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두의 정치학, 그리고 중국과 아르헨티나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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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기고 작가 브룩 라머의 글입니다.)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면서 쉽게 간장을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내 아들들은 아시아에서 태어나 자라서인지는 몰라도 음식에 간장 몇 방울을 끼얹어 먹는 습관이 있고, 공교롭게도 아르헨티나는 세계 최고 대두 생산국 중 한 곳이다. 이 나라의 심장부인 비옥하고 광활한 팜파 후메다를 비행기로 통과하면서, 우리는 끝이 없이 펼쳐진 대초원을 볼 수 있었다.

지난 30년 동안 아르헨티나의 농업 의존 경제에서 대두 재배 비중은 경작지의 거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간 모든 식당에서 간장 좀 달라는 아들들의 요청에 종업원들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간장은 한 방울도 없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생산되는 대두 대부분은 주로 중국으로 수출된다. 아시아에서 간장, 두부, 동물 사료 등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자 아르헨티나, 브라질 및 파라과이 등지에서 대두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부채질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이런 패턴은 과거부터 익숙한 것이었다.

​한 세기 전, 아르헨티나는 팜파스에서 생산된 풍부한 곡물과 소고기를 유럽에 수출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세계 최고 부자 나라 중 하나였다. 1929년 아르헨티나 농업 수도 로사리오의 무역 협회 건물로 완공된 웅장한 보자르 빌딩이 당시의 찬란한 시절을 떠올리게 해준다.

​하지만 오늘날 벽에 붙은 전자 티커를 압도하고 있는 것은 대두 선물 가격이다. 지난해 아르헨티나의 대두 수출 물량은 170억 달러 상당으로 전체 수출 규모 중 4분의 1을 넘게 차지했다. 현재 이 나라에서 해외로 떠나는 선박 중 절반이 대두 관련 제품(대두, 대두 음식, 대두유 등)을 가득 싣고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

​무역협회 경제 연구소 부소장 패트리시아 베르게로는 “아르헨티나의 옛 속담처럼 풍년이 되어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경제는 대두와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너무 의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두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2017년 중국과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나라들 간의 전체 무역 규모는 2,440억 달러로 10년 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제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이 지역의 최대 무역국으로 부상했으며, 미국의 뒷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중국은 나날이 성장하는 자국 경제를 떠받치기 위한 엄청난 자원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일찌감치 이 지역에 집중했다.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에서는 원유를, 페루와 칠레에서는 구리와 철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는 대두를 수입해 왔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중국의 개입이 깊게 확산되었고, 특히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고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대안을 찾고 있는 좌파 정부들에서 더 그래왔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2014년 정부가 1,000억 달러 규모의 해외 부채를 갚지 못하고 디폴트를 선언한 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중국은 110억 달러의 통화 스와프를 제공해 아르헨티나의 고갈된 외환 보유고 늘려준 한편, 아르헨티나의 농업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철로 재건, 2곳의 수력발전용 댐 건설 및 북부 파타고니아의 건조 고원에 우주 정거장 건설을 시작했다.

​2015년 12월 보수적인 사업가 마우리시오 마크리가 키르치네르에 이어 대통령에 오르면서, 다른 나라에서는 ‘감히’ 하지 못할 열망을 비추는 듯했다. 바로 중국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다. 마크리는 투명성 부족과 환경 영향 평가 등을 이유로 파타고니아 남부에서 진행 중이던 2곳의 댐 건설을 즉각 중단시켰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아르헨티나 해경은 영해를 떠나라는 경고를 무시한 중국 어선을 침몰시켰다.

​하지만 저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중국은 마크리 정부 출범 7개월 만에 대두 수입 물량을 30%나 줄였을 뿐 아니라, 중국 당국자들은 마크리에게 중국의 아르헨티나 투자와 관련해 계약 사항이 있음을 일깨워줬다. 댐 계약에는 공사가 중단될 시 철도 건설 역시 중단한다는 내용이 기본 조항으로 들어있었다. 전부 이행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선택하라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마크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을 택했을까?

​이와 더불어 심각해지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통화 위기와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압력을 더 강화시켰다. 아르헨티나 정부 고문 한 명은 “마크리가 취임하자, 정부는 미국과 무역 협정 체결을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당선으로 모든 희망이 사라졌죠. 셈법이 달라졌다고나 할까요.”라고 밝혔다. 미국의 무역 보호주의로 인해, 아르헨티나와 워싱턴 간에 소위 말하는 “육체적 관계”를 맺을 기회가 사라졌다.

