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킬리는 1800년대의 버니 매도프였을까요?, 아니면 니콜라 테슬라였을까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이 있다면, 거기에 투자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을 혁신시키고, 앞으로 몇 천년 동안 인류에게 저렴하고 효율적인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는 발명이었다면 더 그랬을 것입니다.

때마침 존 킬리(John Keely)가 기관 하나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소위 “유공압 진동식 진공 모터 엔진”이라는 이 기관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게 될 것이고, 여기에 투자하면 떼돈을 벌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입니다. 이 일생일대의 기회로 돈을 벌고 싶다면, 킬리 모터 컴퍼니에 투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1899년 킬리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이 기계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킬리 자신은 부자가 되었지만, 투자자들은 그런 행운을 같이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구 기관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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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9월 3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존 에른스트 워렐 킬리(John Ernst Worrell Keely)는 젊은 시절 연극 오케스트라 단원, 화가, 목수, 서커스 삐끼, 정비사로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1872년 세계를 완전 뒤집어 놓을 기계를 발명했다고 주장하면서 나타났습니다. 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놀라운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물리적 힘을 발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존 에른스트 워렐 킬리>

물속 원자들의 힘을 이용한 영구 기관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구상은 땅보다 물이 더 많이 덮고 있기 때문에, 이 기계의 연료는 어디서나 싸게 얻을 수 있고, 그로부터 모든 인류가 혜택을 입을 수 있습니다.

킬리의 기본적 아이디어는 원자는 일정한 진동을 유지하기 때문에, 물속 원자의 무작위 진동을 이용하면 에너지를 무제한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속 원자를 한 번에 진동시킬 수 있다면, 여기서 나오는 “에테르 힘(etheric force)”을 이용해 어떤 크기의 모터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킬리는 자기 발견을 홍보하기 위해 여러 곳에서 연설회를 개최했습니다.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위대한 발견을 했느냐?”라고 묻자, 킬리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동안 계시 같은 것이 내렸다고 설명했습니다. 바이올린의 음들이 조화로운 진동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음의 진동을 이용해 짐승도 진정시킬 수 있음 음악을 만들 수 있듯이, 원자들의 진동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영감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킬리의 다음 차례는 뉴욕이었습니다. 5번가의 고급 호텔에 머물면서 잠재 투자자들을 초대했습니다. 벨벳 의자, 샹들리에와 화려한 거울로 치장된 스위트룸에서, 킬리는 잠재 투자자들에게 자기 발명을 설명하는 한편, 온갖 산해진미, 술과 샴페인으로 그들을 흠뻑 취하게 했습니다.

은행가, 사업가, 엔지니어, 변호사 및 기타 부유한 투자자들이 호텔로 찾아와 킬리의 세기적인 기술에 투자했습니다. 곧 처음으로 1백만 달러를 투자 자금이 모였고, 이를 기반으로 킬리 모터 컴퍼니를 세웠습니다. 이후 자본금은 빠르게 5백만 달러로 커졌습니다. 그의 투자자들은 존 에른스트 워렐 킬리라는 이름이 토머스 알바 에디슨과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이름과 더불어 미국의 위대한 발명가들의 전당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킬리 모터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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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는 “4배속 고조파”, “에테르 해체”, “원자 삼중항” 같은 지금 들어도 뭔지 모를 말들로 잠재 투자자들을 현혹시켰습니다. 아주 민감한 조율력 시스템이라는 “리브레이터”를 통해, 우주에 숨겨진 에너지를 불러와 유공압 진동식 진공 모터 엔진을 돌리면 세계의 에너지 문제를 영원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킬리는 자기가 만든 기계를 방문객들에게 보여주었고, 마치 마법을 부리듯 진공 엔진에 물을 부어 기계를 시연했습니다. 잠시 후, 엔진이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50,000psi의 압력 나타내는 모습에 청중들은 탄성을 질렀습니다. 1875년 6월 11일 뉴욕 타임스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 “발전기”는 약 3피트 크기에, 오스트리아 포금으로 제작되었으며, 약 10-12갤런의 물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내부에는 조리개와 밸브가 달리고, 파이프가 연결된 여럿의 원통형 챔버로 구성되었습니다. “저장조”는 길이 약 40인치, 지름 6인치였고, 직경 1인치 파이프로 “발전기”에 연결되었습니다. 길리는 기계는 어떠한 화학 물질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기계적 장치로 물에서 “증기”를 발생시키고, 5초 만에 2,000psi의 압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1885년 6월 7일 자 뉴욕 타임스 기사에서 킬리의 시연을 윤색해 놓은 것처럼, 킬리는 기계를 시연할 때마다, 엔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정성 들여 설명했습니다.

