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는 아니다.
우리가 더 자주 말해야 한 문장은 “나는 모른다.”라고 생각한다.
개인으로서, 부모로서, 조언자로서, 스승으로서, 친구로서, 리더로서, 직원으로서 그래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자주 할수록, 우리는 모든 걸 알 길은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
우리는 삶에서 모든 것이 분명하길 원한다. 우리는 계획을, 전망을, 결과를 그리고 과정을 알려고 한다.
우리가 알려고 하는 이유는 모르고 있으면 답답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스스로 알려고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알기를 바란다. 우리는 경제학자에게 예측을 요청한다. 의사에게는 치료를, 금융 전문가에게는 시장 예측을, 스승에게는 조언을, 부동산 업자에게는 정확한 가격을 요청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질문을 받는 위치에 있다면, 답을 정말로 모르는데도 “나도 모릅니다.”라고 답하기가 아주 어렵다. 사람들은 확실한 답을 원한다. 하지만 때로는 확실한 답이 없을 경우도 있다. 고객, 상사, 배우자, 자녀 등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확실하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주식시장이 어디로 향할까? 나는 모른다.
향후 세율은 어떻게 될까? 나는 모른다.
미래에 얼마나 소득이 필요하게 될까? 나는 모른다.
전기는 어떻게 작동하나? 나는 모른다.
모든 것을 알지 못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때로는 “지금으로선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답을 찾으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가 답이다.
때로는 “확실하게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러이러한 요인들을 바탕으로 할 때 이러한 추정이 최선으로 보입니다.”가 답이다.
때로는 “나도 모릅니다. 그리고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고 생각합니다.”가 답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어느 정도 걱정이 없는 게 아니다. “나의 고객, 잠재 고객 및 동료 모두가 이 글을 읽는다면, 스스럼없이 답을 모른다고 말하는 모습은 사업에 결코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모든 것에 답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모르는 것이 있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고객에게 무언가를 모른다고 인정하기가 아주 싫었다. 그러면 이일을 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받아들였고, 이후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정확한 답은 잘 모르겠네요. 연구를 해 본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식으로 답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지식의 폭이 더 넓어지고, 아는 것이 더 많아지게 된다. 그럼에도 내가 모르는 것이 더 많이 있으며, 그냥 알 수가 없는 것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나는 모른다.”라는 말에는 엄청난 자유가 담겨있을 수 있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는 척을 할 필요도 없어지게 된다.
또한 투자 결정을 내릴 때도 먼저 “나는 모른다.”라는 자세로 시작해야 한다. 계획보다는 계획을 해나가는 과정이 더 가치가 있다. 우리 인생에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과 통제할 수 있는 것 모두에 많은 변화를 겪게 되며, 때문에 투자 계획에서 유연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두어야 하는 큰 이유다.
오늘 중요한 것이 내일에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단순히 그렇게 될지 안 될지 모른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과정과 전략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때로 “나는 모른다.”가 가장 적합한 답이라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자료 출처: Calibrating Capital, “3 Words We Should Say More Of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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