 수 있다.
원유 시장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주도 하에 생산자들이 (취약하긴 하지만) 광범위하게 협력하고 있는 반면, 천연가스 시장은 협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현재의 공급 과잉이 계속 가속될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유럽은 많은 전력회사 및 트레이딩 하우스, 그리고 수입과 수출 모두를 유연하게 관리할 수 있는 인프라로 인해, 세계 천연가스의 주요 소비 지역이었다. 그로 인해 미국에서의 생산 증가와 중국을 중심으로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아시아 지역과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가스 인프라 유럽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유럽 전역의 재고 수준이 5년 평균인 45%보다 급증한 73%에 달함에 따라 이런 역학 관계가 곧 변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에너지 컨설팅 회사 FGE의 애널리스트 에드먼드 시우는 “유럽의 재고가 세계 천연가스 시장의 가장 큰 위험이다. 8월이 되면 저장 용량이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 유럽이라는 균형추가 무너지게 되면, 천연가스 가격에 하방 압력과 변동성을 가중시킬 것이다.”라고 말한다.
유럽 시장은 마이너스(-)로 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가운데, 세계 4대 지수도 역사적 최저치로 수렴해가고 있으며, 영국 NBP(National Balancing Point)가 가장 약세를 보이고 있고, 최근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1백만 Btu 당 약 0.99달러까지 하락했다.
우드매켄지의 천연가스 애널리스트 하드리엔 콜린나우는 “유럽에서 천연가스 가격이 마이너스(-)가 된다면, 영국에서도 그렇게 될 것이다. 시장에 재고가 넘치고 있으며, 일단 저장 용량이 최대치에 달하면 가격도 마이너스(-)로 하락할 수 있다. 영국에는 더 저장할 공간이 많지 않은 반면, 유럽 대륙에는 아직 여분이 있다.”라고 말한다.
영국의 저장용량은 2017년 센트리카 PLC의 러프 시설이 문을 닫은 뒤 급격히 감소했다.
스위스 악스포 그룹의 애널리스트 닉 보예스는 “온화하고 선선한 날씨로 인해, 유럽의 만기가 더 남은 천연가스 선물 계약이 마이너스(-)로 하락할 가능성이 더 높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기는 8월이나 9월 초로, 수요가 가장 낮은 시기에 공교롭게도 재고도 가장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인다.
천연가스 가격이 마이너스(-) 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노르웨이에서 상업용 수입 파이프라인이 개통된 뒤 영국 NBP 가격이 마이너스(-)로 추락했었다. S&P 글로벌 플래츠의 EMEA 천연가스 애널리스트 제임스 허크스텝에 따르면, 당시 폭락은 시장 추세라기보다는 파이프라인의 운영 상 문제 때문이었으며, 오늘날과 같은 약세장도 아니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셰일 시추의 부산물로 나오는 천연가스 가격이 주기적으로 마이너스(-)로 떨어지곤 한다. 서부 텍사스의 와하 허브 같은 곳에서 생산은 증가하는데 저장 용량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저장 설비가 빠르면 다음 달에 가득 찰 것이라는 추정도 있지만, 모건 스탠리와 플래츠의 애널리스트들은 가까워지긴 했지만 아직은 그럴 정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저장 설비가 가득 차는 상황을 모면하더라도 마이너스(-) 가격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옥스퍼드 에너지 연구소의 수석 연구위원 조나단 스턴은 “공급업체들에게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시키려면 저장 설비가 가득 차지 전에 단기간 동안 마이너스(-) 가격이 필요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지난달 트레이더와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한 블룸버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럽에서의 마이너스(-) 가격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그렇게 되기 전에 공급업체들이 신속히 대응할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공급이 완화되고 있다는 징후도 있다.
미국 액화 천연가스(LNG) 구매자들은 여름으로 예정된 수십 건의 인도 물량을 취소했다. 한편 지난달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노르웨이 등의 수출 물량이 줄어들면서, 수년간 높아져 왔던 세계 LNG 수출 증가세도 멈추었다.
하지만 FGE의 시우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시장의 균형을 맞추고 추가적인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서는 상당한 감산 조치 말고는 다른 대책은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주요 수출국인 러시아의 야말-유럽 파이프라인을 통한 유입량은 5월 말에 줄었지만, 6월 들어 다시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카타르의 에너지부 장관은 “가격이 낮다는 이유로 LNG 판매를 중단하면 시장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우드맥의 로버트 심스는 올여름 LNG 소비량이 2.7%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 전략 문제 연구소의 니코스 타포스는 “장기간 낮은 가격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급업체들이 수익을 남기기 어려울 만큼 낮긴 하지만 큰 수요 변동을 일으킬 만큼 낮지는 않다. 지금이 바닥인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지금까지 이런 가격은 경험한 적이 없다.”라고 밝혔다.
자료 출처: Bloomberg, “Natural Gas May Be the Next Commodity to Trade Below 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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