진동을 통해 원자 간의 에테르를 정교하게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원자 에테르는 물질 분자 주위 전체를 진동시킨다. 동시에 여기에 자력이 가해지고, 분자 내 원자들과 동화된다. 즉, 설명하기 힘들지만, 특정 인력과 동화되는 것이다. 이를 진동 네거티브라고 부른다. 금속을 끌어들이는 자석처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특정 자기 효과가 발생해, 분자, 원자, 에테르, 에테르-에테르 같은 다양한 형태의 물질에 진동 회전으로 부착되게 한다. 금속 자극에 의해 충격이 주어지고, 에테르 진동에 의해 회전력이 생성된다.

솔직히 킬리의 이론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불가했지만, 잠재 투자자들은 눈으로 직접 기계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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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11월 10일 킬리는 필라델피아의 자기 실험실에서 처음으로 기관 전체를 시연했습니다. 이 기관은 처음 “에테르 발전기”라고 불리다가, 나중에는 “진동 발전기”라고 불리게 됩니다. 킬리가 기관을 만들 수 있게 해준 “에테르의 분자 간 진동”으로 모터가 돌아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기관의 이름은 “유공압 진동식 진공 모터 엔진”이 되었습니다. 킬리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만, 언론에서는 간단하게 영구 기관으로 불렀습니다.

투자자들과 주주들은 필라델피아에 있던 킬리의 실험실을 기꺼이 방문했고, 킬리는 여기서 “유공압 진동식 진공 모터 엔진”을 보여주었습니다. 킬리의 시연을 본 한 참석자는 이 기관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엄청난 힘에 의해 큰 로프는 찢어졌고, 강철 막대는 두 동강이 나거나 휘어졌으며, 총알은 12인치 널빤지를 관통했다.” 킬리는 하모니카, 바이올린, 피리, 치터 또는 피치 파이프를 연주해 기관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이 사상 최고 발명의 가능성을 본 사람들은 킬리 모터의 주주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이 회사는 아직 수익도 없었고, 배당금도 지급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킬리가 투자 자금을 전부 인류 최고의 에너지원 개발에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880년대와 1890년대 다른 발명들은 실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에디슨은 전기와 자동차를 실용화했고, 벨은 전화를 내놓았지만, 케일리는 여전히 세기의 발명을 더 완벽하게 하는데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투자자들이 킬리의 기관을 특허청에 특허출원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질문을 받자, 킬리는 그럴 생각이 없다면서, 그렇게 하면 기관의 비밀이 공개될 것이고, 다른 이들이 아이디어를 훔쳐 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주주들에게 에테르의 힘으로 기관이 완벽하게 돌아갈 때까지 모든 발명의 비밀을 유지할 계획이며, 그때가 되면 엄청난 돈을 벌어다 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비밀을 유지하지 못하면, 일부 비양심적이고 부정직한 도둑들이 자신의 디자인을 연구해, 비슷한 기관을 만들게 될 것이며, 그러면 회사의 이익이 줄어들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킬리는 기관을 발전시키고 다듬는데 추가의 자금이 필요할 때가 있었습니다. 어쨌든, 개발의 후반부로 들어서자 기관은 더 복잡해졌고, 더 많은 자본이 필요했습니다. 킬리는 이사회에 신주 발행을 통한 추가로 자금을 조달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기존 주주들도 신주를 인수했고, 신규 주주들의 참여도 많았습니다. 존 제이콥 에스터도 킬리 모터에 투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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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제섭 블룸필드-무어라는 이름의 미망인이 킬리의 가장 큰 지지자 중 하나였습니다. 그녀는 킬리 모터에 10만 달러를 투자했을 뿐만 아니라, 킬리에게 개인 경비로 매달 2,000달러를 제공했습니다. 기관의 완성이 지연되자, 킬리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을 때도, 그녀는 더 많은 돈을 투자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기처럼 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블룸필드-무어는 당시 유명하던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킬리의 에테르 힘은 구름 뒤에 숨어있는 태양 같아 아직 보이지 않지만, 모든 빛의 원천이며, 인류의 모든 지식의 기초라 할 수 있다.”라면서 킬리와 그의 발명을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킬리의 기관이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의심이 생겨날 때마다, 킬리는 자연의 힘을 이끌어 냈다고 최근의 진전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한 시연에서는 투자자들에게 각각 “극소 분열이 가능했던” 7가지 종류의 진동을 전달하는 “이동 공진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킬리는 전체 기관에 다양한 방식으로 시동을 걸었는데, 바이올린, 치터, 하모니카를 연주하거나, 소리 굽쇠를 두드리기도 했습니다. 방식이야 어떻든, 에테르의 힘이 나왔습니다. 모터에 시동이 걸리자 투자자들은 환호했습니다.

