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시장의 역사] 맨해튼 섬과 육두구 (1) - 네덜란드, 맨해튼 섬을 손에 넣다.

때는 15세기 탐험의 시대였다. 중세 유럽인들은 중동을 거쳐 이어진 육상 무역로를 통해 동방으로부터 향신료와 귀중품을 수입했다. 하지만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는 2개월 동안의 포위 공격을 통해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이어서 유럽인들의 육상 무역로 접근을 막았다. 결국 유럽 제국들은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이후 해상 무역로를 찾기 위한 경쟁이 앞다퉈 벌어졌고, 두 가지 중요한 분수령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나는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우연히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이었고, 1497년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한 것이 또 하나였다. 다 가마가 배에 향신료를 한 가득 싣고 돌아온 후, 16세기 내내 포르투갈은 동방과 무역을 거의 독점하다 시피했다.

하지만 17세기 초반이 되자, 네덜란드와 영국이 동방 무역에 뛰어들었고,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떠올랐다. 포르투갈에게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VOC)를 앞세운 네덜란드인들이 가장 큰 위협이 되었다.

그 사이에, 네덜란드인들과 영국인들은 서방에도 주목하고 있었다. 모피 무역을 통해 돈 벌이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두 세력이 동방과 서방을 개척한 일이 얼핏 거의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두 곳 모두에서 충돌이 벌어졌다. 땅이 바꾸기도 했고, 운과 운명이 놀라울 정도로 되집혀 바뀌게 되었다.

당시의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 중 하나는 우연하게 주인이 바뀐 맨하탄 섬에 관련한 것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네덜란드인들이 이 섬을 차지하기 전까지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미래의 메트로폴리스의 운명은 크리스마스 음료 에그노그 위해 뿌려먹는 한 향신료에 달려 있었다. 바로 육두구다.



<동인도의 반다 섬에서 재배된 육두구는 유럽에서 엄청난 가치의 향신료였다.>

맨해튼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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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탐험가 헨리 허드슨이 북극해를 통해 아시아로 가는 동북 항로 개척에 실패한 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는 허드슨을 고용해 1609년 북아메리카를 통해 아시아로 가는 북서 항로를 개척하도록 했다. 허드슨이 북서 항로 개척에는 실패했지만, 롱 아일랜드와 맨해튼 그리고 나중에 그의 이름이 붙여진 강을 발견했다.

허드슨 발견한 이 땅을 VOC 차지가 되었고, 그 후 수십 년 동안 이 지역은 모피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네덜란드 총독은 1621년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를 설립해 이 땅을 식민지화 했다.

VOC에서 임명한 총독 페터 미누이트가 1626년 이 뉴 네덜란드에 들어왔고, 가끔 이 땅에서 사냥과 낚시를 하던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중개 거래를 벌였다. 미누이트는 맨해튼 섬을 가지는 댓가로 인디언들에게 60길더 상당의 구슬과 소형 장신구를 주었다. 19세기 가치로 그 유명한 24달러 수준이었다.



<페터 미누이트가 맨해튼 섬에 대한 댓가로 약 60길더 상당의 장신구를 아메리카 인디언 추장에게 건네고 있는 모습>

하지만 이 숫자에는 논란이 있다. 만일 네덜란드인들이 에이커당 몇 센트로 맨해튼을 샀다면, 미국이 알래스카나 루지애나 지역을 사들인 것이 필적하는 도둑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도 부당한 거래 같아 보인다. 하지만 많은 역사가들은 네덜란드인들도 속은 것이라고 지적한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땅에 대한 개념은 네덜란드인들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Manahachtanienk(인디언 말로 ‘모두가 술취하는 곳’이란 의미)”라는 섬에 살지도 않았다. 이 섬에 술을 들여온 네덜란드 이주민들은 그곳에 있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술을 주었다고 한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에는 술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네덜란드인들이 준 술이 그들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어쨌든,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자기 것도 아닌 땅을 네덜란드인들에게 주고 댓가를 받았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네덜란드인들이 지불한 댓가는 맨해튼 섬의 소유권을 정당화할 수 있는 ‘증거’라는 점이다. 특히 원하는 땅이면 그냥 차지해 버렸던 스페인 정복자들과 비교되는 것이다.

비록 양 당사자 모두가 서로 상대측에 불공정 했다고 한들, 맨해튼 섬의 거래는 양측 모두에게 하나의 협상이었다. 하지만 네덜란드인들은 맨해튼을 오래 가지고 있지 않았다.

육두구 쟁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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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에서의 토지 쟁탈전은 동인도에서의 폭력을 동반한 분쟁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유럽 세력들은 향신료 무역을 지배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귀중한 향신료였던 육두구가 놓여 있었다.

유럽인들은 육두구를 그 독특한 맛 이상으로 귀중하게 생각했다. 육두구를 최음제나 환각제로 여겼던 것이다. 심지어 흑사병이 창궐했던 시절에는 육두구 주머니를 목에 걸고 다니기까지 했다.

미신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 육두구가 전염병 발병 원인균의 숙주였던 벼룩 퇴치제로 밝혀진 것을 보면 그럴듯한 일이었다. 육두구는 유럽 탐험가들이 거의 6,000%의 이문을 남기고 팔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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