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다시 올렸던 벤저민 로스에 대한 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로스의 일기가 출간된 직후인 2009년 10월 17일 뉴욕 타임스에 실린 기사를 소개합니다.
당시는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가 가라앉고 시장이 반등을 시작한 때입니다. 지금이야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본격적인 상승장으로 이어진다.” “아니다. 데드 캣 바운스에 불과하다.”라는 논쟁이 팽팽했었습니다.
전문가들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자기 자신의 판단과 생각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 벤저민 로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말은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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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 10,000선, 금융 위기 끝난 듯 - 목요일자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
열혈 공화당 지지자이자, 오하이오 주 영스타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38세의 벤저민 로스는 1931년 1월 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역사적 시절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고, 후세를 위해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이 로스의 일기가 출판되었다. 아버지의 법률 사무소를 물려받아 운영해온 그의 아들 대니얼과, 슬레이트에서 운영하는 금융 전문 사이트 “빅 머니”의 편집자 제임스 레드베터가 편집한 “The Great Depression: A Diary”가 바로 그 책이다. 우리의 생각을 뒤집어 놓을 더없이 훌륭한 책이다.
로스의 일기는 1930년대에 쓰였기 때문에, 우리가 예상하는 고통의 대공황 시절 전부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그는 대공황 시절 변호사들 그리고 다른 “전문직들”의 고통을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지만(로스는 대공황의 D를 항상 소문자 “d”로 썼다), 자기 가족이 어떻게 고통을 이겨냈는지, 1937년 딸을 어떻게 대학에 보낼 수 있는지 같은 사생활은 일기에 전혀 밝히지 않았다. (아들 대니얼에 따르면, 1978년 세상을 떠난 자기 아버지가 빚을 내 근근이 생활하면서도, 좋은 생명 보험을 들어놨다고 한다.)
로스는 대공황이 심각해지면서 느낀 생각과 공포를 며칠 또는 몇 주에 한 번씩 짧게 써 내려갔다. 1931년 일기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은행들은 아주 엄격하게 대출 상환을 요구했다. 옛날 얘기에서처럼, 햇빛이 화창할 때 우산을 빌려주고, 비가 내릴 때 돌려달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그는 주식에 투자해 큰 수익을 올렸다가, 주가가 폭락하자 추가 증거금을 넣지 못해 계좌가 깡통이 된 친지들과 나눈 고통스러운 대화를 회상한다. 그의 글을 보면, 당시 우량주들의 주가를 거듭 언급하는 모습에서 주식 시장에 대한 일종의 강박을 있어 보이고, (당시에는 없던 말이지만) 좋은 가치 투자자의 자질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거듭 지적한 것처럼, 원통하게도 투자할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영스타운 지브롤터 거리에 있던 달러 뱅크가 문을 닫은 일을 아직도 믿을 수 없다.”라는 구절과, 은행들이 다시 문을 열었어도 계좌 예금의 일부로 인출을 제한했다고 지적하는 모습을 보면, 지역 은행들이 파산에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그의 설명을 보면, 당기 돈 많은 기업가들은 동결된 개인들의 계좌를 예금액의 절반에 사들이고 있었으며, 돈이 다 떨어진 사람들이 물물교환을 하거나, 외상 증서를 써주고 물품을 구입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역사 책에서 읽었던 일들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대공황이 있기 전 ‘광란의 20년대’에 나라에서 가장 저명한 은행가들 중 일부가 벌였던 끔찍한 일들이 의회 청문회에서 속속 알려졌고, 그 또한 그런 사실에 몹시 화를 내고 있다.
내셔널 시티 뱅크의 고위층들은 주가 조작을 통해, 장부 가치로 고작 60달러인 주식을 650달러되는 높은 가격에 대중에게 떠넘겼다.
그러면서도 청문회의 결과로 탄생한 증권 거래 위원회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로스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 회의적이었고, 대통령이 적자 재정 정책이 결국 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리고 곧 인플레이션 높아질 거라 생각했다. 히틀러의 부상도 걱정했다. 농장을 빼앗기 위해 보안관이나 판사, 또는 걸리 적 거리는 누구에게나 폭력을 행사하던 농민 갱단에 대해 쓰기도 했고, 노조의 부상이 또 다른 문제로 번질 것이라고 보았다.
물론 로스의 이런 글은 모두가 예상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오늘날, 비록 현재의 위기라는 프리즘을 통해 본 것이긴 해도, 우리는 대공황의 전후 사정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대공황에 관한 훌륭한 책 여러 권을 집필한 역사학자 앨런 브링클리는 이렇게 말한다.
