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가입 1주년을 기념하면서,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이야기

마치 골드러시 같았습니다. 작년 연말과 올해 초의 이야기입니다. 비트코인의 상승과 더불어 스팀 달러와 스팀도 급등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스팀잇도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디지털 금을 찾으려고 몰려든 것입니다.

작년 이맘때였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이웃이셨던 @lighthil 님의 권유로 스팀잇에 가입하게 된 것이죠. @lighthil 님이 제 블로그의 글을 스팀잇에 올려 보팅 받은 금액을 보고 혹한 것도 큰 요인이었습니다.

이후 암호화폐 시장 전체가 엄청난 상승을 보였습니다. 11월쯤으로 생각되는데 스팀과 스팀 달러가 업비트에 상장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지금과 비슷한 가격으로 거래되더군요. 이윽고 급등의 날이 왔습니다. 다들 아시는 것 같은 일이 벌어졌죠.

스팀잇에 골드러시가 일어났습니다. 스팀 가격이 몇 배로 뛰니 보팅 금액도 상당했습니다. 고래 몇 분의 보팅만 받아도 $100가 훌쩍 넘던 시절이었습니다. 스팀잇 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급락의 시절이 찾아왔습니다. 그 와중에 스팀잇에서는 셀프 보팅 문제, 어뷰징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어느 곳에서나 생겼다 사라지는 그런 문제들도 많았습니다. 성장통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윽고 하나둘씩 빈자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 글에 보팅 해주시는 분들의 아이디를 보면 지난해와 지금은 다릅니다. 거의 완전히 바뀌었다고 보면 됩니다.

좀 다른 얘기지만, 네이버 블로그를 8년째 하고 있습니다. 저를 이웃으로 하신 분들을 보면 몇몇 분들을 제외하곤 매년 상당히 바뀝니다. 현재 1만 9천이 넘는 분이 저를 이웃해 주시고 계신데, 그중 10분의 1 정도만 찾아주십니다.

블로그의 속성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작심 3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팀잇에서 저를 팔로우하고 계신 분이 2600이 넘습니다. 이 중 얼마나가 스팀잇을 떠나셨을까요? 아쉽기도 하도 그립기도 합니다.

금을 바라고 골드러시처럼 스팀잇에 들어왔다가 금을 발견하기가 녹록지 않고, 발견해 봐야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신 분들, 그래서 떠나신 분들에 대한 아쉬움을 진성 스티미언 님들이 계심으로 달래봅니다. 그분들은 잘 나갈 때나 아닐 때나 언제나 스팀잇을 지키고 계십니다. 저도 그분들을 본받고자 노력합니다. 아직도 다른 분들의 글에 댓글을 남기기가 어렵긴 하지만요.

다시 스팀잇이 북적일 날이 오길 바랍니다.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의 앞날에 건승을 기원하면서, 스팀잇 가입 1주년 기념 넋두리를 갈무리합니다.

사족으로, 1800년대 말 캐나다에서 벌어졌던 골드러시에 관한 글을 첨부합니다.


……….


금을 향한 광란의 경쟁이 가져온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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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전 남녀를 불문하고 수만 명이 황금에 눈이 멀어 목숨을 걸고 클론다이크(Klondike) 가려고 한 모습에서는 쉽게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다시 들여다볼 만한 탐욕과 모험에 대한 이야기다.



<1897년 7월=""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열풍을="" 전하고="" 있는="" 신문.="">

1897년 7월 클론다이크에서 1백만 달러 상당의 금이 시애틀에 도착하자, 이 소식은 산불처럼 퍼져나갔다. 곧 무일푼인 사람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그리고 몽상가들은 마치 마법에라도 홀린 듯 알래스카의 스캐그웨이(Skagway)로 달겨갈 준비를 했다.

이들은 친척들에게 빌리거나, 후원을 받아 여행 자금을 마련했다. 며칠 후 남녀로 넘쳐나는 배 12척이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을 출발했다. 클론다이크의 금에 대한 소식이 신문을 통해 퍼진 지 12일 후 첫 번째 배가 스캐그웨이에 도착했다.

이어 몇 주 동안, 수십 척의 배가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스캐그웨이의 옆 마을 다이(Dyea)로 출발했다. 각자의 짐 안에는 희망과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1897년 7월="" 28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스캐그웨이로="" 떠나고="" 있는="" 증기선="" 엑셀시오르(excelsior)="" 호="">

스캐그웨이에 도착하자, 이들은 클론다이크의 금을 손에 넣으려면 엄청난 고난을 겪어야 함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금을 찾으려면 이 산들을 넘어 유콘(Yukon)까지 가야 했다.>

이들 중에는 사기꾼, 기업가 및 전문 기술자들과 더불어 채굴업자들도 끼어있었고, 각자 마을이 넘치도록 찾아온 이들에게서 돈을 벌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1897년 여름 도착한 수천의 희망에 부푼 이들에게 그 모험에 대한 대가는 점점 올라갔다. 해안에 짐을 내리는 데도 돈을 내야 했다. 또한 캐나다는 각자가 1년 치 음식(1인당 하루 3파운드 정도였다고 함)을 감당할 만한 돈이 있음을 증명해야 유콘으로 건너갈 수 있게 허가했다.

