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 사모 펀드 매니저, 마르코 브라가디노

사모 펀드 산업을 보면, 후기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한 사기꾼이 떠오르곤 한다. 로버트 그린의 책 “권력의 법칙”을 읽으면서, 분명 이 업계의 일부는 법칙 32 “사람들의 환상을 이용하라.”를 펀드 홍보에 활용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모 펀드라고 했지만, 벤처 캐피탈, 일부 헤지 펀드, 비상장 REIT 등을 비롯한 대체 투자 산업 전체에도 같은 일이 얼아나고 있을 것이다.)

사모 펀드는 보호 예수 기간이 길다. 시가 평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 변동성에도 무감각하다. 시장이 폭락하더라도 투매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다. 보호 예수 기간이 긴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많은 투자가 진정한 수익을 내기까지는 장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일어나는 단기적 가격 변동 대부분은 소음에 불과하지만, 일부 펀드에게는 무시하기 힘든 일일 수도 있다. 워런 버핏은 시장이 10년 동안 문을 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그래도 괴롭지 않을 만한 주식을 매수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종종 부도덕한 펀드 매니저들은 의심스러운 방식으로 투자 자금을 조달하고, 긴 보호 예수 기간을 악용한다.

마르코 브라가디노, 르네상스 시대의 사모 펀드 매니저




(마르코 브라가디노)

일부 자산가들이 사모 펀드나 다른 대체 투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공개 시장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어쩌면 시가 평가에 따른 변동성이 싫어서 일 수 있다. 어쩌면 인덱스 펀드들이 시장의 모든 알파를 쓸모없게 만들어서 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내부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고 생각해서 일 수도 있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투자처를 물색해 대대손손 부를 키워 내리물림할 수 있기를 원한다. 게다가, 칵테일 파티나 요양원에서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

마르코 브라가디노 또는 일 브라가디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500년대 후반 유명한 사기꾼이었고, 베네치아에서 처음 사기 행각을 벌였다. 당시는 베네치아는 영광의 날들을 뒤로하고 서서히 퇴보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신대륙”이 발견되자 권력은 대서양 연안 국가들에게 넘어갔다. 베네치아는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밀 영국을 힘들게 쫓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터키가 베네치아의 지중해 영지를 침범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베네치아 귀족들의 파산이 이어졌고, 은행들도 문을 닫았다. 암울함이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빛나던 시절은 이제 과거였다. 더 이상 당시 같지 않게 되었고, 노인들의 입을 통한 이야기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베네치아 사람 절반은 행운의 여신이 잠시 장난을 치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옛 시절이 돌아올 거라 믿었다. 하지만 언제 돌아올지 난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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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베네치아)

#### 신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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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대체 투자 펀드 매니저들은 자기만의 모델이 있고, 일부러 특권층만 누릴 수 있다는 신비주의를 풍기려는 경향이 있다. 사기성 헤지펀드를 운용했던 매도프가 바로 극단적인 사례였다. 만일 투자자들이 올바르게 “접근”만 했더라도, 그의 마법 투자를 들춰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일 브라가디노의 사기 행각도 바로 그랬다.

>1589년 베네치아에는 “일 브라가디노”라는 신비에 싸인 연금술의 대가가 머지않아 도착할 것이란 소문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이 사람에게는 신비의 물질을 이용해 금을 번식시키는 능력이 있고, 이를 통해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고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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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문은 몇 년 전 폴란드를 지나던 한 베네치아 귀족이 그곳 학자로부터 들은 ‘연금술에 통달한 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다면, 베네치아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란 예언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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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더불어 브라가디노가 금을 가지고 베네치아에 온다는 소식에 그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 금화를 손으로 몇 번 튕기게 하면 집 안이 금화로 가득 찰 것이란 꿈을 꾸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를 통해 베네치아도 다시 예전처럼 번성할 것이란 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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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펀드 매니저들은 잘 짜인 각본에 따라 투자 설명회를 개최해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 브라가디노도 그랬다.

>곧 베네치아의 귀족들은 브라가디노가 거처로 삼았던 브레시아의 대저택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이 대저택을 둘러보았고, 그가 겉보기에는 아무 쓸모 없는 물질 몇 꼬집을 금 가루로 바꾸는 연금술을 경외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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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가디노가 베네치아와 경쟁 관계에 있던 만투아의 공작을 초청해 연금술을 펼쳤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베네치아 의회는 시가 비용을 부담해 공식 초청하는 형식으로 그를 더 머물게 하자는 논의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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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가디노가 공작을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열었고, 연금술로 황금 단추, 황금 시계, 황금 접시 등을 만들어냈다는 소식은 덤이었다. 베네치아 의회는 브라가디노를 만투아 공작에게 뺏길지도 모른다고 걱정에 거의 만장일치로 그를 베네치아에 공식 초청했다. 그러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나가는데 필요한 모든 돈을 시에서 부담하겠다고 약속했다. 단 지금 당장이라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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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연금술사 일 브라가디노)

####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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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사모 펀드 매니저들은 실현한 수익을 내놓지 않고 그저 우수한 실적을 거두고 있다고만 말한다. 때로는 장부상 평가치만 그런 경우가 있다. 사실인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투자 실적이 거의 재난 수준이고, 펀드 매니저가 피할 수 없는 심판을 일부러 미루고 있을 수 있다.

