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바르부르크와 유로본드 - 브레튼 우즈 체제의 붕괴를 불러온 이야기 2부

이 꼴을 두고 보지 못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독일 출신의 지크문트 바르부르크(Siegmund Warburg)였다. 그는 안이했던 런던 은행들과는 달랐다. 독일인인 이유도 있었지만, 기업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런던 은행의 임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그문트 바르부르크>

1962년 바르부르크는 세계은행에 근무하던 지인으로부터 ‘미국 밖에서 통용되는 유로달러의 규모가 30억 달러 정도’라는 말을 들었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돈이었다. 바르부르크는 1920년대 독일 은행에서 일하면서, 외화 채권 발행을 주선했었던 일을 떠올렸다. 런던에서도 비슷한 일을 벌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당시 달러를 빌리고 싶은 기업은 뉴욕까지 가야 했다. 하지만 바르부르크는 미국 밖에 30억 달러 중 상당량이 있는 곳을 알고 있었다. 바로 스위스였다. 적어도 1920년대 이후 스위스는 자금 추적을 피하고 싶은 외국인들 대신 현금과 자산을 숨겨주는 사업에 발을 내디뎠다. 1960년대가 되자, 유럽 내 모든 자금의 약 5%가 스위스 철제 금고 안에 있게 되었다.

런던에서 가장 야심찬 은행가로서는 감질나는 일이었다. 놀고 있는 이 돈을 본래의 목적에 맞게 쓰이도록 하고 싶었다. 바르부르크가 본 것처럼, 어떻게든 이 돈을 가져올 수만 있다면, 잘 포장해 빌려주는 사업이 가능했다. 스위스에 돈을 숨긴 이들에게 더 이상 수수료를 내지 말고, 자기가 발행한 채권에 투자해 이자를 버는 것이 어떠냐고 설득하고, 반대로 유럽 기업들에겐 미국에서 비싼 수수료와 이자를 내고 돈을 빌리지 말고 자신에게 빌리라고 설득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생각은 좋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유조선이 여러 구획으로 나뉜 것이 장애물이었다. 즉, 브레턴우즈 체제상 국가 간 자본 이동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스위스의 돈을 런던으로 가져와 원하는 기업들에게 빌려주는 일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이 일에 가장 적합한 두 명을 불러 어떻게든 스위스에서 돈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비틀즈의 “Love Me Do” 앨범>

이들은 1962년 10월 일을 시작했다. 비틀즈가 “Love Me Do”를 발표한 바로 그 달이었다. 이듬해 7월 1일 첫 번째 계약에 성공했다. 비틀즈가 “She Loves You”를 녹음했던 바로 그날이었다. 이 노래로 비틀즈는 세계적인 그룹으로 올라서게 된다. 이 특별했던 9개월은 팝 음악계뿐만 아니라, 지정학적으로도 혁명적인 기간이었다. 쿠바의 미사일 사태가가 일어났고, “Ich bin ein Berliner(나는 독일인입니다)”로 시작되는 존 F. 케네디의 연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금융 시장을 뒤흔들려는 바르부르크의 시도는 묻혀 버렸다.

바르부르크 신규 채권(소련의 달러가 유로달러로 불리게 되었듯이, 이 채권도 “유로본드”라고 불리게 된다) 발행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한 사람이 이언 프레이저였다. 그는 스코틀랜드 출신 전쟁 영웅에서 기자로, 다시 은행가로 변신한 인물이었다. 프레이저는 동료 피터 스피라와 함께 국가 간 자금 이동을 막고 있던 세금 및 자본 통제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고, 국가별로 차이가 있던 다양한 규제 정책을 꼼꼼히 살피면서 허점을 찾아야 했다.

만일 영국에서 채권을 발행하면 세금이 4%다. 그래서 프레이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히폴 공항에서 채권을 발행했다. 또한 영국에서 채권을 상환하게 되면, 또 한 번 세금을 내야 했기 때문에 최종 상환은 룩셈부르크에서 이뤄졌다. 프레이저는 런던 증권 거래소를 설득해 영국에서 발행 또는 상환되는 채권이 아닌 채권도 상장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유로본드 환율 통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 우려하던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및 영국의 중앙은행들을 찾아가 설득했다. 바르부르크의 마지막 한 수는 실제 차주는 이탈리아 국영공사(IRI)를 숨기고 대신 도로공사 ‘오토스트라데’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었다. 국영공사가 차주가 되면, 원천징수의 대상이지만, 도로공사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채권 발행, 상환 및 차주의 관할권을 각기 다른 곳에 둔 결과, 채권 금리도 좋았고, 세금 의무에서도 벗어났으며, 어디서든 현금화가 가능하게 됐다. 이른바 ‘무기명채권’이 탄생한 것이다. 누구나 이 유로본드 살 수 있었고, 보유 여부를 비롯해 어떤 등록이나 기록도 필요도 없었으며, 어떤 곳에서도 가치가 절하되는 일도 없었다.