스캐그웨이와 다이의 상인들도 엄청난 웃돈을 붙여 물품을 팔았다. 돈이 좀 있는 이들은 말을 사거나, 한 무리의 개를 사서 개 썰매를 꾸리거나, 짐꾼을 고용할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엄청난 짐을 직접 등에 짊어지고 클론다이크까지 9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어가야 했다.



<이 많은 짐들이 어떤 방법으로든 유콘으로 가져가야 할 것들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한 여성은 남편과 함께한 여행을 다음처럼 설명했다:

“사람들은 그저 산길을 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고, 도처에서 사람을 모으려고 난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10킬로미터 정도를 혼자 걸었고, 강을 건너면서 세 번이나 긴 장화까지 물에 빠졌으며, 운 좋게도 짐 1킬로그램 당 8센트를 받는 조건으로 10명의 인디언을 고용할 수 있었다… 스캐그웨이로 다시 데려다준다는 조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금을 찾아야만 유콘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여행 과정에서 힘센 남자들도 병들어 발길을 되돌리고 있다. 아마 절반은 그 많은 돈을 들이고도 포기할 것이며, 마치 악마처럼 일해야 할 것이다.” - “미시즈 프랭크 펜쳐의 편지” 중,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1897년 8월 31일



<개 썰매를 만들어 짐을 운반하던 모습>

짐꾼, 숙박업소, 술집, 음식점이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캐나다 주민들은 자기 나라고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홍수처럼 밀려들 오는 모습을 보았고, 지역 관리들은 이들 중 몇 천명 만 정착해도 지역 경제가 호황을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클론다이크 골드 러시 열풍은 전 세계적으로 릴리안 레먼(Lillian Lemmon) 같은 이들의 이주를 불러들였다. 그녀는 시카고 출신 속기사로 1898년 봄 유콘으로 건너갈 계획을 하던 여성 300명을 모아 ‘클론다이크 골드 클럽’을 결성했다.

레먼은 금 채굴 조직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열정에 반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여기에는 두 명의 의사, 간호사들, 미용사들, 요리사들, 세탁소 직원들, 재봉사들 및 가정주부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뿐만 아니라 극장의 배우와 가수들도 있었다. 레먼은 유콘에 인쇄기를 들여와 주간지를 발행할 계획도 있었다. 시카고 트리뷴 지는 레먼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었다.



이후 레먼의 운명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1898년 5월 시애틀의 한 호텔에 투숙한 기록은 있지만, 그녀의 ‘골드 클럽’이 유콘에서 금을 발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유콘의 금맥이 전부 발견되었고, 더 이상 새로운 금맥은 없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하고, 채굴량 또한 줄어들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금이 줄어들고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고, 금 채굴을 포기하고 경쟁자를 내쫓기 위한 술책이라고 의심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사람들은 계속해서 밀려들었고, 그들의 앞에 놓인 불행도 점점 커져만 갔다. 마침내 알래스카 서남단의 노움(Nome)에서 금맥이 발견되자, 희망에 지친 이들이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오늘날 스캐그웨이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120년이 지난 후 알래스카의 작은 마을 스캐그웨이는 금을 찾아 몰려들었던 이들의 고난과 역경을 거리 곳곳의 술집과 기념품점을 통해 기억하고 있다.



<골드러시가 정점을 이루던 당시를 재현해 놓은 술집>

골드러시가 정점을 이룬 후 스태그웨이까지 철도가 건설되었고, 이제는 하루 세 차례씩 운항되는 크루즈 선박이 매일 수백 명의 여행객을 데려다가 놓고 있다.

미 국립 공원 관리국은 방문객 안내소를 설치하고, 골드러시 시절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총에 맞아 죽을 때까지 금을 찾아 몰려온 이들을 등쳐먹었던 범죄자 소우피 스미스의 이야기도 있다.

도로 건너편 옛 다이 마을이 있던 자리에는 공원이 조성되었고, 예전 공동묘지의 나머지를 보존해 놓고 있다. 대부분은 1989년 4월 눈사태로 칠쿠트 산길에서 세상을 달리한 수 십 명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것들이다.



<눈사태로 인해 칠쿠드 산길을 지나던 이들이 세상을 달리했다.>


<명복을 빌며>

<출처: Nancy Peckenham, “Klondike Gold Rush: An American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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