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은 유명한 노벨상 수상자 더글러스 노스가 대중화시킨 용어다. 기본적인 개념은 “현재의 행동은 과거의 행동에 의해 제약받는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경로 의존성 이론의 가장 흥미로운 예 중 하나가 철도 레일의 “표준 궤간”이다. 즉, 북미와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양 레일 간의 너비로 4피트 8.5인치를 사용하고 있다. 현대 철도의 역사에서 가장 일반적인 간격이었다.
표준 궤간이 4피트 8.5인치로 정해진 이유는 기술적, 경제적으로 최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반직관적으로, 사실은 그 이유가 아니었다.
표준 궤간의 근원을 추적해 보자. 왜 철도 레일의 표준 궤간이 3피트 7인치가 아닌 4피트 8.5인치로 정해졌을까? 영국 철도 레일의 표준 궤간이 바로 그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영국 철도 레일의 표준 궤간은 그렇게 정해졌을까? “철도의 아버지”인 영국 엔지니어 조지 스티븐슨이 영국의 초기 석탄 열차 레일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최적의 궤간을 만들어내기 보다, 계속 이전 관례에 그냥 따랐다.
이전 관례란 어떤 것인가? 원래 4피트 8.5인치는 마차의 바퀴 간의 거리였다.
왜 마차의 바퀴 간의 거리가 그렇게 정해졌을까? 로마 전차는 두 마리 말이 끌었는데, 두 마리 말의 엉덩이 간의 거리가 4피트 8.5인치였다.
이렇게 근대 철도 레일의 표준 궤간은 고대 말 두 마리의 엉덩이 간의 거리로 결정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이다.
또한, 물리학에서 뉴턴의 제1법칙은 기본적으로 어떤 물체에 외부로부터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물체는 원래의 운동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때때로 경제학과 물리학이 이렇게 형제처럼 친근한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렇다면 투자에는 왜 중요할까?
투자란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고, 미래의 행동은 과거의 행동뿐만 아니라 현재 행동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현재의 행동은 과거의 행동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기업이 미래로 나갈 방향을 평가할 경우, 과거의 행동을 살펴보는 것이 아주 중요해진다. 다시 말해, 기업의 미래 경로는 그동안 걸어왔던 과거의 경로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로서 우리는 원래 경로가 어떠했는지, 왜 그 경로를 택했는지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델(Dell)의 직접 판매 모델에 익숙하다. 확실히 델에게 큰 효과가 있었다. 그러면 마이클 델은 어떻게 이 모델을 만들게 되었을까? 이미 12살 때 직접 판매의 장점을 경험했다. 그는 중개인(경매소)을 거치지 않고 직접 우표를 팔아 2,000달러를 벌었다. 중학교에 들어간 델은 컴퓨터 부품을 구입해 직접 조립하면 중개 업체를 거를 수 있음을 알아냈다. 이런 식으로 그는 훨씬 저렴한 가격에 컴퓨터를 판매할 수 있고, 더 나은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델의 방식(Dell Way)”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과거 기업 설립자들의 역사를 연구해 보면, 왜 알파벳(Alphabet Inc.) “엔지니어 우선” 문화를 만들었고, 왜 테슬라(Tesla)의 일런 머스크가 증권 거래 위원회에 그렇게 대응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일단 경로가 정해지고 나면, 새로운 경로로 바꾸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경우, 성공을 가져다준 경로인 한 여전히 좋은 경로이며, 투자자들은 미래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자주 기존 경로 앞에 새로운 환경에 들이닥치고,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로로 바꿔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경영진은 아주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며, 가장 일반적인 결과가 완전한 실패다.
가치 투자자 역시 경로에 의존한다.
많은 유명한 가치 투자자의 성공은 처음 시작했던 원래의 경로와 많은 관련이 있다. 1970년대 중반과 기술주 거품이 터진 직후같이, 전통적인 가치 투자가 빛을 발했던 “황금기”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일반 가치 투자 경로(저 PER, 저 PBR 전략)가 훌륭하게 작동했다. 하지만 그런 결과가 일반 가치 투자 경로가 그 자체로 우월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당시에 일반 가치 투자 경로를 특히 효과적으로 만든 시대적 요인이 있었기 때문일까? 마찬가지로 오늘날 많은 성장 투자자들이 전통적인 가치 투자자보다 더 나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성장 투자가 더 경로이기 때문일까? 현재 환경의 어떤 특정한 조건이 성장 투자를 효과적으로 만든 것일까? 이러한 조건이 바뀌면 어떻게 될까?
결론
결국, 다시 한번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단 경로가 정해지고 나면, 새로운 경로로 바꾸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이며, 그러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면 경로를 바꿀 수 있는 경영진과 기업이 존중받아야 한다.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는 찰리 멍거가 이끄는 데일리 저널(Daily Journal)의 경영진이다.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 멍거의 말처럼, “서서히 고통스러운 것 같다면, 어느 정도 타성에 젖었다는 의미다.”
자료 출처: Grahamites, “Path Depen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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