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트릴로지 - 월스트리트 연극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까?

뉴욕에서는 금융 시장을 다룬 연극이 거의 매년 한 편씩 개막되는 모습이다. 2017년에는 정크(Junk)가 막을 올렸다. 이 연극은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마이크 밀켄에게 영감을 받아서 쓴 것이라고 한다. 작가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정크는 큰 박수를 받진 못했다. 런던 로열 코트 시어터에서 막을 올린 엔론(Enron)은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2010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에는 한 달 만에 막을 내렸었다.


<연극 정크(좌)와 엔론(우)의 포스터>

올해에는 이탈리아 작가 스테파노 마시니가 쓴 ​​”리먼 트릴로지(The Lehman Trilogy)”가 3월 27일 파크 애비뉴 애머리에서 막을 올렸다. 리먼 트릴로지는 2008년 금융위기로 해체된 리먼 브러더스와 관련해 리먼 가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이 연극은 2008년의 이야기라기보다 리먼 브라더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연극은 원래 밀라노에서 초연됐고, 런던 내셔널 시어터로 무대를 옮겨 극찬을 받은 다음, 이번 뉴욕에서 다시 막을 올리게 됐다. 오스카 수상작 아메리칸 뷰티와 브로드웨이 카바레의 감독으로 유명한 샘 멘데스가 지휘봉을 잡았다.

연극 제작자들은 관객을 모아들이는데 관심이 없는 모습이다. 450달러짜리 한정석 대부분과 150달러짜리 발코니 좌석과 학생용 45달러짜리 좌석도 비었었고, 다음 공연 좌석도 아직 남아있다. 광고는 4월 20일까지 30회 공연으로 끝난다는 점만 강조하고 있다.



뉴욕 대학교 예술 대학의 테리 커티스 폭스 교수는 금융 시장을 다룬 연극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를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어떤 정부 기관만큼이나 기업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문화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빌리언스(Billions)와 석세션(Succession) 같은 케이블 TV 시리즈의 성공에도 이런 시대정신이 담겨있었다. “사람들이 행동하는 이유”를 탐구하는 예술가들에 초점 역시 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 예를 들어 1950년대 당시 아서 밀러는 “모두가 나의 아들(All My Sons)”과 “대가(The Price)”에서 기업을 통해 도덕이란 무엇인지 탐구했다.


<드라마 시리즈 빌리언스(좌)와 석세션(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금융 회사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어떤 회사는 신뢰성이 부족하고, 세부 사항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으며, 금융 세계의 복잡한 속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이유로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정크를 비롯한 많은 연극이 금융 시장의 하나의 은유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못한 실패작이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월스트리트의 복잡다단함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묘사한 작품 역시 공허할 뿐이다. 폭스 교수는 작가 데이비드 마멧은 “글렌게리 글렌 로스(Glengarry Glen Ross)”를 쓰기 위해 실제 부동산 중개회사에서 일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그 위대한 역작이 탄생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리먼 가문을 다룬 이야기는 연극 애호가 및 금융가 모두에게 공감이 갈 가능성이 크다. 폭스 교수는 “부모 중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비상과 몰락의 이야기이며, 위대한 권력을 움켜쥐었다 놓치는 극적인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한다.

작가가 복잡한 금융 시장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기 위해서는 엄청난 조사는 물론, “그 사람들 안에 들어가, 그들의 동기가 무엇이든 하나의 인간으로서 들여다봐야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의 목소리와 관점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폭스 교수는 말한다.

유서 깊은 파크 애비뉴 애머리에서 개막날 저녁,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다 그럴만한 사람들이었다. 은색 머리카락에 짙은 색 스포츠 재킷을 입은 남성은 잘 차려입은 부인이나 파트너와 동행했다. 관객 대부분은 금융 관련 종사자, 변호사 그리고 건축가들처럼 보였다. 은퇴 저축에 가입하지 못한 미국인 40%에 속한 이들은 절대 아니었다. 한 관객은 테슬라 시운전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

리먼 트릴로지의 시작 장면은 1950년 빌리 와일더의 영화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를 연상시킨다. 영화는 주인공이 자신이 죽은 다음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는, 결말을 먼저 보여주는 식으로 시작된다.



리먼 트릴로지는 2008년 9월 15일 파산을 선고한 리먼 브라더스에 대해 연방 정부가 법적으로 구제 조치를 취할 의무는 없다는 라디오 뉴스로 시작된다. 그러면서 연극은 1844년으로 돌아가, 헨리 리먼이 독일 바바리아에서 미국 앨러바마 몽고메리로 이민 와 조그마한 옷 가게를 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형제 에마누엘과 메이어가 곧 합류한다. 초라한 옷 가게는 면화 농장이 되고, 결국 불타 버린다.

리먼 형제는 돈 버는 데 몰두한다. 더 벌수록 더 많이 벌려고 한다. 돈은 형제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유혹했으며, 부추겼고, 당혹하게 만들었으며, 즐겁게 했고, 할 수 있는 한 더 많이 벌게 꼬드겼으며, 그러면서 점점 더 권력에 취해갔다. 돈은 궁극의 묘약이었다.

형제는 몽고메리에서 뉴욕으로 터전을 옮긴다. 그러면서 “진짜 돈이 만들어지는 곳이야.”라고 외친다. 무수한 다른 작품에서처럼 뉴욕은 돈을 벌 수 있는 궁극의 장소로 묘사된다.

마시니의 이 3 막짜리 연극(장장 3시간 40분짜리 연극으로, 중간에 쉬는 시간도 길다)은 리먼 형제가 어떻게 경쟁을 물리치고 그 많은 돈을 벌었는지 극적으로 묘사하지 못한다. 연극에서는 형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형제가 돈을 긁어모은 능력 이외에 리먼 가문의 어떤 모습도 입체적으로 전해주지 못한다.

막이 오른 이후 지금까지 오로지 과거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모두가 회상이었다. 리먼 형제가 어떻게 바바리아를 떠나 앨러배마로 왔으며, 어떻게 마침내 미국의 위대한 돈의 도시에서 투자 은행으로 명성을 이뤄냈는지를 모닥불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상하게도 이 연극에서는 제국이 무너지게 된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는다. 영국 유명 배우 러셀 베일, 벤 마일스 그리고 랭키 애덤 고들리 이 세명이 아내, 여자친구, 아이 및 경쟁자를 포함해 다양한 인물들을 연기하고, 관중들을 놀라게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말했듯이, 연극은 생물이고, 이 연극은 용기가 부족했다.

무엇 때문에 리먼 형제와 그 가문이 저주를 받게 되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돈에 대한 지나친 욕망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탐욕 때문이었는지, 앞날을 내다보지 못해서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은 것인지, 관객 스스로가 질문에 답을 내려야 한다. 연극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료 출처: Institutional Investor, “The Lehman Cu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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