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기회 - 어딘가에는 항상 위기의 시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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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위기가 허비되는 것을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 이 말은 곧 위기란 그전에는 할 수 없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미국 정치인 람 이매뉴얼(Rahm Emanuel)이 정치에 대해 얘기하던 중 나온 말입니다. 하지만 불안한 금융 시장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확률이 자기편으로 만들어 투자하고 싶다면, 위기를 찾아 나서십시오. 자산 가격이 폭락하면, (아주) 싼 가격에 (좋은) 자산을 살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생깁니다.

하지만 너무 자기 나라에서 기회를 찾으려고만 한다면, 즉, “자국” 시장에 편중된 투자를 한다면, 농익은 위기가 찾아올 때까지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일단 그런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그전에 자산을 정리할 만큼 똑똑하거나 아니면 운이 좋지 않은 한, 그 위기에 휩쓸려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렴해진 자산을 살 수 있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을 수 있지만, 이미 내리막길에 들어선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위기에 처한 시장 또는 회사에 투자하고 나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밀고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음은 유능한 투자자들에게 부를 안겨주었던 시장 위기의 세 가지 사례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전에 일어났던” 이들 각 상황에서 어떤 면은 오늘날에도 일부 시장 또는 부문 또는 회사에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일이 벌어진 “이후”에서야 알게 될 뿐이죠.

“다시 유럽의 품에 안긴” 스페인

오늘날 스페인을 파시스트 독재 국가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193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스페인의 시장과 경제는 나머지 다른 세계와 크게 격리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유럽의 끝은 사실상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프랑스와 나눠놓고 있던 피레네 산맥까지였습니다.

1975년 11월 스페인의 오랜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세상을 떠나자, 이 나라의 미래는 공중에 붕 떠버렸습니다. 몇 년 동안 내전과 혼란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은 천천히 민주주의로 진화해 나갔습니다. 1978년에 새로운 헌법을 채택했고, 정부는 1981년에 쿠데타 시도를 붕괴시켰습니다.

1982년의 선거는 스페인의 민주국가 확립과 서방 군사 동맹인 NATO 회원국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1986년 스페인은 이제 유럽 경제 공동체(현재의 유럽 연합)에 합류했습니다. (사람들은 새해를 맞아, “우리는 유럽인이다!”를 외쳤습니다.) 당시 새로운 EEC 회원국들은 회원국 전체의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해 막대한 인프라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이를 연료 삼아 스페인은 20년 동안의 경제 호황을 누렸습니다. 비록 2008년에서 2009년 사이에 발생한 세계 경제 위기로 끝을 맺었지만 말입니다.

1970년대에 스페인에서 엄청난 긍정적 변화의 기회를 봤던 투자자라면 그 후 이어진 기간 동안 4,300%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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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동안의 내전을 끝낸 스리랑카

1983년 인도 남부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에서는 내전이 장기화되고 있었습니다. 다수의 신할리족과 소수의 타밀족 간의 갈등이 26년 동안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잔인한 갈등 중 하나였습니다. 타밀 반군이 자살 조끼를 발명했고, 전쟁 전술로서 자살 폭탄 테러를 개척한 것입니다.)

장기간의 전쟁은 국가의 경제 성장을 저해했고, 정치적 불확실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타밀 반군에 의한 자살 폭탄 테러와 기타 테러 전술은 섬 나머지에 계속되는 위협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섬을 떠나는 스리랑카인들이 점점 더 많아졌고, 외국인의 투자 발길은 그림자도 비추지 않았습니다.

한편 과도한 정부 지출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일상적인 예산 적자를 유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스리랑카의 주식 시장은 회전율이 낮았고, 외국인의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 나라에 대한 정서는 압도적으로 부정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세계 대부분이 스리랑카에 대해 아는 것은 내전뿐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누가 스리랑카에 대해 말하면 “그 나라는 아직도 전쟁 중인가?”라는 말이 되돌아오기 일쑤였습니다.

2002년 스리랑카 경제는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의 정치적 조화도 이루었습니다. 이 같은 방향 전환은 스리랑카 시장이 상승 랠리를 펼치게 되는 강한 촉매가 되었습니다. 2005년 11월, 마힌다 라자팍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극심했던 내전이 종식되자, 상승 랠리는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이어 세계 경제 위기가 몰아쳤고, 동시에 스리랑카 최악의 내전이 일어나자, 2009년 초 주식 시장은 급락하고 맙니다.

2009년 5월 타밀 반군이 결정적으로 패퇴하기 전까지 스리랑카의 주식 시장은 재평가되지 않았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투자와 경제 발전이 제한되어 있던 북부와 동부 지역이 점차 경제 통합을 이루게 되었고, 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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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정서가 팽배할 때 스리랑카 주식을 사들인 투자자라면, 그 와중에 변동성이 컸겠지만 2,000%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45배나 로켓처럼 상승한 설탕 가격!

설탕 산업은 20세기에 걸쳐 여러 가지 가격 붕괴를 경험했습니다. 아무리 상품이 주기적으로 “호황과 불황”을 겪는 경향이 있다고 해도, 설탕의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었습니다.

설탕은 미국이 쿠바의 카리브 해 섬들로부터 설탕을 수입 중단한 이후인 1962년부터 1964년까지 호황을 누리게 됩니다. (사회주의자 피델 카스트로가 1959년 풀헨시오 바티스타 대통령을 축출하면서 쿠바 혁명을 이끌어 냈고, 미국은 카스트로를 실각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수십 년간 경제 봉쇄를 가했습니다.)

1964년 설탕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1966년이 되면서 설탕 가격은 파운드 당 1페니 수준에 가깝게 붕괴되었습니다. 마침내, 설탕이 너무 싸지자,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1969년 미국 식품 의약품 안전청은 설탕 대체재였던 시클라메이트에서 발암 물질이 검출되지 이를 금지했습니다. 이로 인해 설탕의 수요는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4년 동안 소비가 공급을 앞지르고, 재고가 줄어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설탕 가격이 크게 상승했습니다. 설탕 가격은 1974년 10월 파운드 당 0.64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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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저점에서 설탕에 투자한 투자자가 있다면, 1974년 말까지 5,000% 이상의 수익을 올렸을 것입니다.

………

오늘날 많은 시장이 사상 최고치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자산이 위기에 처해 있거나, 소외되어, 무시되고 있으며, 그 결과 위기 수준의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장, 자산 또는 기업을 찾아낼 수 있다면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출처: marcuss, “There is always a market in crisis somewhere”>
https://www.valuewalk.com/2017/09/always-market-crisis-somewhere/?all=1

………..

이 글이 사후 편향에 빠진 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 로또 1등 한 번 맞게 해주세요!”라고 영구가 기도하자, 주님이 하는 말씀이 “씨바 로또나 사고 빌든지 해라!”였다는 농담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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