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3년 런던에는 12만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1524년 2월이 되자, 이 중 5분의 2인 2만 5천명이 이 도시에서 빠져나갔습니다.
전쟁이나 기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1523년 여름, 점쟁이들이 1524년 2월 1일이 되면 템즈강이 범람해 런던 전체를 집어삼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점쟁이들의 예언이 도시에 퍼졌고, 시민들은 공포에 빠졌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도시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피난처를 마련했습니다. 이걸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19세기 역사가 찰스 맥케이는 이렇게 썼습니다.
“1월이 되자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이 런던에서 20~30킬로미터 떨어진 마을까지 걸어 들어왔다. 그리곤 그곳에서 대참사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당시의 모든 기록을 뒤져봐도 2월 1일의 조류는 정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왜 사람들은 이런 얼토당토 않는 예언을 믿는 것일까요? 그것도 단 몇 명이 아니라 대도시 시민 중 5분의 1이 그럴 수 있을까요?
당시 사람들은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고, 앞날도 알 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1523년 런던에 살던 거의 모든 시민들은 기근과 질병으로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16세기 유럽에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32세였고, 그 이유는 주로 원인도 모르게 증가했던 아동 사망률 때문이었습니다. 전염병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위험이 큰 이판사판의 도박 같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불확실성이 더해지자, 많은 이들이 만약에 대비해 엉뚱한 예언에 귀가 솔깃해 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절망 때문에, 다른 한 편으로는 위험 관리가 목적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0여년 후, 런던이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어느 때보다 점쟁이들의 말이 힘을 얻었습니다. 맥케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1665년 런던의 대역병 시기 동안, 사람들은 돌팔이들과 광신자들의 예언에 귀를 기울였다. 디포는 이렇게 말한다. “당시 사람들은 예언과 천문학적인 주술, 꿈, 그리고 어리석은 미신에 빠져있었다. 그런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책력과 거기에 적힌 예언들이 사람들을 두려움이 빠뜨렸다.
이판사판이라는 생각과 돌팔이들의 예언을 믿고 싶은 마음이 널리 퍼졌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확률이 낮은 곳에 위험한 도박을 하려면 신중해야 합니다. 또한 세상은 확률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기 때문에, 어쩌면 예언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살아남을 확률을 높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평온할 때 사람들은 자기 말을 믿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미쳐 돌아갈 때는 다른 이들의 말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500년 전 런던 시민들이 얼토당토하지 않은 예언에 혹하게 된 이유입니다. 왜 우리는 오늘날에도 잘못된 예측에 귀를 기울이는 것일까요?
금융 시장에서도 예측의 역사는 꽤 깁니다. 그리고 대부분 한심한 것들이었습니다.
매년 주요 은행 소속 22명의 주요 시장 전략가들이 S&P 500의 연례 수익률을 예측합니다. 이들이 내놓은 예측치와 실제 시장 수익률의 차이는 연평균 14.7%였습니다. 즉, 예측에 귀를 닫고 그냥 S&P 500의 연평균 수익률을 역사적 평균으로 생각한다면, 오차가 14.1% 낮아진다는 말입니다.
경기 침체와 금리 그리고 경제 성장률에 대한 예측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왜 예측이 계속되는 걸까요?
저마다 다 이유가 있겠지만, “희망”, “무지” 또는 “편향”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그리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금융 시장에서 사람들이 예측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입니다.
이해관계가 크다. 정확한 투자 예측은 수익 또는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미래 목표는 그 예측에 달려 있을 수도 있다.
시장과 경제가 혼란스럽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 지 거의 알 수 없고, 수억 명의 시장 참여자들이 자기만의 이유로 대응해 생기는 결과다.
경제가 혼란스럽고, 관심을 끄기 어려운 상황에서, 누군가 “내 말을 들으면 수익을 올릴 수 있고, 듣지 않으면 손실을 볼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듣고 싶은 유혹을 밀쳐내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이해관계가 크기 때문에, 그 사람의 과거 예측이 어떠했는지에 상관없이 만일에 대비해 예측을 무시하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상당한 경제적 손실이냐 아니면 수익이냐의 기로에 있을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로 하이퍼인플레이션과 시장 붕괴를 예측한 이들에게 수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다음은 2008년 월스트리트 저널의 1면 기사입니다.
한 교수는 간단히 말해, 달러의 하락과 붕괴가 대량 이민, 경제 쇠퇴 및 도덕적 타락을 불러올 것이고, 이는 다시 내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2010년 6월 말 또는 7월 초기 되면 미국은 6개 로 쪼개질 것이라면서, 알래스카가 다시 러시아에 귀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암호화폐 시장에도 여러 가지 예측이 난무했습니다.
예측이 틀리거나 맞을 경우, 손실 또는 수익의 이해관계가 엄청났습니다. 거금을 챙기거나 잃을 수도 있습니다. 삶이 피거나,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무너지고 있는 은행들, 전례없는 통화 정책, 갑자기 수천억 달러 가치로 탄생한 디지털 통화 등) 켜켜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사람들은 예측을 과거의 정확도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이 예측이 저것 같고, 저 예측이 이것 같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얼토당토하지 않은 예측을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금융 시장 버전의 파스칼의 내기가 됩니다.
마치 약실이 3개 인지 아니면 10억 개인지도 모른 채 러시안 룰렛을 하는 셈입니다. 위험이 크고,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잘못된 예측에 귀를 기울이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엉뚱한 예측을 내놓는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또 왜 그들이 그렇게 하는 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책도 팔고, 방송에도 출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브렌트 비쇼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매순간, 사람들은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문제는 그 행동에 어떤 정보, 선호도, 시계 및 편향이 작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위험과 불확실성은 큰데 반해 정보는 부족하기 때문에, 합리적 사람들이 말도 안돼는 예측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출처: Collaborative Fund, “Why We Listen To Bad Foreca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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