​2017년 초가 되자, 마크리는 국빈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그의 저항은 묵인으로 바뀌었다. 중국과 라틴 아메리카 농업 관계를 연구해온 아르헨티나 사회학자 마리아 호세 하로 슬라이는 “마크리의 입지는 빠르게 바뀌었습니다. 우스운 일이지만, 이후 마크리는 이전 두 정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중국과 계약을 맺었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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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리의 이런 태도 변화는 지난해 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 회의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트럼프와 마크리는 진지한 정상 회담을 가졌다. 지난해 아르헨티나가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560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받기 위해서는 미국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사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양국 정상이 ‘약탈적인 중국 경제 활동’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고, 마크리는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크리의 보좌관 중 한 명은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에 “그 발언은… 아르헨티나의 견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를 매우 중시하고 있으며, 중국과 매우 중요한 상업적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두 초강대국을 모두 만족시키기란 복잡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경제학과의 안드레스 로페스 학장은 “처음엔 마크리가 중국과 거리를 두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고, 이제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며칠 뒤 마크리는 며칠 뒤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나, 아르헨티나와 중국은 새로운 ‘포괄적인 전략 동맹’의 기반 위에 섰음을 서로 축하했으며, 아르헨티나에게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국, 투자자 및 출자자로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육체적 관계”만큼 친밀하지는 않지만, 이전과 같은 정략결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지난해 12월, 시진핑 주석과 마크리는 30개가 넘는 신규 농업 및 투자 계약에 서명했으며, 여기에는 86억 달러의 추가 통화 스와프가 포함되어 있어, 국제기관 이외에 중국이 아르헨티나에 가장 많은 자금을 지원하게 되었다. 이 스와프는 무이자 대출이기 때문에, 아르헨티나 정부가 디폴트 위기에 빠지지 않고, 50%에 이르는 물가 상승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만남의 분위기에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 폴로 협회가 말을 선물하고, 마크리가 중국 국기의 노란 별 다섯 개가 새겨진 붉은색 폴로 헬멧을 씌워주자 시진핑 주석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마크리 역시 중국의 선물을 거절하지 않았다. 초기의 강경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으로 어려운 마크리 정부는 현재 원유, 인프라 및 광업 부문에 대한 중국의 투자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은 아르헨티나 북부와 칠레의 리튬 지대를 장악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리튬은 배터리에 소재로 사용되며, 2017년 전 세계 공급량 중 절반 가까이가 이들 지역에서 나왔다.

​지난 1월 마크리는 파타고니아 남부를 돌아보고, 3년 전 중단했던 2곳의 수력발전용 댐 건설을 재개하기로 했다. 작은 반전이라면, 전 대통령이자 마크리의 경쟁자였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의 남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의 이름에서 따왔던 댐의 명칭을 ‘콘도르 클리프’로 변경한 것이었다.

​티에라델푸에고의 우수아이아에 있는 식당 뱀부(Bamboo)에는 중국어로 “세계 최남단 중국 식당”이라 간판이 내걸려있다. 약 10년 전 중국 정부가 남극 대륙을 관광지로 승인한 이후, 이곳을 여행하는 중국 관광객 수는 연간 8,000명 이상으로 급증했다(2018년 전체 남극 관광객 중 약 16%를 차지했다). 그들 대부분이 우수아이아를 거쳐가는데, 그곳에서 고국에서와 비슷한 맛을 즐기기 위해 뱀부의 해산물 뷔페를 찾곤 한다.

​중국인들의 남극 대륙 관광이 증가하는 이유는 이국적인 곳을 여행하고 싶은 마음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가 전략적 우선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극지방에서 멀리 떨어진 지리적 위치에 있음에도, 북극과 남극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극지방 국가라고 선전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이 남극에 다섯 번째로 짓고 있던 연구소 시설이 붕괴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취약한 남극 대륙 유지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의도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애널리스트들은 남극의 원유와 광물 매장량에 접근하고, GPS 기술 개발 기지를 세워, 우주 기반 군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게 중국의 중요한 목표라고 말한다. (아르헨티나의 원격지 네우켄 지방에 있는 중국의 우주 기지 역시 우주-위성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중국이 라틴아메리카에 전략 지정학적으로 큰 관심을 두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기초 원자재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그중에서 대두는 초강대국 간의 경쟁에 상징으로 떠올랐다. 미-중 간의 무역 전쟁과 보복 관세 조치로 인해, 중국은 11월 미국산 대두 제품 수입을 취소했고, 그 틈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뛰어들었다.

​지난해 가뭄으로 수확량이 40%나 줄었지만,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700만 t의 콩을 중국에 수출했다. (아르헨티나 역시 파국을 피하기 위해, 2018년 미국으로부터 13억 달러 상당의 대두를 수입해, 미국산 대두의 최대 수입국 역할을 했다.) 올해는 비가 충분히 내렸기 때문에 2년 전보다 두 배 증가한 1,400만 톤의 대두를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이 중 거의 대부분이 중국으로 실려갈 것이다.

​우리 가족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해서야, 중국인이 운영하는 많은 식료품점을 발견했고, 늘어나고 있는 중국 이민지 사회를 대상으로 간장을 팔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간장은 한 방울도 찾을 수 없었고, 파타고니아 남부 엘칼라파테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작은 호텔에 도달해서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내 아들들이 간장을 갈망하고 있다는 소리를 주인 딸이 듣고는 호텔을 떠나기 전 간장을 작은 병에 담아 이중으로 비닐에 넣어 전해 주었다. 우리 가족은 남은 여행 동안 그 간장을 밥과 달걀 위에 조심스럽게 뿌려 먹었다. 그 간장이 역시 메이드 인 차이나였음은 여행이 끝날 즈음에서야 알았다.

​자료 출처: New York Tomes Magazine, “What Soybean Politics Tell Us About Argentina and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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