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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투자자 대부분이 빠지는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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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투기자와 실패한 투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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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vs. 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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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은 일생 동안 투기를 하면 안 되는 때가 두 번 있다고 했다. 바로 “투기할 형편이 안 되는 때”, 그리고 “투기할 형편이 될 때”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투자와 투기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투자 성공을 위한 첫걸음이다.
투자자에게 주식은 해당 기업의 지분을 샀다는 증서이며, 채권은 해당 기업에 돈을 빌려주었다는 증서를 의미한다. 투자자는 평가 가치 대비 현재 가격을 기준으로 유가증권을 매수하고, 매도한다.
투자자는 다른 투자자들이 모르고 있는 것,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 또는 무시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할 때 매매에 나선다. 투자자는 내재된 위험보다 매력적인 수익률이 예상되는 유가증권을 매수하고, 보유 유가증권의 수익률이 더 이상 위험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때 매도한다.
투자자는 장기적으로 유가증권의 가격이 해당 기업의 내재가치를 반영하는 쪽으로 접근해 간다고 믿는다. 따라서 투자자에게 주가 상승과 그 의미는 적어도 다음 세 가지가 있다. 1) 해당 기업이 잉여 현금 흐름이 증가하는 것. 2) 각종 주가 배수에서 분자에 해당하는 수치(예를 들어, 순이익, 장부 가치, 순 매출 등)가 증가하는 것. 3) 주가와 해당 기업의 내재 가치 사이의 격차 감소하는 것.
이와는 대조적으로, 투기자는 유가증권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또는 내릴 것이라는) 짐작에 근거해 유가증권을 매수(또는 매도) 한다. 투기자는, 내재 가치가 아니라, 다른 이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고, 이를 매수 또는 매도의 근거로 삼는다.
투기자는 유가증권을 서로 주고받는 종잇조각으로 생각하며, 일반적으로 대상 기업의 내재 가치는 무시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 투기자는 유가증권의 “움직임”이 좋으면 매수하고, 그렇지 않으면 매도한다. 실제, 내일 세계가 종말을 맞게 될 게 확실한 상황에서도, 시장만 열린다면 시장 움직임을 예측하고 이를 기준으로 유가증권을 계속 매매할 투기자가 분명 있을 것이다.
투기자는 주가의 방향 예측 또는 짐작에만 집중한다. 매일 아침 케이블 TV에는, 매일 오후 주식 시장 보고서에는, 매주 주말 배런스지에는, 매주 수십 종의 시장 뉴스레터에는, 그리고 사업가들이 모일 때마다, 시장이 어디로 향할지에 대한 추측이 난무한다. 많은 투기자들이 과거 주가의 움직임을 기술적으로 분석해 이를 근거로 시장 방향을 예측하고자 한다.
기술적 분석은 기업의 내재 가치보다는 과거 주가가 흘러온 길이 미래 주가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가정’에 근거한다. 사실, 시장이 어디로 흘러갈지 누구도 모른다. 시장 예측은 시간 낭비이며, 그 예측을 근거로 투자하는 것은 투기에 참여하는 것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자기가 투자자인지 투기자인지 겉으로 표시를 내지 않는다. 때로는 행동을 자세히 조사하지 않고는 투자자인지 투기자인지 구별이 어렵다. 보유 중인 유가증권을 살펴본다 해도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어떤 유가증권이든 투자자든, 투기자든 공히 보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투자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기업의 내재 가치에 근거한 장기적인 투자 수익이 아니라, 시장 움직임을 예측한 단기적인 매매 수익을 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라기 보다 투기자에 가깝다. 알게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투자 성공 가능성이 높은 쪽은 투자자이며, 반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손실 가능성이 높은 쪽은 투기자일 것이다.
거래용 정어리와 식용 정어리: 투기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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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정어리 시장에 광풍이 불었던 적이 있었다. 기존 캘리포니아 몬테레이 연안에서 많이 잡혔던 정어리가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트레이더들은 정어리 가격을 올렸고, 정어리 통조림 가격은 급등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오늘은 좀 비싼 걸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정어리 통조림을 따서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로 탈이 났고, 산 가게로 달려가서는 상한 정어리를 팔았다고 항의했다.