이것 또한 일 브라가디노가 써먹던 방식이었다.

>브라가디노는 의심하는 이들을 경멸의 눈으로 쳐다봤지만, 그렇다고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러고는 이미 베네치아의 금화 저장고에 신비의 물질을 뿌려 놓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물질을 한 번에 전부 뿌려, 금화를 두 배로 늘릴 수도 있었지만, 천천히 할수록 금화가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그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금화 저장고를 잠가놓고 딱 7년만 그냥 나두면, 베네치아의 금화를 30배로 불려 주겠노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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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 대부분은 브라가디노가 약속한 엄청난 금을 얻기 위해 기다리는데 동의했다. 하지만 어떻게 7년을 더 그를 시의 돈으로 황제처럼 대접하느냐면서 화를 낸 의원들도 있었다. 그리고 베네치아 주민 상당수도 같은 생각이었다. 마침내 이들은 브라가디노에게 연금술을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지금 바로 금을 내 보이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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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시가 평가를 해보면, 장부상 수치가 허구임이 드러나곤 한다.




(일 브라가디노)

#### 새로운 바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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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매니저는 목표로 한 자금 확보에 실패하면, 다른 곳을 찾기 마련이다. 사업을 확장하고 다양화하려는 데 아무 잘못도 없다. 다만 펀드 매니저가 갑자기 최저 투자금을 한도를 바꿀 경우를 의심해야 한다.

특히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하다가 소액 투자자들로 투자 대상을 바꿀 때가 더 그렇다. 현대의 이런 펀드 매니저들처럼, 일 브라가디노는 귀족과 의원들이 자기 약속을 점점 더 의심하게 되자, 새로운 고객을 찾는데 집중했다.

>브라가디노는 자기 기술이 거의 예술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오만했다. 그는 베네치아가 참을성 없이 자신을 배신했기 때문에,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곧 베네치아를 떠나 처음에는 부근 파두아로 갔고, 이어 1590년 바바리아 공작의 초청으로 뮌헨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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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리아 공작 역시 베네치아의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재산을 방탕한 생활로 날려먹었고, 이 유명한 연금술사의 도움으로 다시 재산을 일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를 통해 브라가디노는 베네치아에서와 똑같은 사기 행각을 펼쳤고,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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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리아의 공작 윌리엄 4세)

#### 똑똑한 사람에 대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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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펀드 매니저들은 심각한 투자 실적으로 거두어 엄청난 손실을 끼치고도 투자자들보다 더 부자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들의 재능은 투자가 아니라, 인간 심리를 악용하는 데 있다. 이들은 사람들의 믿고 싶어 하는 심리를 악용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 연금술사로서 브라가디노의 명성은 이미 그가 지닌 재산이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만투아의 공작 같은 후원자들은 기꺼이 돈을 지원했고, 그는 이 돈으로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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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다시 연금술사로서 그의 명성을 더 높여주는 식으로 확대 재생산되었다. 일단 이런 명성이 확립된 이상, 귀족들과 의원들이 그를 두고 논쟁을 벌이든 말든, 자기 능력을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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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속이기가 쉬었다. 믿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베네치아 의원들은 브라가디노가 금을 번식시켜 줄 것이라고 절실히 믿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의 속임수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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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손 소매 속에 유리관을 숨겨 놓고, 다른 손으로 신비의 물질을 뿌린 다음 유리관으로 금 가루를 뿌렸던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판타지에 기댄 연금술사였다. 요사스러웠지만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와 같은 아우라를 만들어낸 이상, 누구도 그의 간단한 속임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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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에게 속지 않는 심리학

여기에 역설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분기별이 아닌 수십 년에 걸쳐 수익을 낸다는 생각으로 투자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투자 과정을 점검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수십 년 동안에 걸쳐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수익률을 안겨준 위대한 펀드 매니저는 많다. 그리고 그런 펀드 매니저는 보통 고지식하지만 정직한 사람들이다.

사기꾼들은 인간 심리에 자리 잡고 있는 자연스러운 편향을 악용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편향에 대항해야 한다. 부를 쌓아나는 데는 원칙이 필요하다. 투자에서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마법 공식 같은 것은 없다. 사람들이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브라가디노 같은 자들의 듣기 좋은 사탕발림에 넘어가는 것이다.

투자에 편해지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은 누구에게도 좋은 수익률을 빚지지 않았다. 펀드 매니저의 활동을 주시하는 만큼 우리의 심리도 그에 못지않게 감시해야 한다.

투자 세계에서 브라가디노 식의 사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의심과 경계가 필요하다.

자료 출처: Ockham’s Notebook, “What Private Equity Has In Common with Renaissance Charlat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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