대공황으로 야기된 경제적 교착 상태를 타개할 유일한 방법은 충격을 통해 되살리는 것뿐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재정 지출에 대한 의지는 높이 살 만하지만, 대공황이 그리 오래 지속된 이유는 지출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 대부분도 이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미국 정부가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지난해 말 그대로 수조 달러를 쏟아부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로스의 일기에는 자세한 설명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호소력이 있는 이유는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비슷하기도, 또한 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로스의 일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날마다 그리고 해마다 답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분명하지 않은 그 답을 말이다.
그는 코만 만져보고, 코끼리가 밧줄처럼 생겼을 거라 생각한 우화 속 장님과 비슷했다. 오늘날 우리가 금융 위기를 헤쳐나가면서 하는 행동과 전혀 다르지 않다.
로스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좋은 사례다. 공화당 지지자였던 그는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과 이를 통해 엄청난 재정 지출을 했는데도,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발생했던 같은 무서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인플레이션 시대가 닥칠 것이라고 예상했고, 그렇게 되면 지금도 끔찍한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질 거라 걱정했다. (오늘날 우리가 그런 것처럼) 그는 자기 정신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루스벨트의 정책이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대공황이 끝나길 필사적으로 소망했다. 그의 일기에는 최악의 상황은 끝났다는 자신 없는 예측으로 가득하다. 보통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예측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런 생각 할 때마다, 예측은 모두 벗어났다. 그는 이전 공황 시절이 얼마나 오래 지속됐었는지 차트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1933년 일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1837년과 1873년 공황에 대한 다양한 글을 읽어보니, 현재 상황과 흡사한 모습에 놀라웠다. 만일 역사가 비슷하게 반복된다면, 앞으로 2,3년은 더 역경을 견뎌야 할 것 같다.
1930년대 초 주식 시장은 여러 차례에 걸쳐 반등을 시도했기 때문에, 그 또한 주식을 매수할 적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실제, 그는 많은 전문가들이 시장에 들어가라고 조언하고 있으며, 부자 친구들 중 일부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썼다. 하지만 6개월 후, 전문가들의 조언은 빗나갔고, 친구들은 결국 손실을 입었다. 대공황 시절, 낙관은 결국 파멸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잊고 있지만, 1935년에서 1937년 사이 기업들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나라 경제가 일어서는 듯 보였다. 영스타운의 경우에도, 철강과 고무 공장들이 거의 1920년대와 마찬가지로 가동되고 있었다. 1936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로스는 이렇게 썼다.
점심을 먹고 상점들을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마치 술 취한 선원처럼 돈을 쓰고 있었다.
일주일 후 다시 이렇게 썼다.
1929년에 시작된 공황은 끝났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때가 된 것 같다.
물론,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었다. 그 해 9월, 시장은 다시 붕괴됐고, 대공황의 숨은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오늘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그 원인을 루스벨트 대통령이 경제에 계속 자금을 투입하는 대신에 예산 균형을 맞추기 위해 너무 일찍 재정 지출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의 시장 붕괴를 이해하지 못했던 로스는 대공황의 부활에 크게 낙담했다. 1933년 3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가 9년째 대공황에 시달리고 있고, 여전히 앞날은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몇 달 후, 다시 이렇게 썼다.
지난 몇 년 동안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내놓은 예측들을 다시 읽어보니,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틀렸다. 1937-1939년의 시장 붕괴를 예견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많은 이들이 그전에 인플레이션을 예측했다.
전문가의 말을 듣는 건 시간 낭비라는 게 로스가 내린 결론이었다.
오늘날의 우리 또한 벤저민 로스와 약간 비슷하다. 70년 전에 그가 했던 것처럼, 금융 위기가 정말로 끝났는지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헤매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목요일 보도한 것처럼, 이번 주 다우 존스 지수가 10,000 선을 넘었다는 사실은 금융 위기가 잦아들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이번 주 발표된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씨티그룹의 저조한 실적을 보면, 1935년과 1936년의 경우처럼 단지 태풍의 눈 안에 들어와 있을 뿐일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은 끝났다고 말할 전문가들은 많이 있고, 그들이 맞길 바란다. 하지만 로스가 1930년대 이미 터득한 것처럼, 우리처럼 전문가들도 미래를 잘 예측할 수 없다. 금융 위기를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리면서 지켜보는 것뿐이다. 정부의 조치가 원하는 효과가 있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과연 진정으로 그럴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시간이 지나봐야 분명해질 것이고, 그때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너무 먼 미래다.
대공황이 끝났다고 잘못 생각하고 쓴 1937년 초 바로 그날의 일기에서, 로스는 이렇게 결론짓고 있다.
전문가들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자기 자신의 판단과 생각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2009년 가을, 여전히 이 말은 진리다.
자료 출처: The New York Times, “The View From Inside a Dep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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