프레이저의 유로본드는 마치 마술과 같았다. 유로본드가 탄생하기 전까지 스위스에 은닉된 재산은 쉽게 사용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이 놀라운 종이 몇 장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어디든 가지고 다닐 수 있었고, 어디서는 상환이 가능했으며, 세금 없이 이자를 받을 수도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탈세를 통해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1968년 뉴욕="" 연준에="" 보관되어="" 있는="" 금괴="">

그렇다면 프레이저의 이 마술 같은 발명품은 누가 샀을까? 그가 오토스트라데를 통해 이탈리아 국영공사에 댄 자금은 누가 제공한 것일까? 프레이저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유로본드의 주요 구매자는 주로 동유럽과 중남미의 개인이었다. 재산 중 일부를 간편하게 들고 다니고 싶었던 이들에게 유로본드는 안성맞춤이었다. 불가피하게 나라를 떠나야 할 경우 작은 가방에 넣고 뜨면 됐다.

2차 대전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 상당수가 계속 유럽을 떠나 이스라엘과 다른 서방 세계로 속속 향하고 있었다. 여기에 서방으로 향하는 몰락한 남미 독재자들이 더해졌다. 그들의 자금 대부분이 스위스에 보관되어 있었다.

이후 역사가들은 프레이저의 활동을 깎아내리는데 열심이었다. 그리곤 초기 발행된 유로본드 중 몰락한 남미 독재자들을 비롯한 부패한 정치인들이 매수한 규모는 20% 정도뿐이었으며, 나머지 80%는 (은행가들이 흔히 불렀던 “벨기에 치과의사”) 고소득 전문직의 차지였다고 주장했다. 소득 중 상당 부분을 룩셈부르크나 제네바에 보관하고 있던 이들에게 매력적인 새로운 투자 대상이 나타난 것은 아주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유로본드는 부자들의 손발을 풀어주었고, 이들만을 위한 가상의 나라를 만드는 첫걸음이었다. 바로 “머니랜드”였다. 머니랜드에는 역외 조세 도피처도 포함되긴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넓은 개념이다. 부자들의 돈 만이 아니라 생활 전반을 정부 조사로부터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프레이저가 고객들 대신 자본 통제를 우회하려 했던 동기도 바로 이런 자본 축재의 역학이 작용한 것이었고, 현대의 은행가들도 이런 방식으로 비자 통제, 언론의 탐사 보도, 법적 책임 및 그 외 여러 가지에서 세계 최고 부자들을 보호해 주고 있다. 돈 많은 부자라면 누구라도, 그 돈이 어디서 생긴 것이든 법의 손길이 닿지 않게 해주는 그런 곳이 바로 머니랜드다.



<대표적인 조세 도피처>

이것이 바로 쇠락해가던 런던을 다시 부활시켰던 ‘추악한 비밀’이었고, 오늘날 잘 보여주듯 부의 불평등이 하늘을 뚫고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전신, 전화, 텔렉스, 팩스, 이메일 등 현대 통신 수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세계 부자들이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처음 발행된 유로본드의 규모는 1,500만 달러 상당이었다. 하지만 일단 나라에서 나라로 자금 흐름을 막고 있던 장애물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이 나타나자, 유로본드로 점점 더 많은 자금이 흘러 들어오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1963년 후반기가 되자, 3,500만 달러 상당의 유로본드가 팔려 나갔다. 1964년에는 시장이 5.1억 달러로 급팽창했다. 1967년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넘어섰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로 성장했다.

그 결과 시간이 흐르면서 브레튼 우즈 체제는 서서히 무너져 갔다. 점점 더 많은 달러가 규제와 세금이 없는 역외로 이동했다. 하지만, 역외에 있어도 달러는 달러였다. 아직까지 역내든 역외든 35달러는 1온스의 금 가치와 동일했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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