이 주식은 1890년 1월 뉴욕 증권 거래소에 상장되어, 1890년대 펌핑이나 덤핑 없이 꾸준히 거래되었습니다. 에테르 진동이 회사 주주들에게 돈 벌어다 주는 기계가 되기 전까지는, 수익도 없고 배당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킬리의 주장에 회의적이던 과학자들이 있었습니다. 1884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지에 실린 한 글에서는 킬리가 시연한 모든 일은 압축 공기를 통해서도 똑같이 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킬리의 기관에 숨겨진 비밀이 압축 공기였을까요? 에테르의 힘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킬리는 “과학자들”이 유치하고 부러워서 그러는 것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증기선, 전화, 전신 및 전기 불도 처음에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았다면서 말입니다. 블룸필드-무어는 토머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를 연구에 참여시켜 킬리 모터의 명성을 회복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킬리는 자기 발명을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겠다고 거부했습니다. 그는 자기 발명을 검증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필요 없다고 장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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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가 19세기 가장 위대한 발명가가 아니라, 아마 후디니 보다 더 위대한 마술사였을 지도 모릅니다. 1872년부터 1898년까지 25년 동안, 킬리는 자기 기관을 통해 매년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다면서 투자자들을 끌어들었습니다.

에디슨, 벨 및 테슬라는 실제 결과물을 만들어냈습니다. 킬리는 약속뿐이었습니다. 비밀을 밝히라는 자기 회사 킬리 모터의 소송, 과학자들의 요구,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폭로, 블룸필드-무어의 압박 그리고 법원 모독죄로 3일간 구금하라는 법원의 명령이 있었음에도, 킬리는 매번 교묘하게 피해 갈 수 있었습니다.

1872년부터 1898년까지 매년 킬리는 “증기 총” 또는 “유공압 진동식 진공 모터 엔진”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변형시킨 엔진을 보여주면서, 주주와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증기 총>

킬리가 미룰 수 없었던 유일한 일은 가차없는 저승사자의 방문이었습니다. 1898년 11월 18일 킬리는 회사를 세우고 26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킬리 모터는 한 번도 이익을 낸 적도, 배당금을 지급한 적도, 제품을 출시한 적도 없었습니다.

킬리가 세상을 떠나자 투자자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킬리는 특허도, 설계도면도, 시장에 내놓을 만한 수준의 기관도 남기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의 위대한 발명은 그와 함께 땅에 묻힌 걸까요? 너무 일찍 온 냉혹한 저승사자 때문에 그 후 인류는 고통을 겪은 것일까요?

킬리의 열혈 지지자 블룸필드-무어 역시 곧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아들 클라렌스 무어는 킬리가 천재 과학자였었는지, 아니면 사기꾼에 불과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무어는 킬리가 실험실로 사용한 건물을 임대했고,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유명 전기 공학자 2명을 모셔와 건물을 샅샅이 조사했습니다.

“유공압 진동식 진공 모터 엔진” 또는 “복합 분쇄기” 또는 “동조 네거티브 인력 장치” 등으로 불리던 킬리의 기관은 이미 킬리의 마법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지지자와 투자자들이 가져갔기 때문에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었습니다.

필라델피아 프레스 지는 1899년 1월 19일 킬리의 비밀을 폭로했습니다. 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킬리의 실험실 아래 지하실 바닥에 구 모양의 물체가 숨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험실 아래 지하실에 있던 조용한 수력 모터에 기계 벨트와 고리 연결해 가짜로 만든 천장과 바닥을 찢었던 것이었습니다. 마루판 아래에 공압식 스위치 시스템을 두고 기관을 켜고 끌 수 있게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 사기는 아래 그림처럼 뉴욕 저널에 게재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킬리의 발명이 거짓이었고,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지의 주장이 맞았다고 밝혔습니다. 아마 킬리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발로 기관의 시동 스위치를 눌렀을 것입니다. 킬리의 지지자들은 언론과 과학자들의 주장이 거짓이며, 어머니가 자신에게 돈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이 꾸민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지자들은 킬리가 몇 년만 더 살았더라고, 그의 기관이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영구적으로 해결해 주었을 것이고, 또 다른 산업 혁명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킬리가 세상을 떠난 지 115년이 지났지만, 어떤 과학자도 그의 발명을 재현할 수 없었습니다. 존 킬리는 과연 발명을 무시당한 니콜라 테슬라였을까요, 아니면 어리석은 투자자들을 속였던 버나드 매도프였을까요? 킬리는 과학자였을까요, 아니면 사기꾼이었을까요? 킬리는 지지자들의 믿음을 저버린 배신자였을까요, 아니면 우주의 비밀을 밝혀낸 고독한 발명가였을까요?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출처: Global Financial Data, “The Bernie Madoff of the 1800s and His Perpetual Money Motion Ma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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