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고 지혜로워지는 건 아니다

노인학 저널(Journals of Gerontology: Psychological Sciences)에 실린 한 최신 논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흔히 나이와 경험이 많아지면 더 지혜로워 진다고들 하지만, 경험으로나 주위의 이야기로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연령층에서도 지혜는 흔한 것이 아니다.”

지혜는 어디에서나 드물다는 말입니다.

그럼 여기서 지혜란 무엇일까요? 지혜가 뭔지는 누구라도 어느 정도까진 알고 있겠지만, 분명하게 설명하기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도 완벽하게 정의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진실한 지혜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The only true wisdom is in knowing you know nothing)

맞습니다, 소크라테스도 그러했습니다.

지혜란 오로지 자기 마음을 다스려 깨달음을 얻을 수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도 있습니다. 여기서 “깨달음”이란 단어에서 지혜란 실제 무엇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혜란 자신은 건강을 유지하는 것, 가족에게는 행복을, 모든 이들에게는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성경에 보면, 하느님은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지만, 솔로몬은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는 하느님을 외면하고 맙니다. 지혜가 그리 큰 일을 해주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지혜란 순간의 것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정원처럼 가꿔나가야 하는 어떤 것인지도 모릅니다.

지혜란 지식의 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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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에서는 지혜의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왔습니다. (정보의 수집 및 저장과 관련된) 정보 과학 분야의 경우, 지혜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놓여 있습니다. 피라미드의 밑은 데이터입니다.

은행 계좌 내역을 살펴봅시다. 계좌 안의 여러 항목이 바로 데이터입니다. 이 각각의 데이터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한 데 모아 맥락으로 보면, 데이터는 정보가 됩니다. 맥락이 없으면 데이터 자체로는 쓸모가 없습니다. 정보가 되어야 유용해 집니다. 212.76달러를 슈퍼마켓에서 식료품 사는데 썼다는 것이 바로 정보입니다.

다음에는 지식이 있습니다. 지식이란 사람이 정보를 내면화한 것입니다. 212.76달러 어치 식료품이 자신과 가족에게 일주일 동안의 에너지와 영양이 될 것임을 아는 것이 바로 지식입니다. 하지만 붉은 콩을 넣은 칠리 한 냄비를 만들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아침으로 오트밀을 먹고, 일요일 아침에는 팬케잌을 만들어 먹을 경우에만 지식입니다. 지식에는 가족이 오트밀을 좋아하며, 칠리는 필요할 때마다 데워서 파스타에 넣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지혜란 이 지식을 좋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좋은 건강을 위해, 빚지지 않고 잘 살기 위해, 인류의 이익을 위해 지식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212.76달러 중에서 50달러를 맥주와 위스키를 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일주일 간 먹을 식료품이 그 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알코올 자체 만이 아니라, 안주로 주전부리를 먹으면서 TV를 보게 되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역행하는 일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맥주와 위스키를 사지 않는 데는 지혜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일부에게는 말입니다.

지혜는 어떻게 정의되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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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암-웹스터 사전에서는 지혜를 세 가지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통찰 - 기본적으로 사람과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이해이며, 아마도 그 관계를 성공적으로 처리해 나갈 수 있는 것

지식 - 단순하기 누군가의 경험, 교육, 독서 등을 통해 학습된 정보가 축적된 것

판단 - 슬기가 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사회 심리학자 토머스 길 로비치(Thomas Gilovich)와 리 로스(Lee Ross)가 2015년 펴낸 책 “The Wisest One in the Room(번역서: 이 방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에서 지혜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는 “사람에 대해 똑똑해 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이를 “정신적으로 현명한 것”이라면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며, 관점을 갖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지혜를 배워 현명해질 수 있을까요? (현명해지고 싶은 욕망 자체가 현명한 것이 아닐 수 있지만 말입니다.)

직관적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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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플로리다 대학 사회학과 모니카 아델트(Monika Ardelt) 교수는 대부분이 실제 지혜를 직관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일부에서는 지혜를 좀 더 인지적인 개념으로 보면서, 더 깊고 더 폭넓은 지식의 관점에서 정의하고 있긴 하지만, 대체로 지혜란 인지적, 사색적 및 친사회적 특성의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혜와 관련된 지식만으로는 현명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또한 현명한 사람이 현명한 행동을 하기란, 다른 이들에게 현명한 조언을 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우리의 자기 중심적인 경향 때문이다

아델트 교수는 지혜를 인지적 차원, 사색적 차원 및 동정적 차원으로 이루어진 3차원 모델로 만들었습니다.

인지적 차원은 바르게 사는 것에 대한 통찰과 지식을 의미합니다.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상대하고, 상호 작용하는 방식 그리고 행복하고 만족스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식에 대한 통찰과 지식 말입니다.

사색적 차원은 여러 일들과 자기 자신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자신의 상황을 다른 사람이나 여건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을 극복할 수있는 능력입니다.

다양한 관점은 현실의 본질과 다른 이들의 (그리고 자기 자신의) 동기와 행동에 대한 통찰을 높여 줍니다.

마지막으로, 지혜의 동정적 차원에는 다른 이들을 대한 동정심과 연민이 포함됩니다.

분명, 지혜는 수천 년 동안 높이 평가받아온 덕목입니다. 또한 정확히 지혜가 무엇인지 꼭 집어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바라건데 이 글에서 밝힌 생각이 지혜에 대해 우리를 조금 더 지혜롭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출처: Market Watch, “Wisdom doesn’t always come with age, according to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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