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달러가 가만있지 않고 계속 늘어난다는 데 있다. 새끼를 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은행에 1달러를 예금하면, 은행은 이를 기반으로 1달러를 대출한다. 그러면 처음 1달러는 2달러로 늘어나고, 대출을 받은 사람이 1달러를 다시 은행에 예금하면, 은행은 다시 1달러를 대출할 수 있다. 이렇게 처음 1달러가 3달러가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달러는 몸집을 불려간다. 국가 안에서 이런 상황이라면, 역외 도피처에서의 상황은 파악조차 불가능하다. 반면, 금의 증가 속도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35달러를 가져오면 1온스의 금으로 바꿔주겠다고 한 미국의 약속은 더 이상 지키지 못할 처지에 이르렀다.
물론 미국은 금과 달러의 가치를 지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자국에서 달러의 흐름을 규제하면 할수록 런던 등 역외로 빠져나가는 달러는 늘어만 갔다. 결국 금과 달러의 불균형은 심화됐다. 런던은 월스트리트보다 규제도 느슨했고, 정책도 더 완화적이었고, 은행들도 이를 반겼다. 1964년 미국 은행들의 런던 지점은 11곳에 불과했지만, 1975년엔 58곳으로 늘었다.
미연방 금융 시스템을 관할하는 미국 통화 감독청(OCC)은 런던에 상설사무소를 열고, 미국 은행들의 영국 지점을 감독했다. 하지만 OCC는 영국에서 힘을 쓸 수 없었고, 영국의 도움도 받을 수도 없었다. 영국 중앙은행의 짐 키오라는 사람은 “미국 규제 당국이 런던의 씨티은행을 감독하건 말건 우리는 관심이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렵 미국 정부는, 불가피한 일이라면서, 35달러 당 금 1온스를 상환하겠다던 약속을 파기하기에 이르렀다. 브레튼 우즈 체제하에 만들어진 모든 안전장치들이 하나둘씩 해체되는 첫 단계였다.
“돈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그 돈을 번 사람인가, 아니면 그 돈을 만들어낸 국가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답이 나온 것이다.
이제 돈을 가진 사람이라면, 영국 런던과 스위스의 친절한 은행들 덕분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었고, 정부도 막을 도리가 없어졌다. 영국처럼, 하나둘씩 역외 재산 도피를 묵인하면서, 다른 모든 나라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규제 당국이 자국 국경을 차단한다 해도, 돈은 원하는 곳 어디든 흘러갈 수 있었고, 돈의 주인은 규제 당국 보다 한발 앞설 수 있었다.
시작은 바르부르크의 유로본드였지만, 여기서 그치지는 않았다. 이후 비슷한 패턴이 끊임없이 되풀이됐다. 규제가 이런 사업에 적합한 곳, 예를 들어, 리히텐슈타인, 뉴질랜드령 쿡 아일랜드 또는 영국령 저지 아일랜드 등을 찾기만 하면 됐고, 명목상으로 그곳을 이용하기만 하면 됐다.
그런 곳을 찾을 수 없다면, 마땅한 곳을 찾아 어르고 달래 규제를 바꾸게 하면 됐다. 바르부르크 역시 그랬는데, 영란은행에 만일 영국이 경쟁력 있는 방식으로 규정을 바꾸고, 세금을 낮추지 않는다면, 자기 은행을 다른 곳, 아마도 룩셈부르크로 옮길 것이라고 반협박 조로 통보했다.
그랬다. 규제가 바뀌었고, 세금(무기명 채권의 인지세)가 사라졌다. 이에 대한 세계 각국의 대응은 뻔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이 규제를 피해 런던으로 옮겼던 은행들에 대한 규제를 폐지했고, 이 선례를 따르는 나라들이 많아졌다. 이렇게 역외 시장은 바르부르크의 은행가들이 만들어 낸 역외 해적 시장과 비슷해져 갔다.
세금은 낮아졌고, 규제는 완화되었으며, 정치인들은 더 친절해졌고, 돈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 나라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주자, 기업들이 그곳으로 몰려들었고, 다른 나라들도 서둘러 그런 환경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서, 다시 규제는 돈 있는 이들이 다른 나라고 떠나지 않도록 더 완화됐고, 다시 되돌려지지 않았다.
다른 식으로 영향받은 이들도 있었다. 유럽과 북미 잘 사는 나라의 소수 부유층이 역외 자금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나라의 커다란 경제 규모에 가려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혜택을 입게 된 것이다. 경제학자 가브리엘 주크먼의 추정에 따르면, 미국 자본 중 역외 비중은 4%에 불과하다고 한다. 반면, 러시아의 경우, 52%가 역외에 있으며, 중동 국가들은 57%에 이른다고 한다.
개발 도상국가나 비-민주국가의 독재자 또는 소수 재벌이 재산을 숨기기가 아주 쉬워졌다. 이로 인해 그들이 도둑질할 동기가 더 커졌고, 감시도 없었다.
<주요 지역별 역외 자산 규모>
내년 1월이 되면 지금도 엄청난 부자인 그들이 얼마나 더 부자가 되었는지 새로운 정보가 나오게 될 것이다. 그들이 다른 이들의 몫을 빼앗아 얼마나 더 재산을 늘렸는지는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더 이상 상황이 더 악화되는 모습을 지켜보아서는 안 된다.
이제는 그들의 재산을 샅샅이 찾아내 밝힐 때가 되었다. 더 이상 그들의 왜곡된 힘이 우리 사회 구조를 망가뜨리게 놔둬서는 안 된다. 그동안 그들의 ‘머니랜드’를 무시해 왔을지 모르지만, 더 이상을 그러면 안 된다. 경제 주권과 민주주의를 도로 가져오려면 이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우리가 주저하는 만큼, 그들의 재산은 점점 더 쌓여갈 것이다.
<출처: The Guardian, “The real Goldfinger: the London banker who broke the world”>
글을 마치면서,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해, 절세에서 조세 피난처 탄생까지 현대 금융 자본 100년 이면사를 다룬 니컬러스 색슨의 책 “보물섬(Treasure Islands)”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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