가게 주인이 말하길, “참, 이해를 못 하시네. 이건 드시라고 파는 정어리가 아니라, 거래하시라고 파는 거예요!” 이렇게 정어리의 상태가 어떻건 전혀 개의치 않고 거래하는 정어리 트레이더들처럼, 많음 금융 시장 참여자들이 투기에 빠져있다. 투기에는 즉시 만족감을 얻으리란 예상이 담겨있다. 빠르게 부자가 될 수 있는데 굳이 천천히 부자가 되는 길을 택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게다가, 투기는 군중과 반대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의견이 같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위안감이 있다. 군중 속에 있다 보면, 그 많은 사람들로부터 자신감을 얻게 된다. 오늘날 많은 금융 시장 참여자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투기자가 돼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자신이 비싼 유가증권을 사놓고, 더 비싼 가격이 사 줄 누군가, 즉 더 큰 바보가 나타나길 바라는 “더 큰 바보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식을 그저 거래용 종잇조각으로 취급하고 싶은 것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주식을 이런 식으로 보게 되면, 기업의 내재 가치를 철저히 분석하거나, 알 필요가 없어진다. 게다가, 거래 자체는 재미지고, 수지맞는 일일 수 있다. 다만 시장이 상승하고 있는 동안에만. 하지만 본질적으로 투기에 해당하지, 절대 투자는 아니다. 더 높은 값을 쳐줄 누군가(더 큰 바보)가 나타날 수도,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일 후자라면, 바로 당신이 더 큰 바보로 남게 될 것이다.
가치 투자자는 투자 결정을 내릴 때 기업의 재무 상황에 주목한다. 투기자는 그런 굴레가 없다. 오늘날 시장 참여자들 중 상당수가 투자자가 아니라 투기자에 속하기 때문에, 유가증권의 가격 결정에서 기업의 내재 가치는 거의 고려 사항이 아니다. 주식 시장을 주기적으로 고평가되고, 그 상태로 오래 머무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면 그럴수록, 기업의 내재 가치를 기준으로 투자하는 투자자들은 조심해야 하며, 고평가된 주식을 매수해 더 큰 바보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시장에서 투기 활동은 언제든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고, 시간이 상당히 흐르고, 엄청난 손실이 발생한 후에야 투기 광풍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한 예로 1983년 중반을 보자. 시장은 상장된 하드디스크 제조 기업 12곳의 전체 시가총액을 50억 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1977년부터 1984년까지, 총 43곳의 하드디스크 제조 기업이 벤처 캐피털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
하버드 경영 대학원의 한 연구 “자본 시장 근시안?(Capital Market Myopia)”에서는 1983년 중반 기준 이 하드디스크 산업의 가치로 볼 때,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이 당시는 물론 가까운 장래에도 너무 높은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일부는 성공해 산업을 지배하겠지만, 대부분이 고충을 겪거나 실패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설사 소스의 승자들이 높은 잠재 수익률을 안겨 준다고 해도, 다른 패자들로 인한 손실을 상쇄해 주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만 해도 투자자들은 이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들 하드디스크 제조 기업들은 사실상 “거래용 정어리”에 다름없었다. 이 투기 거품은 그 후 곧 붕괴되었고, 이들 기업의 전체 시가총액은 1983년 중반 54억 달러에서 1984년 말 15억 달러로 줄었다.
이런 투기 활동의 또 하나의 예가 1989년 9월에 일어났다. 스페인 유가증권에 투자하는 폐쇄형 뮤추얼 펀드인 스페인 펀드의 주가는 순 자산 가치(NAV) 대비 거의 두 배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주가를 끌어올린 매수세의 상당 부분은 일본에서 들어왔다.
당시 일본 투자자들에게는 유가증권의 내재 가치는 거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스페인 펀드와 동일한 포트폴리오를 스페인 주식 시장에서 스페인 펀드 주가의 절반 가격에 자유롭게 매수할 수 있었지만, 이들 일본 투기자들은 단념하지 않았다.
순 자산 가치 대비 두 배에 거래되던 스페인 펀드는 거래용 정어리의 또 다른 사례였다. 그런데도 스페인 펀드를 사들인 이유는 유가증권의 내재 가치를 본 것이 아니라, 주가가 계속 더 상승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몇 개월간 투기 광풍이 어진 후, 주가는 결국 NAV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월스트리트에서 일어났던 투기의 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 국채 시장에서 매일 수십억 달러 상당이 거래되고 있는 30년 만기 국채도 그중 하나였다. 장기 투자자라고 해도 이 30년 만기 국채를 만기까지 들고 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앨버트 워즈니로이어(Albert Wojnilower)에 분석에 따르면, 만기 10년 이상인 미국 국채의 평균 보유 기간은 단 20일이었다고 한다. 전문 트레이더들과 소위 투자자라고 하는 이들 모두 30년 만기 국채의 유동성에 열광했고, 단기 금리 움직임을 기준으로 투기의 대상으로 이용한 반면,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의 실제 전망은 안중에서 없었다.
하지만 장기 유가증권을 보유가 아닌 빨리 되팔 의도로 매수하는 사람은 투기자라고 부를 수밖에 없으며, 그들에게 30년 만기 국채 또한 거래용 정어리의 한 종류에 불과했다. 30년 만기 국채마저 투기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가, 총애를 잃고 단기 보유자들이 한꺼번에 매수로 돌아서면서 다시 식용 정어리로 되돌아올 정도로 투기는 시장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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